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팔꽃을 그리워하는 달팽이
심산집필실의 이상한 축음기
달팽이 한 마리가 어디론가 기어갑니다. 동그란 판 위를 기어가는데 그 길에는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길 위에 새겨진 것들은 흡사 히말라야의 돌 위에 새겨진 불경 같기도 합니다. 달팽이가 가 닿으려는 곳에는 연꽃이 피어 있습니다. 그 연꽃 받침대 위에는 놀랍게도 우리나라의 배꽃이 피어 있군요.
[img5][img6][img7][img8][img9]위에서 그리고 멀리 떨어져서 바라본 모습입니다. 축음기의 스피커를 자세히 들여다보시면 나팔꽃 세 송이가 피어 있습니다. 조금 멀리 떨어져서 보니까 이 해괴한 축음기가 놓인 장소가 눈에 들어오는군요. 저의 집필실입니다. 나팔꽃 스피커가 본체와 이어진 부분에는 플래쉬를 터뜨려서 찍었습니다. 예쁜 꽃구름들이 피어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제 집필실 책상 위에 들여놓은 서원영의 조각작품입니다. 처음에는 이걸 심산스쿨에 갖다놓을까 했습니다만 제가 아침 저녁으로 들여다보고 싶어서 이곳에 갖다 놓았습니다. 아침에는 오른쪽 창문으로 해가 뜨고 저녁에는 왼쪽 창문으로 해가 집니다. 해와 달이 뜨고 지는 모든 순간 저 달팽이는 지치지도 않고 하염없이 기어가고요.
조금 전 첫눈이 나부낄 때 참 좋았습니다. 저 축음기 너머로 흩날리는 눈발들을 보고 있자니 문득 히말라야가 너무도 그리웠습니다. 갑자기 디카를 꺼내 이리 저리 찍어서 이곳 게시판에 올립니다. 구석 구석 참 예쁜 작품인데 엉성한 디카로 솜씨 없이 찍어놓으니 공연히 작가인 서원영에게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조만간 제대로 된 카메라로 정성 들여 찍어서 다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얼마 전에 열린 서원영 조각전 [어느 성간측량기사의 비망록 Memorandum of an Interstellar Surveyor]에서 구입한 작품입니다. 제목도 참 재미있습니다. [히말라야를 찾아서/축음기 Tracking Himalayas/Gramophone]입니다. 작품 크기는 30 곱하기 30 곱하기 42 센티미터이고요, Black Sandstone과 Bronze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전시회 도록에 작가가 이 작품에 대한 짤막한 글을 남겨 놓았네요. 아래는 서원영의 글입니다.
나팔꽃의 꽃말은 ‘그리움’이다. 이 꽃의 원산지는 히말라야라고 한다. 성산(聖山) 히말라야의 기슭에서 한해걸음으로 장구한 세월을 내려와 반도의 이름 없는 시냇가 둔덕 위로 뿌리내린 나팔꽃은 건강하지만 동시에 애잔함을 느끼게 하는 향수의 또 다른 이름이다. 인생은 무엇이 되어 어디에서 만날지 모르는 그리운 이들과의 훗날을 기약하는 미로로의 여행이며 천국이란 ‘그들’이 ‘우리’가 되어 함께 나누는 추억담이 아닐까. 삶의 의미를 찾아 느리고 고된 삼보일배 오체투지의 순례가 이어졌던 그 굽이진 길 위에 영혼의 고향으로 향한 동경을 되새겨본다.
첫눈이 나부끼니 공연히 센티멘탈해져서 이런 글을 올리고 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