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로진 선생님의 심산스쿨 고별사
[명로진인디반 20기]를 끝으로 독립
2006년부터 올해까지 무려 7년의 세월 동안 심산스쿨에서 [명로진인디반]과 [명로진고전반]을 이끌어주셨던 명로진 선생님께서 지난 주 종강한 [명로진인디반 20기]를 끝으로 심산스쿨을 떠납니다. 행여라도 오해하지 마십시오. 뭐 “명로진과 심산이 싸웠대?”“심산이 명로진을 내쫓았대?” 이런 종류의 말도 안되는 억측 따위는 사양합니다(ㅋ). 오랜 기간 동안 명로진 선생님과 제가 ‘함께 고민’하고 ‘기꺼이 합의’하여 내린 결정입니다.
제가 한겨레문화센터로부터 독립하여 [심산스쿨]을 설립했을 때의 나이가 40대 중반이었습니다. 명로진 선생님도 이제 그 나이대를 통과하고 있습니다. 명성으로 보나 콘텐츠로 보나 심산스쿨로부터 독립하여 [명로진스쿨]을 설립하고도 남지요. 명로진 선생님의 이번 독립투쟁(?)은 장기적으로는 [명로진스쿨]을 만들기 위한 사전 포석 정도로 보시면 됩니다. 제가 명로진 선생님께 직접 드린 조언은 이렇습니다. “명로진스쿨을 만들어. 다만, 오프라인에서는 말고, 온라인에서만. 심산스쿨 같은 오프라인 교실(일종의 부동산)을 유지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야.”
행여라도 오해하지 마십시오. 저는 심산스쿨을 만든 것에 대하여 단 한 번도 후회해본 적이 없습니다. 심지어 제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들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비즈니스의 측면에서 심산스쿨을 보면, 너무 낭비(?)가 많습니다. 세상에, 하루에 단 2시간을 사용하는 공간을 유지하느라 1년에 수 천 만원의 경상비를 지출하다니, 오너가 제 정신이 아닌 거지요(ㅋㅋㅋ). 저는, 믿기 어려우실 테지만, 심산스쿨의 텅 빈 공간과 시간을 사랑합니다. 이따금 그곳에서 혼자 음악을 듣고 혼자 전각을 하고 혼자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합니다. 너무 비싼 비용을 치러야 하는 ‘나만의 즐거움’인 셈이지요. 하지만 명로진 선생님까지 그럴 필요는 없기에 그렇게 조언한 겁니다. “명로진스쿨에 부동산은 필요하지 않다.”
명로진스쿨은 아직 완성단계가 아닙니다. 하지만 그 동안 착실히 물밑 준비작업을 해왔습니다. 명로진 선생님이 네이버 카페에 만드신 [명로진의 인디라이터 교실]은 그 교두보에 해당합니다. 명로진 선생님과 인디라이터 과정에 관심을 갖고 계신 분들은 꼭 이 카페를 방문하여 회원으로 가입해주세요. 주인장의 해박한 인문교양과 넉넉한 인품을 금세 느끼실 수 있으실 겁니다.
명로진의 인디라이터 교실 바로가기
http://cafe.naver.com/indibook
자, 이제 명로진 선생님을 떠나 보내야할 시간이 왔습니다. 하지만 심산스쿨의 강의실에서만 떠나보내는 것이지 명로진이라는 사람 자체와 이별을 고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와 명로진 선생님과의 인연은 올해 벌써 햇수로 30년째가 됩니다. 거의 가족이나 형제와 다름없지요. 명로진 선생님은 앞으로 [화산회] 산행에도 자주 참가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저는 예전처럼 명로진 선생님과 함께 평일날 산에 오를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설레입니다. 하지만 어쨌든 [명로진인디반]과 [명로진고전반]을 더 이상 심산스쿨에서 만나볼 수는 없게 되었습니다. 심산스쿨을 통하여 명로진 선생님과 인연을 맺었던 모든 분들, 이 자리를 빌어 따뜻한 인사말과 격려의 말씀 나눠주시길 기원합니다.
아래는 명로진 선생님께서 직접 작성해서 보내주신 고별사입니다.
명로진 선생님의 심산스쿨 고별사
제가 요즘 궁금한 건 이런 겁니다. 진실과 아름다움은 공존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왜 신은 모차르트에게 음율을 선사했고, 로댕에게 미학을 드러나게 했으며, 로렌스 올리비에에게 표현의 천재를 부여했을까? 살리에리가 보기에 모차르트는 부도덕했고, 카미유 클로델이 느끼기에 로댕은 진실하지 못했으며, 수많은 여성과 남성에게 올리비에는 거짓말쟁이였는데 말입니다.
이런 질문을 던진다면 아마도 심산 선생님은 이렇게 말하겠지요. "헤이, 로진! 그런 어려운 질문은 개에게나 주고 와서 한 잔 하자고." 맞습니다. 저런 질문은 개에게나 주고 산에 가는 것이. 저런 질문을 품기보다는 와인을 한 잔 하는 것이. 그러므로 세상에서 가장 잘하는 짓(!)은 좋은 사람들과 산에 가서 와인을 한 잔 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심산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저는 그 소중한 진리를 영영 몰랐을 겁니다.
