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뜻인지나 알고 말해라!”
이용대 지음, [등산상식사전], 해냄, 2010년
심산(심산스쿨 대표)
등산인구가 많아졌다. 한국등산지원센터가 발표한 <등산실태보고서>(2008)에 따르면 우리나라 18세~69세 인구의 절반이 두 달에 한번 이상 산에 오른다고 한다. 대략적인 수치로만 환산해도 무려 1,800만명이다. 혹자는 IMF 사태 이후로 가장 급성장한 산업분야가 바로 등산의류업체라고도 한다. 최근 수년 간 제주올레를 시발점으로 하여 불기 시작한 전국적 걷기 열풍도 이 급증세에 한몫 가담했음도 분명하다.
굳이 온갖 보고서의 각종 수치들을 열거할 필요도 없다. 등산인구의 급증세는 그야말로 피부로 느껴진다. 주말에 북한산 둘레길이라도 한번 가보라. 흡사 무슨 가두시위 현장에서 무리에 휩쓸려 떠다니는 느낌이다. 심지어 등산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 신세대들조차 몇 달 간의 알바 끝에 손에 쥔 돈으로 사 입는 것이 등산의류다. 이쯤 되면 등산 혹은 유사-등산 신드롬이 거의 시대정신이 되어버린 듯하다.
문제는 우리의 등산문화가 그 양적 팽창에 걸맞는 질적 성장을 담보하고 있느냐이다. 도심에서 등산복을 입고 다니는 아웃트로(outtro) 현상은 굳이 나무랄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 비싼 고어텍스 의류를 세탁기에 넣고 돌려버리는 일은 곤란하다. 뒤늦게 배운 암벽등반에 빠져 바위에 오르는 것도 좋다. 하지만 아래로 로프를 던질 때 “낙짜!”라는 정체불명의 구호(?)를 외치고, 그것이 어떤 경로로 만들어진 말인지도 모르고 있다면 난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떤 문화가 발전하려면 다음의 두 가지 선행필수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하나는 그 문화의 역사에 대한 정통한 이해이며, 다른 하나는 그 문화에서 사용되는 용어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다. 등산문화라고 하여 예외일 리 없다. 등반사에 대한 이해와 등산용어에 대한 인식, 이 두 가지야말로 건전한 등산문화를 떠받드는 양대 기둥이 되는 것이다. 그런 뜻에서 이번에 코오롱등산학교의 이용대 교장이 펴낸 [등산장비에서 등반법 그리고 산악환경까지 필수용어로 배우는 등산상식사전](해냄, 2010)은 반가운 역저이다.
이용대는 이미 [등산교실](해냄, 2006)에서 등산의 일반이론을 다루었고, [알피니즘, 도전의 역사](마운틴북스, 2007)에서 세계등반사를 정리해낸 바 있다. 이번에 출간된 [등산상식사전]은 기존의 두 저서와 더불어 ‘등산문화의 가장 기본이 되는 삼각점’을 이루었다는 느낌이다. 올바른 용어를 알고 명확한 사관(史觀)을 갖추었다면 두려울 것이 없지 않은가. 앞으로 한국의 등산문화 혹은 산악문학은 이용대가 구축해놓은 이 튼튼한 기초 위에서 출발하게 될 것이다.
[등산상식사전]은 일종의 용어해설집이다. 이런 종류의 책에서는 당대성이 중요한 가치를 갖는다. 즉 이미 사멸된 용어를 정리해내고, 새로 편입된 용어를 받아들이며, 현재 잘못 사용되고 있는 용어를 바로잡는 것이 중요하다. 이 계열의 앞선 저서로는 김성진 편저의 [등산용어사전](평화출판사, 1990)을 들 수 있다. 김성진의 [등산용어사전] 역시 1990년 현재로서는 탁월한 저서였다. 하지만 그 사이에 2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두 책을 비교 분석해보면 그 세월의 변화를 절감할 수 있다.
[등산상식사전]을 통독하면서 내가 절감한 것은 이용대의 젊음(!)이다. 도저히 칠순을 넘긴 노산악인의 저서라고는 믿기 어렵다. 그만큼 동시대와 호흡을 함께 하며 발빠른 업데이트 능력을 보여준다. 위에 언급한 ‘아웃트로’라는 용어를 나는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접했다. 산악인들 사이에서는 이미 일반명사가 되어버린 ‘불수도북’이나 ‘무박산행’ 같은 용어들을 과감히 등재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한마디로 학자의 풍모를 갖춘 노산악인이 젊은 세대들에게 일갈하는 느낌이다. “무슨 뜻인지나 알고 말해라!”
월간 [산] 2010년 11월호
잘 읽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