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지형 바꾸는 '콘텐츠 혁명가'들
[시사저널]이 주목한 문화 콘텐츠 집단 BEST 5
오늘 막 가판대에 깔리기 시작한 [시사저널] 창간 17주년 특집호를 보셨습니까? 전문가 설문조사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를 발표하면서 현재 대통령 당선 가능성이 54.5%라는 이명박이 활짝 웃고 있는 사진으로 표지를 장식했습니다. 이명박이 과연 그럴 수 있을까...에 대해서 저는 아무런 관심도 없습니다. 제가 말씀 드리려 하는 것은 표지의 맨 아래를 장식한 "문화 지형 바꾸는 '콘텐츠 혁명가'들"이라는 기사입니다.
[시사저널]이 창간 17주년을 맞아 각 분야의 전문가들로부터 추천을 받아 '주목할만한 문화 콘텐츠 집단'을 5개 선정했습니다. 영화 분야에서는 저희 심산스쿨, 드라마 분야에서는 옐로우필름, 공연 분야에서는 쇼틱, 음악 분야에서는 파스텔뮤직, 출판 분야에서는 사이에가 각각 선정되었습니다. [시사저널]이 내건 '선정의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메이저가 아니어도 좋다. 그 분야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콘텐츠를 개발하고, 유통시키는, 의미 있는 문화 콘텐츠 집단을 소개하고 싶다."
5개의 문화 콘텐츠 집단을 소개하는 머릿글은 이렇습니다. "실패 두려워 않고 전인미답의 길 뚜벅뚜벅 걷는다." 저희 심산스쿨을 소개하는 머릿글은 또 이렇습니다. "미치도록 놀고 죽도록 배우니 놀랍도록 큰 성과." 하하하...솔직히 기분 좋습니다. 아직은 미약하지만 언젠가는 막강한 파워 콘텐츠 집단이 되라는 뜻으로 알아 듣겠습니다. 심산스쿨과 관련된 기사의 전문을 아래에 올립니다(기사 내용 중 한국시나리오작가조합과 한국영화시나리오마켓 관련 부분은 온라인 기사에만 실리고 잡지 기사에서는 생략되었다고 합니다). 심산스쿨을 제외한 다른 4개의 문화 콘텐츠 집단에 대해서는 온라인 기사가 올라오면 따로 정리해서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미치도록 놀고 죽도록 배우니 놀랍도록 큰 성과
영화: 시나리오 학교 심산스쿨
문화계 인사를 취재하다 보면, 일과 놀이가 하나가 된 듯한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다. <비트><태양은 없다>의 시나리오를 쓴 심산 작가(46)가 그렇다. 일을 놀이처럼 하고, 놀이를 일처럼 하는, 그것도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 골라서 재미있게 하는 사람.
한겨레문화센터에서 명강의로 이름 높았던 심씨는 올해 심산스쿨(www.simsanschool.com)로 독립해 운영하고 있다. 현업 작가들이 현장감 있는 시나리오 워크숍을 연다. 현재는 심산 작가와 노효정 작가(<인디언 썸머>각본·감독), 김대우 작가(<음란서생> 각본·감독)의 워크숍이 진행 중이다. 여기에 곧 대중문화평론가 이영미씨의 ‘한국멜로연구’가 가세하고, 올해 말에는 박헌수 작가(<화산고>, <싱글즈> 각본)의 워크숍과 심산씨의 와인반이 새롭게 문을 열며, 내년 초에는 일년 내내 예술사 강좌가 이어질 예정이다. 꼭 영화 시나리오 강좌만 고집하지 않는다. 그럼 어떤 강좌를 개설할까? 기준은 간단하다. “내(심산)가 수강하고 싶은 강좌.”
그런데 이 심산스쿨의 분위기가 독특하다. 심산스쿨은 시나리오 학교이고, 학파이고, 커뮤니티이다. 한겨레문화센터 시절부터 인연을 맺은 동문들이 호러·스릴러·멜로 등 장르별로 스터디 모임을 만들어 공부하고, 동문들끼리 여행도 가고, 록밴드를 만들어 연습도 한다. 취재를 한 날도 심씨의 팔은 햇볕에 타 피부가 벗겨질 정도로 그을려 있었다. 심산스쿨 동문들과 제주도 자전거 여행을 다녀온 직후였다.
