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05-12-19 13:3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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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나리오, 주인은 누구냐!

[한겨레21 2005-12-06 09:09]    

[한겨레]
<오로라 공주>의 극장 크레딧과 DVD·비디오 크레딧은 왜 달라지게 됐나/원안·원작 시나리오·각본·각색·윤색 등 명칭 혼선은 저작권 분쟁의 불씨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이 시나리오가 나의 것이냐? 너의 그것이냐? 아니면 그의 것이냐? 혹시 우리의 것이냐? 영화 시나리오가 누구의 시나리오인지 모호한 경우가 있다. 작업의 성격상 영화는 공동 작업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 영화계에는 원안, 각본, 각색, 윤색을 나누는 기준에 대한 명확한 합의가 없다. 그래서 각본에 누구의 이름을 올리느냐가 문제가 되기도 한다.
  영화 <오로라 공주>는 극장과 DVD의 자막이 다르게 됐다. <오로라 공주>의 극장 크레딧은 ‘각본 방은진’으로 올라갔지만, DVD와 비디오에서는 ‘각본 서민희’로 바뀌게 됐다. 방은진 감독의 <오로라 공주>는 서민희 작가의 시나리오 <입질>을 영상으로 옮긴 작품. <입질>은 (사)한국시나리오작가협회가 주최한 시나리오뱅크 당선작으로, 2002년 8월 작가협회를 통해 (주)시네마서비스에 저작권이 팔렸다.


<오로라 공주>, 서민희 작가의 항의


  시네마서비스는 다시 이스트필름에 제작을 맡겼고, 여배우 출신의 방은진씨가 감독을 맡았다. 감독의 시나리오 수정 작업 끝에 촬영에 들어가게 됐다. 서민희 작가의 크레딧은 ‘원안’ ‘원작 시나리오’ ‘각본’으로 바뀌었다. 당초 <오로라 공주>의 팸플릿과 홈페이지 등에는 ‘원안 서민희’ ‘각본 방은진’으로 올라 있었다. 서민희 작가는 ‘각본’에 자신의 이름이 들어가야 한다고 항의했다.
  서 작가는 △유괴 살해로 딸을 잃은 이혼녀가 유괴 방관자들을 연쇄 살인하고 △경찰인 전 남편이 아내의 범행임을 알고 추적하는 점 등 <입질>의 뼈대가 <오로라 공주>에서도 유지됐다고 주장했다. 영화사가 항의를 받아들여, 개봉을 앞두고 자막이 바뀌었다. ‘원안’ 대신 ‘원작 시나리오 서민희’로. 하지만 작가의 저작권을 수탁받은 한국시나리오작가협회는 ‘원작 시나리오 서민희’가 아니고 ‘각본 서민희’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시나리오작가협회는 10월 말 <오로라 공주>의 크레딧 표기가 작가의 인격권을 침해했다는 공문을 보냈고, 시네마서비스는 11월 중순 항의를 수용해 비디오 등에 ‘각본 서민희’로 표기한다는 회신을 보냈다. 서민희 작가는 “2여 년 울면서 시나리오를 썼는데 제 이름을 찾지 못해 억울했다”고 말했다.


  영화의 크레딧은 대개 담당 프로듀서가 정리한다. <오로라 공주>의 남종우 프로듀서는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면서도 용어 정리의 고충을 밝혔다. 그는 크레딧을 정리하면서 주변의 조언을 구했다. 외국 생활을 오래해서 한국 관행을 잘 몰랐던 것이다. 그는 “스태프들에게 물어보니 이런 경우는 ‘원안’이 맞다고 하더라”고 돌이켰다. 그는 객관성을 위해 사전을 뒤졌다. 사전을 보면서 ‘스크린 플레이’(Screen Play)를 ‘각본’으로 해석했다. 그는 “방은진 감독이 <입질>을 오랫동안 수정해 영화화하기 직전의 시나리오(Screen Play)로 옮겼다고 생각해서 각본에 방은진씨의 이름을 올렸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에게 익숙한 용어인 ‘오리지널 드래프트’(Original Draft)를 ‘원안’으로 해석해서, 서민희 작가를 원안으로 표기했다. 그는 “한국의 관행상 원안은 아이디어 수준을 말한다는 사실을 당시에는 몰랐다”며 “이런 경우 최소한 작가와 감독의 공동각본으로 한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감독이 남의 시나리오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며 “작가에게 미안하고, 감독에게도 죄송하다”고 덧붙였다.


