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심산 등록일: 2007-11-19 23:4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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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팔꽃을 그리워하는 달팽이
심산집필실의 이상한 축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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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한 마리가 어디론가 기어갑니다. 동그란 판 위를 기어가는데 그 길에는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길 위에 새겨진 것들은 흡사 히말라야의 돌 위에 새겨진 불경 같기도 합니다. 달팽이가 가 닿으려는 곳에는 연꽃이 피어 있습니다. 그 연꽃 받침대 위에는 놀랍게도 우리나라의 배꽃이 피어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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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그리고 멀리 떨어져서 바라본 모습입니다. 축음기의 스피커를 자세히 들여다보시면 나팔꽃 세 송이가 피어 있습니다. 조금 멀리 떨어져서 보니까 이 해괴한 축음기가 놓인 장소가 눈에 들어오는군요. 저의 집필실입니다. 나팔꽃 스피커가 본체와 이어진 부분에는 플래쉬를 터뜨려서 찍었습니다. 예쁜 꽃구름들이 피어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제 집필실 책상 위에 들여놓은 서원영의 조각작품입니다. 처음에는 이걸 심산스쿨에 갖다놓을까 했습니다만 제가 아침 저녁으로 들여다보고 싶어서 이곳에 갖다 놓았습니다. 아침에는 오른쪽 창문으로 해가 뜨고 저녁에는 왼쪽 창문으로 해가 집니다. 해와 달이 뜨고 지는 모든 순간 저 달팽이는 지치지도 않고 하염없이 기어가고요.

조금 전 첫눈이 나부낄 때 참 좋았습니다. 저 축음기 너머로 흩날리는 눈발들을 보고 있자니 문득 히말라야가 너무도 그리웠습니다. 갑자기 디카를 꺼내 이리 저리 찍어서 이곳 게시판에 올립니다. 구석 구석 참 예쁜 작품인데 엉성한 디카로 솜씨 없이 찍어놓으니 공연히 작가인 서원영에게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조만간 제대로 된 카메라로 정성 들여 찍어서 다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얼마 전에 열린 서원영 조각전 [어느 성간측량기사의 비망록 Memorandum of an Interstellar Surveyor]에서 구입한 작품입니다. 제목도 참 재미있습니다. [히말라야를 찾아서/축음기 Tracking Himalayas/Gramophone]입니다. 작품 크기는 30 곱하기 30 곱하기 42 센티미터이고요, Black Sandstone과 Bronze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전시회 도록에 작가가 이 작품에 대한 짤막한 글을 남겨 놓았네요. 아래는 서원영의 글입니다.

나팔꽃의 꽃말은 ‘그리움’이다. 이 꽃의 원산지는 히말라야라고 한다. 성산(聖山) 히말라야의 기슭에서 한해걸음으로 장구한 세월을 내려와 반도의 이름 없는 시냇가 둔덕 위로 뿌리내린 나팔꽃은 건강하지만 동시에 애잔함을 느끼게 하는 향수의 또 다른 이름이다. 인생은 무엇이 되어 어디에서 만날지 모르는 그리운 이들과의 훗날을 기약하는 미로로의 여행이며 천국이란 ‘그들’이 ‘우리’가 되어 함께 나누는 추억담이 아닐까. 삶의 의미를 찾아 느리고 고된 삼보일배 오체투지의 순례가 이어졌던 그 굽이진 길 위에 영혼의 고향으로 향한 동경을 되새겨본다.

첫눈이 나부끼니 공연히 센티멘탈해져서 이런 글을 올리고 있군요...^^

댓글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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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님

2007.11.20 00:03
앗! 서울에 첫눈 왔어요? 눈발 보고 싶네요.^^

김성훈

2007.11.20 01:59
어마어마한 눈발이었지요....심샘한테는 센티멜탈한 눈발이었네요^^....전 그시간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는길에 차가 휘~~~익하고 돌아가더니 가만히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던 차에 그냥 꽝!!! 보험회사에 사고접수 시켰습니다... ^^;;;
일년전부턴 이놈의 겨울이 싫네요....아픈일만 안겨다 주니....

강민정

2007.11.20 07:47
어르신은 술을 줄이셔야됨이 마땅합니다. 이깐일로 저다지도 센치해지시면... 음... 글구 그 알코올이라는 게요, 남성을 여성화시킨데요. 어르신 속의 그 수많은 여자와 아줌마와 부녀회장님을 없애시려면 술을 줄이시는 게 가장 합당하고 마땅한 일인줄로 아옵니다. 뭐 저희야 그 덕분에 서울시내에서 최강의 화장실을 쓰고 있지만... ㅋㅋㅋ

글구 어르신께서 사시는 동네는 눈 안 오고 비왔거든요. 비요 비!!! 태양을 피하고 싶었어~~~ 씁햐씁햐~~~

한수련

2007.11.20 08:55
으음.... 이번에 수정들어갈 내 동화주인공이랑 같은 컨셉이다.....
확실히 작가가 만든작품이니까 느낌이 남다르군요.
쌤, 책상이 너무 깨끗해서 못알아볼뻔 했어요. 크하하핫!!!

