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에서 [문화예술답사기 30선]이라는 시리즈 기사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그 30선 중에서 21번째 책으로 민병준 님의 [백두대간 가는 길]이 선정되었는데 저더러 서평을 써달라고 해서 그렇게 했습니다. 원고가 조금 넘쳤던지 [동아일보]에는 약간 변형된 형태로 실렸는데, 이곳 홈페이지에는 원문 그대로 올립니다.
[img1]민족의 희노애락이 쌓인 큰 산줄기
민병준, [백두대간 가는 길], 진선출판사, 2007
심산(심산스쿨 대표)
"금강산이 어른거리는 향로봉 정상에서 북녘 하늘을 한참 바라본다. 남북이 하나 되는 그날이 오면, 우리는 이 순간 잇지 못했던 나머지 반쪽을 호랑이처럼 단숨에 달려 기어이 백두산에 도달하고야 말 것이다. 그리하여 그 천지의 맑은 물로 목젖을 적시고 마음껏 포효할 것이다. 그날이 오면…."(본문 중에서)
나는 백두대간을 다 밟아보지 못했다. 백두대간이란 백두산에서 두류산(지리산의 옛이름이다)에 이르는 장장 1,625Km의 큰 산줄기를 뜻한다. 이 큰 산줄기에서 북한땅에 속해 있는 구간이 985Km이고, 남한땅에 속해 있는 구간이 640Km이다. 북녘의 백두대간을 밟아보지 못한 것이야 내 탓이 아니다. 하지만 남녘에 살면서, 게다가 명색이 ‘산에 다니는 놈’이라는 녀석이, 지리산에서 진부령까지의 남한땅 백두대간도 다 밟아보지 못했다는 것은 커다란 부끄러움이다. 흔히들 남한땅 백두대간을 24구간으로 나누는데, 내가 밟아본 구간이라야 절반을 겨우 넘긴 정도이다. 그것마저 워낙 두서없이 이 구간 저 구간을 들쑤시며 돌아다녔던지라 이 위대한 ‘민족의 등뼈’를 올곧게 이해하는 데에는 턱 없이 부족할 따름이다.
언제나 그러하듯 핑계거리야 부지기수이다. 먹고 살기 바빠서, 한꺼번에 긴 휴가를 낼 수 없어서, 심지어는, 요즘에는 그야말로 ‘아무나 다 다니는’ 뻔한 길로 전락해버린 까닭에 별다른 흥미를 느낄 수가 없어서. 하지만 민병준의 역저 [백두대간 가는 길]을 뒤적이다 보니 이 모든 핑계들이 더할 나위 없이 초라해 보일 뿐이다. 아니,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나마 내가 이미 밟아보았다는 그 열 두어 구간마저도 과연 제대로 알고나 지나친 것인지 심히 의심스러울 따름이다. 만약 그 길에 얽힌 역사나 문화를 알지 못한다면 길은 다만 길일 뿐이요, 걸음은 다만 걸음일 뿐이다. 다만 다리를 움직이기 위하여 걷는다면 헬스클럽의 무미건조한 러닝머신과 백두대간의 오롯한 산길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겠는가.
백두대간이라는 용어가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문헌은 신라 말인 10세기 초에 쓰여진 도선의 [옥룡기]이다. 이 개념을 근간으로 삼아 우리의 국토를 면밀히 규정한 [산경표]가 집필된 것은 1769년이다. 일제시대에 처참히 그리고 의도적으로 묵살된 이 개념을 되살린 것은 1980년대 초의 고지도 연구가 이우형 선생이다. 그리고 1980년대 이후 백두대간은 한국산악계가 끌어안은 가장 커다란 화두들 중의 하나가 되었다. 덕분에 백두대간을 소재 혹은 주제로 삼아 쓰여진 책들만 해도 대형서점의 한쪽 서가를 빼곡히 채우고 남는다. 하지만 산길은 다만 산길일 뿐인가. 백두대간을 종주한다는 것은 헬스클럽의 러닝머신 위를 달린다거나 마라톤코스를 완주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깨달음과 의미를 갖추고 있어야 되는 것이 아닌가.
민병준의 [백두대간 가는 길]은 이 근원적인 질문에 성실하게 답한다. 그가 이야기하는 백두대간은 단지 물줄기가 넘나들지 못하는 큰 산줄기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이 길과 그 아래 펼쳐진 산자락 물자락에는 수천년 간 이어져 내려오는 우리 민족의 역사와 문화가 서려 있다. 이 책을 읽다보면 백두대간 자체가 우리 민족의 희노애락들이 덧쌓여 생성된 거대한 문화의 성채가 아닌가 싶은 느낌마저 든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부끄러웠고, 동시에 역설적이게도, 희망을 품게 되었다. 이제야말로 백두대간을 제대로 걸을 수 있게 되었다는 희망이다. 나는 민병준의 이 사려 깊고 튼실한 걸음걸이가 삼팔선을 넘어 백두산까지 끊임없이 이어지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동아일보] 2007년 5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