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선은 심산정규반 3기 출신의 작가입니다. 데뷔작 시나리오 [동갑내기 과외하기]로 대박(!)치고 나와 한 동안 충무로를 휩쓸더니, 이제 TV 미니시리즈 [연애시대]로 여의도 최고의 작가(!)로 당당히 자리를 잡아가는군요. 벌써 7년 전인가요? 방송구성작가 때려치우고 시나리오작가가 되겠다며 스스로 배수진을 치던 그 당차고도 애달팠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한데...세월은 참 빠릅니다. 연선, 축하해! 그리고 함께 작업하는 한지승 감독에게도 축하한다는 말 전해줘..."I'm Very Proud of YOU!"^^
억지나 환상은 없다 대신 익숙한 현실에 ‘깊은 눈’ 그래서 신선하다
에스비에스 드라마 <연애시대>(월·화 밤 9시55분)는 깔끔한 연출과 감칠맛 나는 대사, 빼어난 연기 등 삼박자를 갖췄다. 영화 <고스트 맘마> <찜> <하루>의 한지승 감독이 연출하고 박연선 작가가 노자와 히사시의 소설을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썼다. 70% 정도 촬영을 끝낸 상태에서 첫 방송을 내보낸, 거의 사전제작된 작품이다.
<연애시대>에 견고한 철학이나 고정관념을 뒤엎는 발상이 두드러지진 않는다. 하지만 출생의 비밀 따위의 억지스런 갈등이나 사랑의 환상은 피하고 대신 현실에 대한 철저한 관찰을 채워넣어 신선하다. 현실적인 캐릭터를 내세워, 너무 익숙해서 되레 보지 못했던 것들을 발견하게 한다.
자신에게마저 소외된 나약한 보통사람들의 자화상
진부한 것과 뜻밖의 것 사이 우리의 일상을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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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은 현재 시점에서 내려야 하지만 선택권은 기억이 쥐고 있다. 사산의 기억 탓에 동진과 은호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미연은 자신을 사랑해준 의붓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동력 삼아, 자신의 딸에게도 그같은 아버지를 마련해주려고 동진에게 돌진한다. 현중이 은호에게 다가서는 데는 어머니를 버린 아버지에게 복수하고픈 마음이 숨어있다. 제작진은 순도 100% 운명적인 사랑의 순수성에 의문을 던진다. <연애시대>의 사랑은 기억이 만들어낸 불순한 욕망을 껴안기 때문에 현실적이다.
제작진은 슬픔도 기쁨도 이물질을 끼워 표현한다. 태어난 날이 숨진 날인 아이의 기일. 무덤 앞에 선 둘은 과자를 사오지 않았다고 서로 타박이다.
<연애시대>는 웃긴데 이 웃음은 시청자가 상황이나 심리에 진지하게 몰입하지 않고 한발 물러나 지켜보도록 만든다. 여기에 자잘한 세부 묘사들이 활력을 불어넣는다. 은호가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아버지에게 자신을 숨기고 마음 속 이야기를 진지하게 꺼낼 때도 아버지는 “미백3종 화장품과 구두 교환권 중 어떤 선물로 드릴까요”라고 천연덕스럽게 묻는다. 그렇다고 웃지만도 못하게 만든다. 대사엔 장난기가 가득한데 미래의 시점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듯 흐르는 주인공들의 독백은 슬프다. 깨닳음은 항상 늦되기 때문이다.
<연애시대>는 전형적인 것과 뜻밖의 것 사이 양다리를 걸친다. 이혼한 여성에게 재벌 2세가 매달리는 상황은 진부한 환타지에 기대는 것이다. 하지만 인물들의 반응은 다르다. 은호의 이혼 경력을 꼬투리 삼아 남자쪽 부모가 난리치며 반대해야겠건만 현중의 아버지는 문제 삼지 않는다.
그렇다고 <연애시대>가 ‘사랑은 이런 거야’ ‘이혼에 대한 편견을 버려’ 등 메세지를 전달하는 건 아니다. 제작진의 시선은 관찰자에 머물러 있다. 인물들은 아무도 사악하지 않지만 상처를 주고 받는다. 동진은 “어설픈 친절이 더 큰 상처를 준다”는 걸 알지만 미연의 눈물을 나몰라라 할 수 없다. 나쁘지 않지만 나약한 그들의 사랑과 기억이 삶에 얽혀드는 과정을 제작진은 거리를 유지하며 치밀하게 따라간다. 글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에스비에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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