임현담

2007.11.20 10:21
생각해 보세요. 히말라야에서 어느 날 나팔꽃이 하나 피어났는데요. 그 아이가 이제 때가 되어 자신의 꽃씨를 툭 터뜨렸구요. 나팔꽃이라는 아이들이 늘 아침이면 햇살을 보는 아이들이라 씨앗 역시 동쪽의 낮은 곳으로 굴러떨어졌겠죠. 이런식으로 슬금슬금 달팽이 속도로 동진했을 거에요. 그런데 어느 사이에 인간이라는 존재가 지상에 등장하고 그 중에서 꽃에 대해 아름다움을 느끼는 부류가 생겨나더니 이제는 꽃씨가 조금 빠르게 동쪽으로 움직였을 거에요. 달팽이처럼 동진하던 아이들이 바랑 뒤에 혹은 말잔등, 낙타에 실려 흔들흔들...그렇게요. 몽골도 지나고 만주도 지나고 어떤 아이는 더욱 동쪽으로 갔지만 어떤 아이들은 한반도까지 내려왔죠. 주문진에 가면 바다를 보는 한 민박집이 있는데 몇 년 전인가. 그 집에서 아침에 동해바다를 보면서 피어있는 나팔꽃을 보았는데요. 더 갈데가 없겠죠. 가난하던 시절에 누군가 이민 가방에 나팔꽃씨를 가지고 북미, 브라질로 갔을지도 모르겠군요.
그런데 모르기는 하지만 그렇게 동쪽으로 동쪽으로 한 바퀴 돌아 이미 히말라야에 도달한 어떤 녀석이 있을 거 같아요. 그곳에서 토박이로 피고지고 피고지던 나팔꽃은, 지구 한 바퀴 돌고 온 아이에게 말하겠죠. 이제 왔니?

최상식

2007.11.20 10:43
어제 내린 첫눈,살포시 천천히 내려주던 시골 할머니집앞 밤 풍경이 그리워졌습니다.가로등 불빛 아래,그 추억^^

한명석

2007.11.20 11:19
음, 저 작품은 완전 내 취향인데.... 샘난다.
그리고, 나는 심샘 집필실이 원래 깨끗한 줄 알았다는...

김영희

2007.11.20 12:50
달팽이 걸음으로 지구를 한 바퀴 돌고 온 나팔꽃씨!!! ㅡ.ㅜ

박선주

2007.11.20 13:01
나팔꽃씨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

홍영석

2007.11.20 13:04
달팽이 요리에 와인 한 잔 생각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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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산

2007.11.20 13:32
저 동네, 여의도가 아니라 신촌이거든? 신촌에도 잠시 함박눈 내렸어...
내 집필실 원래 깨끗해...내가 정리 정돈의 대마왕이거든?
나팔꽃-달팽이-히말라야에서 동화와 신화를 읽어내는 사람도 있고
달팽이 요리와 와인을 읽어내는 사람도 있고...ㅋㅋㅋ
저 역시 저 작품을 보자마자 [히말라야 어깨동무]의 사랑방인 [나팔꽃통신]이 생각났답니다...^^

홍영석

2007.11.20 14:02
어제 내린 눈은 눈이 아니고 수제비였어요. 하얀 떡가루가 점점 커지더니 고물에서 수제비로 변신하는 것이었죠. 그래서 뜨거운 멸치국 한 입 물고 하늘 보면서 입 벌리고 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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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로진

2007.11.20 15:43
오오옷~~~ 멋진 조각 작품입니다.
그리고.....촬영을 위해 방을 매우 깨끗하게 정리하셨네요^^

강민정

2007.11.21 09:21
신촌에도 함박눈 내렸군요. 눈온다는 후배의 전화에 밖을 내다보면서 "우리 동네는 안 오는데..." 나중엔 문자를 받았는데 거의 함박눈이라고... 끝내는 '내가 벌써 노안이 오나?' 싶어 창문을 열고 봤더니 비였다는... 어찌나 허무하던지... 우리나라가 정말 넓구나, 특히 서울 땅이 댑따 크구나를 느꼈습니다.

김경선

2007.11.21 09:30
잠시 가슴이 뭉쿨했었습니다. 해와 달이 뜨고 지는 모든 순간, 연꽃위를 기어가는 달팽이.
근데 왜 연꽃 받침대위에 배꽃이 있을까요? 뜬금맞게...조각이 잘못되었거나 혹은 관찰이 잘못되었거나...?

심산 스쿨의 관계자분들은 심산샘의 샌티에 전혀 도움이 안되네요.
여러 정황으로 판단컨데...저 방의 갈끔한 정돈은 설정이구만요.
청소하시느라 애쓰셨어요.^^
만약 지저분했어도 용서가 됐을겁니다. 심산샘이니까^^

임현담 선생님의 동화와 신화도 참 재미있었답니다.
저는 가끔 몇몇분들의 뇌 구조가 궁금하기도 해요. 신기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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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산

2007.11.21 13:04
저 배꽃...배꽃 맞아
나도 처음엔 링가 같아 보여서 혹시 링가 아니냐고 물어봤더니 작가가 배꽃이래
왜 배꽃이냐고? 그거야 작가 맘대로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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