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향의 책 향기]
천연의 사원
김선미의 '산에 올라 세상을 읽다'
이주향(수원대교수·철학)
미인은 또 다른 미인에 예민하고, 학자는 자료에 예민하고, 성공한 사람은 실패에 예민합니다. 예민한 그 부분은 삶의 이유가 되기도 하고, 히스테리가 되기도 하고, 기도가 되기도 해서 감추기가 어렵습니다. ‘산에 올라 세상을 읽다’(영림카디널)를 읽다가 웃었습니다. 어쩌면 모두들 그렇게 제각기 산에 오르는지요. 산악전문지 기자 김선미는 산을 좋아하는 많은 이를 만났습니다. 만화가 허영만, 소설가 박범신, 풍수학자 최창조, 가수 전인권, 바둑기사 조훈현, 여행작가 이해선, 지리산 시인 이성부, 시민운동가 박원순, 목사 조화순, 자전거 레이서 김훈, 바람의 딸 한비야…. 김선미는 그들을 ‘산이 만든 사람들’이라고 했지만 제각기 ‘그들의 산’인 것은 어쩔 수가 없네요.
[img1]경쟁 지향적인 사람들에게 산은 정복의 대상입니다. 실패에 예민한 이들은 고지가 바로 저긴데 예서 말 수는 없는 사람들이지요. 늘 정상이 얼마 남았냐고 묻은 이들은 정상밖에 안중에 없어 현재를 제물로 바치고 있습니다. 이들과 대척점에 서있는 이가 풍수학자 최창조네요. 해월 최시형 선생이 어머니 가슴과도 같은 땅을 찌르며 다닐 수 없다고 지팡이조차 쓰지 않았다면 산이 좋아 평생 산을 쫓아다닌 최창조는 바위에 상처 내는 일이 어쩐지 싫어 암벽을 오르는 행위는 하지 않는, 여린 산사나이입니다. 그런 그에게 산은 어머니의 품이었습니다.
가수 전인권에게 산은 풀벌레 소리, 새 소리, 바람 소리가 어우러지는 자연 오케스트라였고, 식물학자 이유미에게 산은 거대한 도서관이자 연구실이었습니다. 천문학자 이태형에게 산은 별들이 신내림하는 굿판이었고, 시민운동을 하는 박원순에게 산은 한발 한발 내 힘으로 걷지 않으면 조금도 움직일 수 없는 곳, 내 발의 힘을 믿게 되는 곳이었으며, 히말라야를 사랑하는 의사 임현담에게 산은 존재의 병을 진단하고 치유하는 의사였습니다. 모두들 그렇게 자기 삶의 자리에서 산을 만나지만 거대한 산은 그렇게 찾아온 존재를 조금씩 조금씩 정화시켜 마침내 산사람이 되게 합니다. 김시습처럼 주유천하의 꿈을 꾸고 있는 산사나이 심산은 이런 얘기를 했네요.
“흙 위에 누워 별을 보고 있으면, 내가 제대로 존재하고 있구나, 느껴요. 냉정하던 내가 편안해져서 덜 공격적이 되는 것도 같고, 뭐랄까 균형감각을 되찾는 것 같아요.”
그들은 왜 그렇게 힘들게 산에 오를까요? 생각보다 힘들지만 생각보다 편안하기 때문입니다. 생각보다 편안해지면 다 내려놓게 되지요. 성공도 내려놓고 실패도 내려놓고, 자만도 내려놓고 비굴도 내려놓고, 미모도 내려놓고 열등감도 내려놓고…. 그래서 산사나이 이성부 시인은 이런 고백을 하나봅니다. 산은 만나고 이해할수록 관계가 깊어지는 그런 대상이라고. 산이야말로 우리 속의 영성을 깨우는 하느님이라는 얘기지요. 깊이 알수록 산은 그 누구도, 그 어떤 문명도 흉내 낼 수 없는 천연의 사원입니다.
[조선일보] 2006년 12월 15일
한학기 내내 [지와 사랑] 강의 하셨는데. 마침 내가 그 책을 정독한 후라... 강의시간 내내 즐거웠었죠.
선생님 이 분이랑 친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