한국엔 ‘공동각본’감독이 유난히 많다?



  <오로라 공주>의 경우와는 다르지만, 시나리오 작가들은 자신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하지 않아도 ‘시나리오는 나의 것’이라고 여기는 감독들이 있다고 성토했다. 완성된 시나리오를 자신이 조금 고쳤다고 ‘공동각본’으로 이름을 올리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심산 시나리오 작가는 “한국은 두 개의 영화 신기록을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자국 영화 점유율이고, 또 하나는 공동각본을 쓴 감독이 많다는 것”이라고 비꼬았다. 유동훈 한국시나리오작가협회 이사장은 “감독은 원래 영화의 전 과정에 관여한다”며 “감독은 카메라, 조명, 음악, 녹음, 편집에 모두 관여하지만 공동촬영, 공동조명, 공동음악으로 이름을 올리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유독 시나리오에 대해서는 공동각본으로 이름을 올리고 싶어한다”고 비판했다. 감독이 시나리오를 쓰면, 흔히 영화 작가로 여겨지기 때문에 영화사도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 <실미도> 등을 쓴 김희재 작가는 “감독이 새로운 시나리오를 쓰거나 시나리오를 만드는 전 과정에 함께 참여했을 때 각본에 크레딧을 올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에서는 각색이라는 말도 잘못 쓰이고 있다”면서 “완성된 시나리오를 다듬는 과정은 각색이 아니라 윤색”이라고 지적했다. 각색은 소설, 수기 등을 시나리오로 만드는 과정을 뜻한다는 지적이다.


  심지어 시나리오에 거의 관여하지 않고도 공동각본으로 이름을 올리는 경우도 있다. <비트> 등을 쓴 심산 작가는 “감독이 작가에게 개인적으로 부탁하면 거절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더구나 신인감독의 경우 자신의 시나리오가 절실하다. 유동훈 이사장은 “신인감독이 역량을 검증받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이 시나리오를 썼다는 것”이라며 “그래서 자신의 시나리오가 아닌 경우에도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신인감독의 경우, 자신의 시나리오라고 하면 일종의 역량 검증 효과가 있어 투자도 쉬워진다. 김희재 작가는 “마케팅을 위해 공동각본으로 양보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영화를 위해 크레딧을 양보했는데, 영화가 성공하면 나중에는 내 작품이 아닌 것이 돼버리는 경우도 있었다”고 돌이켰다.
  최근 화제를 모았던 한 영화의 작가는 “내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었지만, 결국 감독을 비롯해 여러 명의 이름이 각본자로 올랐다”며 “잘못된 각본자 표기에 대한 내용증명까지 준비했다가 포기했다”고 말했다. 작가들에게 작품 경력은 자산이다. 어떤 작품을 했느냐가 다음 작품을 따내는 데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독과 불화를 일으키거나 영화사에 항의를 하는 일은 작품 활동을 계속해야 하는 작가에게 부담이 된다. 그래서 불만이 있어도 항의하기 어렵다. 신인 작가들은 작품을 쓰고도 이름을 올리지 못하는 반면, 유명 작가들은 작업을 하다 빠져도 ‘이름값’ 때문에 크레딧에 오른다. ‘내 이름이 왜 없지?’ ‘내 이름이 왜 있지?’가 동시에 생기는 것이다. 영화 크레딧에 대한 권한이 대부분 제작자에게 속해 있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크레딧 조정위원회’ 운영하는 미국


  시나리오 저작권 분쟁은 한국 영화계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래서 미국작가조합에는 ‘크레딧 조정위원회’가 있다. 시나리오 저작권 분쟁을 조정하는 구실을 하는 기구다. 미국 영화계는 감독조합, 작가조합 등 직능별 단체의 영향력이 커서 ‘크레딧 조정위원회’의 결정이 힘을 가지게 된다. 한국에서도 영화감독, 시나리오 작가, 카메라 감독 등 직능별 조합이 만들어지고 있다. 각 조합은 상호 합의를 통해 분쟁조정위원회를 만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서 시나리오 저작권 분쟁도 다루게 된다. 작가들은 “언젠가는 시나리오 크레딧이 크게 문제화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지금 한국 영화계에 시나리오 저작권에 대한 합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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