심산 선생님을 처음 만난 것은 1984년, 대학에 입학할 때였습니다(이때부터 제 인생은 꼬이기 시작합니다^^). 그와 나눈 시간들을 풀어놓자면 최소한 서너 달은 걸릴 것이고, 그와 함께 한 추억들을 이야기하자면 열권짜리 시리즈는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여간 꼬일 대로 꼬인 저의 인생은 2007년 1월, 심산스쿨에 [명로진인디반]을 개설하면서 정점을 찍었습니다.
음.....2006년의 어느 날, 심샘이 그러더군요. "스쿨에 공실이 많아....와서 네가 연기반이라도 만드는 게 어때?" 저는 웬만한 연기자들도 학원 만들었다 망하는 걸 봐와서 고개를 저었죠. 얼마 뒤에 심샘은 또 이렇게 말하더군요. "그럼, 살사댄스반을 만들어 봐." 저는 역시 고사했습니다. 춤 때문에 바람 난 사람이 많다는 소문을 들은 아내에게 혼나고, '다시는 춤을 추지 않겠다'고 맹세한 직후였거든요. 며칠 뒤 제가 역으로 제안을 했죠. "인디라이터반을 만들겠습니다." "그게 뭔데?" "글 쓰고 책 내려는 사람들을 위한 강좌죠." "오케이!"
이렇게 해서 [명로진인디반]이 생겼습니다.....이후 7년 동안 20기까지 500 여명의 수강생이 이 반을 거쳐갔습니다. 그간 [명로진인디반]에서 90 여권의 단행본이 출간되었습니다. 대단한 성과입니다. 하지만 이런 결과는 제가 인디반에서 얻은 것의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인디반에서 훌륭한 수강생을 만나서 저의 인생이 이전보다 더 진실해지고 아름다워졌습니다. 영화배우, 가수부터 목사님까지. 고등학생에서 60대까지를 아우르는 다양한 제자들과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밥을 먹고 놀았습니다. 저에게는 그게 가장 중요합니다.
이번 주 [명로진인디반 20기] 종강을 끝으로 저는 심산스쿨을 떠납니다. 사실 제가 심산스쿨 강사가 된 것은.....제가 누굴 가르치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형이자 선배이자 제 인생의 멘토인 심산님께 더 배우기 위해서였습니다. 그간, 아무도 모르게 저는 심산 선생님을 조용히 만나 인생과 사랑과 우주에 대해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올해 초.....선생님은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로진....이제 하산해. 나는 더 이상 가르칠 게 없어." "형, 말도 안 돼요. 아직 난 배울 게 많아요." 심산 샘은 갑자기 일어나 와인셀러에서 동 페리뇽 샴페인을 꺼내 땄습니다. 잔에 술을 가득 따르더니 이렇게 말씀하셨죠. "이 잔 속의 와인하고 세상의 모든 와인 중에 어떤 게 더 많아?" "그야 세상의 모든 와인이죠." "내가 가르친 건 한 잔의 와인에 불과해. 이제 세상으로 나가라고!" 네.....그랬습니다. 심산 샘은 저에게 밖으로 나가 '명로진 스쿨'을 만들고 글쓰기와 책 쓰기에 관한 한 국내 최고가 되라고 하셨습니다.(사실은 제가 조금 우기기도 했습니다. 나가겠다고...^^).
저는 이제 심산스쿨을 떠나려 합니다. 언제까지라도 이곳에 남아 여러분을 만나고 싶습니다만, 갈 길은 멀고 해는 지고 있기에 더는 머뭇거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저는 네이버 카페에 '명로진의 인디라이터 교실'을 개설했습니다. 이 작은 모임을 바탕으로 새롭게 도약하려 합니다. 인디라이터 교실 카페와 심산스쿨은 앞으로도 긴밀히 협조할 예정입니다. 당연히 저는 온라인으로나 오프라인으로나 심산스쿨에 자주 들를 생각입니다. 나중에 뵙게 되면 친정에 오는 딸자식처럼, 고향에 돌아오는 탕아처럼, 그렇게 따뜻하게 맞아 주시길 바랄 뿐입니다.
그동안 저를 아껴주시고 관심을 가져주신 심산 선생님, 내혜 선생님, 강헌, 김진석, 김대우, 김원익, 박헌수, 노효정 선생님, 그리고 심산스쿨 동문 여러분, 와인반 1기와 사진반 1기 동기 여러분 모두에게 머리 숙여 깊이 감사드립니다.
현재 심산스쿨에는 [명로진인디반]과 관련된 게시판이 있습니다. 인디반 졸업생들의 모임인 [인디언스]와 고전반 커뮤니티인 [명로진고전반]입니다. 이 두 커뮤니티에 많은 분들이 소중한 추억을 담아 주셨습니다. 그러나 제가 떠나는 마당에 게시판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을 것 같습니다. 따라서 [인디언스]와 [명로진고전반] 커뮤니티는 2013년 7월 31일까지만 운영합니다. 그동안 회원 여러분은 이곳의 글과 사진 등을 잘 갈무리하시길 바랍니다.
어렵고 힘든 나날, 많이 웃으시고 많이 행복하시길 바라면서
명로진 올림
잘 챙겨주지 못해서 미안해...
앞으로는 산에서 보자구!
명로진은 [화산회] 필참멤버야, 알았지?
아 그러고 보니까...예전에 너랑 재구랑 산에 다닐 때...
그때 이름은 [목요산악회]였는데...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