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지지부진?…''죽음의 지대''로 갈까요
■죽음의 지대-라인홀트 메스너의 등반을 통한 의식탐구/라인홀트 메스너 지음/김영도 옮김/한문화/1만1000원
1944년 알프스 남티롤에서 태어난 산악가이자 오지체험가 겸 작가 라인홀트 메스너는 1970년부터 1986년까지 세계에서 가장 높은 8000m급 산봉우리 14곳을 인류사상 처음으로 등정인 인물이다. 20대 때 이미 알프스를 500회 이상이나 오르며 산악인으로 뼈를 굳힌 그는 1978년엔 세계의 지붕으로 불리는 에베레스트 산에 최초로 산소통 없이 오르기도 했다. 그린랜드, 남극대륙, 티베트 등지를 걸어서 횡단했으며, 그 외에도 많은 오지를 탐험했다. ‘남극대륙, 지옥과 천당’, ‘어느 월경자의 신앙 고백’, ‘돌아올 수 없는 길’, ‘산을 옮기는 사나이’ 등 책도 여러 권 냈다. 이른바 ‘산 귀신’에서 ‘글 귀신’으로 업종 전환을 성공적으로 한 사람이다.
책 제목이기도 한 ‘죽음의 지대’는 산소 부족으로 인해 등산의 한계에 부딪히게 되는 고도 7500m 이상의 고산 지대를 일컫는다. 라인홀트 메스너는 책을 통해 자신을 비롯해 많은 등반가들의 극한 체험을 보고하며, 죽음과 대면하는 그런 극한 체험에도 불구하고 왜 등반가들이 다시 산에 오르려하는지를 집요하게 파헤친다. 메스너는 ‘죽음의 지대’는 세계가 무(無)로 바뀌는 곳으로, 자기 인생이 ‘무’라는 것을 안 자만이 자기의 의미에 대한 물음에 답할 수 있게 된다고 주장한다. 죽음과 대면할 때 오히려 불안에서 해방되고 존재가 확장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고 고백하는 메스너의 목소리는 치열한 구도자나 선승의 그것만큼이나 조용한 충일감으로 가득 차 있다.
이 책은 산악문학의 경계를 심리학과 문학, 나아가 철학으로까지 확장하는 특별한 성격과 지위가 있다. ‘심산의 마운틴 오딧세이’ 저자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심산씨의 ‘죽음의 지대’ 서평은 압권이다. 전문을 옮겨본다.
‘죽음의 지대’는 라인홀트 메스너의 저서들 중에서도 매우 독특한 지위를 갖는다. 그가 쓴 대부분의 산악문학들이 주로 특정한 산에 올랐던 산행기의 형태를 띠고 있는데, 이 책 ‘죽음의 지대’만은 특정 주제를 놓고 쓰인 보고서의 형태를 띠고 있다. 그 특정 주제란 바로 추락사를 위주로 한 산에서의 극한 체험이다.
인류 최초로 8000m 봉 14개를 모두 오른 그가 추락사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는 것이 일견 모순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는 단 한 번도 산에서 떨어져 본 적이 없는 클라이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메스너가 택한 방법은 19세기 이래로 발표되어온 수천 종의 산악문학들 중에서 극한 체험과 관련된 것들을 발췌해내고, 추락 내지 조난을 당하여 ‘죽었다 살아 돌아온’ 동시대의 클라이머들을 인터뷰하는 것이었다.
(……) 미지의 영역 혹은 악마의 영역으로 터부시 되어온 극한 체험들을 주제별로 분류하고 정리하여 거기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는 메스너의 혜안은 경탄할 만하다. (……) 그러나 메스너는 여기에서 멈춰서지 않는다. 그는 이 책에서 ‘죽음과 대변했던 극한 체험’에도 불구하고 왜 사람들은 다시 산에 오르려하는가 하는 본질적인 질문을 끝까지 밀어붙인다. 해답을 찾으려는 그의 노력은 마치 필생의 화두 하나를 붙안고 용맹정진중인 선승처럼 처절하며 아름답다.
실제로 그의 등산관을 들어보면 메스너는 단순한 등반가가 아니라 치열한 구도자에 가깝다. 그는 한계 -지성과 감성의 한계, 이성과 본능의 한계, 죽음과 삶의 한계, 존재와 비존재의 한계- 에 도전함으로써 존재의 차원을 넓히기 위해서 산에 오른다고 말한다. 그는 ‘위로 오르는’ 산행에는 관심이 없으며 ‘내면의 밑으로 파고드는’ 산행만을 추구한다고 말한다. 요컨대 그는 ‘정복을 위한 등반’이 아니라 ‘존재를 위한 등반’을 주창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하여 명징하게 깨어있는 상태로 삶을 지속시키고 싶어서 ‘죽음의 지대’를 찾는다고 고백한다. 죽음의 지대에서 삶의 한계에 부딪혀 본 자만이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깨달은 진정한 자신의 모습은 ‘무’ 즉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이다. 역설적이게도 그 깨달음이 그를 자유롭게 만든다.
(……) 삶이 너무 지지부진하게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면 ‘죽음의 지대’를 권하고 싶다. 반드시 거벽 등반가나 고산 등반가가 아니라도 상관없다. 이 책에는 죽음에 직면했던 등반가들이 그 순간 자신의 삶을 어떻게 느꼈는가에 대한 절절하고 허심탄회한 고백들이 넘쳐난다. 그들이 그 순간 느꼈던 삶에 대한 치열한 긍정과 의지, 그리고 순간적이지만 본질적인 깨달음들은 우리가 진정 우리의 삶에서 무엇을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지를 웅변으로 말해준다.
한편, 번역자 김영도씨도 만만찮은 인물이다.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한 그는 1977년에 한국 에베레스트 원정대 대장을, 1987년에 한국 북극 탐험대 대장을 맡았다. 사단법인 대한산악연맹 회장을 지냈으며 현재 한국등산연구소 소장으로서 국내에 다양한 산악문학을 소개하는 한편, 여러 등산 강좌를 이끌고 있다. 옮긴 책으로 ‘검은 고독 흰 고독’ ‘제7급’ ‘8000m 위와 아래’ ‘14번째 하늘에서’ 등이 있으며, 쓴 책으로 ‘나의 에베레스트’ ‘우리는 산에 오르고 있는가’ ‘산의 사상’ 등이 있다. 1994년 평화출판사에서 나온 책의 개정판이다.
처음에는 너무 베끼는군...하며 피식 웃었는데...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이건 오히려 '양심적인' 기사입니다
인용했다는 말도 안하고 인용하거나, 작은 따옴표로 끝없이 토막내어 인용하는 것보다야
훨씬 더 솔직담백한 맛이 있지요?^^
어찌되었건 열혈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죽음의 지대]의 재출간을 축하합니다
김영도 선생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헤이 라인홀트, 당신은 이 글을 못 읽겠지만, 그래도 축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