그렇다고 노는 데만 일가견이 있는 심산스쿨로 오해 말라. 시나리오 학습은 하드 트레이닝이다. 심작가는 첫 수업부터 수강생 10%가 수강을 철회하게 만든다. “고등학교 때에 버금가도록 숙제를 낼 것이고, 숙제를 안 해오면 수업을 못 듣는다. 그만둘 거면 지금 그만두라. 48시간 안에 환불해주겠다.” 왜 이렇게 엄격하게 할까? “시나리오는 취미가 아니고, 여기에는 글을 써서 밥 먹고 살자고 해서 오는 것이니까. 그런 각오로 시작해야 끝까지 갈 수 있으니까.”
그의 일과 놀이에 대한 열정에 전염된 것일까. 의사, 만화가, 법조인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심산스쿨 출신 동문 500 여명은 활발하게 활동한다. 올 한해 동안 시나리오를 영화사에 팔아본 동문들도 12명이나 된다. 제자 가운데 누군가 공모전에 당선되고, 영화사에 시나리오를 팔았다는 소식, 그가 제일 기분 좋아하는 소식이다.
심산스쿨 동문들이 시나리오 시장에서 차츰차츰 두각을 나타내면서 심산스쿨은 일종의 시나리오 작가 에이전시 역할을 하기도 한다. 동문들이 영화사와 계약을 하기 전에 계약서에 독소 조항이 없는지 꼼꼼히 챙겨준다. 그리고 심산스쿨 시나리오작품집을 발간해 주요 제작자와 투자자에게 발송한다. 올해 여기에 4편을 실었는데, 그 가운데 세 명이 영화사와 시나리오 계약을 했다. 에이전시라고는 하지만 일종의 중개 수수료는 없다. 그의 말대로 “제자들에게 돈을 받을 수는 없으니까”
하드 트레이닝과 놀이에 ‘단련된’ 심산스쿨 동문들의 유대감은 끈끈할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 어디에 수강생 출신으로 시나리오 공모전에 당선했다고, 심산스쿨을 널리 알려야 한다면서 광고비를 자신이 내겠다고 끝까지 우기는 ‘스쿨’이 있겠는가.
심씨는 이밖에도 김희재 작가(<실미도> 각본)와 김대우 작가와 함께 시나리오작가조합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40여명이 넘는 작가가 참여하는 이 ‘길드’는 충무로의 파워 그룹이다. 작가들의 권익 보호에 철저하고, 불합리한 관행을 없애기 위해 노력한다. 또 소속 작가가 각본에 참여할 경우에는 크레디트 이름 뒤에 'sgk'라는 작가조합명을 병기한다.
그리고 그는 한국영화시나리오 마켓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다. 일종의 시나리오 오픈마켓으로 한달에 100여편씩 들어오는 작품들을 심사해 매월 5편 내외로 추천작을 선발하고, 일부에게는 창작 지원금도 준다. 시나리오가 판매되면 계약금의 3%를 마켓에 납부하면 된다. 여기서 올 한해 동안 신진 작가의 시나리오 16편이 팔려나갔다. 그동안 신진 작가들이 제작사에게 시나리오를 보여줄 공개된 통로가 없었다는 점, 각종 공모전 당선작의 영화화 비율이 5% 미만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매우 놀라운 성적이다. 그가 이렇듯 ‘투명한 유리상자 시장’이라 할 수 있는 시나리오마켓에 관심을 두는 것은 그동안 시나리오 작가들이 황당한 사례로 저작권 침해를 받은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러저러한 공식 직함을 갖고 제작자들에게 매섭게 달려드는 것이다.
심산 작가는 50세가 되면, 몸과 마음이 산에 가있는 ‘심산(心山)’이 될 생각이다. 산악문학에 관심이 있는 그는 심산마운틴라이브러리를 만드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 산악문학 작가로, 산악인으로 꽤 알려져 있어 해외 원정 등반 제안이 많이 들어오지만, 시간이 없어 거절했던 해외 원정에도 여한 없이 합류할 요량이다. 그는 “노는 것을 너무 좋아한다”라고 하면서도 불쑥 “한국적 록 뮤지컬을 만드는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재미있지 않겠냐?”라고 묻는다. 그래서 그에게 일과 놀이는 하나처럼 보였다. 하긴 어차피 문화는 가지고 놀기에 좋은 그 무엇이기도 하니까.
차형석 기자 cha@sisapress.com
[시사저널] 2006년 10월 3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