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를 쓰고 올라가고 물 흐르듯 내려가고
심산/작가
젊은 시절에 원 없이 산에 올랐다. 한창 바위에 빠져있을 때에는 매주 일주일에 사나흘씩 출근하듯 산에 갔다. 지리산이나 설악산 같은 큰 산에 들어가면 아예 보름씩 눌러앉아 밖으로 나올 생각을 안했다. 넉 달 가까이 지속된 히말라야 원정에 참가한 적도 있다. 당시의 산은 온통 능선과 바위만으로 파악되었다. 눈앞을 가로막는 절벽이나 아스라한 정상을 올려다보면 나도 모르게 아드레날린이 휘몰아치고 피가 끓었다. 후회는 없다. 매우 힘들었지만 동시에 행복한 순간들이기도 했다. 굳이 조어(造語)하자면 '고통의 축제'다.
청춘보다는 노년에 더 가까워진 요즈음에도 여전히 산에 오른다. 하지만 다른 산이다. 더 이상 바위절벽에 붙어 버둥거리지도 않고, 기어코 정상에 서야겠다며 발걸음을 재촉하지도 않는다. 계곡을 한 구비만 돌아도 세상을 눈 밖으로 밀어내기만 하면 그대로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 숨은 폭포와 마주치면 반갑게 유두(流頭)를 하고, 맑은 계곡을 만나면 기꺼이 탁족(濯足)을 할 뿐. 산벗들이 저마다 배낭에서 꺼내어 펼쳐놓은 소박한 먹거리와 마실거리들을 하릴없이 만끽하고 있노라면 나른한 행복감의 시간은 편안하고 유장하게 흘러간다. 이런 어이없는 경지를 가리켜서는 '무위(無爲)의 희열'이라고나 해야 할까.
절벽과 능선은 청춘의 경기장이다. 기를 쓰고 올라야 한다. 폭포와 계곡은 노년의 놀이터다. 더 이상 오를 필요 없다. 그저 흐르는 물과 함께 아래로 잦아들면 그만이다. 생각해보면 단순한 진리다. 누구나 자기 나이에 걸맞는 삶을 살아야 한다. 산행 또한 그러하다. 피 끓는 청춘이 산 아래 계곡에서 물놀이만 하다가 돌아선다면 뻘쭘하고 남세스러울 것이다. 힘에 부치는 노인이 바위에 매달려 안간힘을 써댄다면 그 또한 우스꽝스럽고 위험할 따름이다.
나는 나이 들어 만나게 된 새로운 산과 기꺼이 악수하며 살가운 눈웃음을 나눈다. 절벽의 위와 산의 정상은 더 이상 궁금하지도 않다. 이따금 이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 수원지(水源池)는 어떤 모습일까 잠시 궁금해 하다가도 이내 젖은 발을 말리고 다시 등산화 꿰신기가 귀찮아 그대로 뒤로 벌렁 누워버린다. 흐르는 물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힌다. 물가에 오래 살다보면 가는귀를 먹는다고 한다. 세속의 저 번잡한 시시비비를 멀리 하려면 그렇게 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다. 그냥 이대로 깜빡 잠이 들어도 좋을듯하다.
[좋은 생각] 2019년 10월호
오랫만에 월간지에 짧은 원고를 썼다
쓰고 보니...무슨 '화산회' 찬가 같다 ㅋㅋㅋㅋ
아 올여름에는 정말 산에도 못가고 이게 뭐하는 짓인지...
다들 잘 지내고 있겠지?
추석연휴 잘들 보내고 그 이후에 보기로!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