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산의 산 그리고 사람 <4> 손재식(1956- )
온 세상의 산을 카메라에 담는다
나는 어떠한 산악회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다. 남들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서이다. 내게는 빨리 걷거나 잘 오를 수 있는 능력이 없다. 머쓱한 변명을 늘어놓자면 사실은 그럴 의향조차도 없다. 내가 생각하는 산은 단체행동의 공간이나 기록경기의 대상이 아니다. 산이란 모름지기 천천히 걷고 오르며 즐겨야 된다. 나의 이러한 등산관을 어여삐 여기고 너그럽게 품어줄 산악회는 이 세상에 없다. 덕분에 나는 늘 홀로 아니면 나와 같은 산행태도를 지닌 사람들하고만 산에 오른다. 농담 삼아 이르기를 산중한량(山中閑良)들의 느슨한 연합체이다.
성질 급한 사람들이 나와 함께 산에 오르다가는 제 풀에 스트레스를 받아 나가 떨어지기 십상이다. 시냇물이 나오면 발을 담그고, 숨이 조금만 차면 주저 앉아 사과를 깎아 먹으며, 멋진 풍광 앞에 서면 그 자리를 떠날 줄 모른다. 심지어 바위를 오르다가도 엉덩이를 붙일만한 그늘막이 나타나면 그 자리에 확보를 해놓고 길게 누워 낮잠을 즐기기도 한다. 그들은 성질을 못 이겨 냅다 소리 지른다. “야 임마, 너 지금 놀러왔냐?” 나는 더욱 편한 자세를 취하며 당연하다는듯 대답한다. “응, 나 지금 놀러온 거야.” 그런 내가 임자를 만났다. 나보다 더 느린 속도로 산을 즐기는 사람이 바로 산악사진작가 손재식이다.
[img1]언젠가 그와 단 둘이 올랐던 도봉산에서였다. 떡과 미역국 등으로 간단히 점심을 해결하고 나자 그가 배낭에서 해먹(그물침대)을 꺼냈다. “산에서 자는 낮잠이야말로 최고의 단잠이지.” 막 잠이 들려는 순간 빗방울이 듣기 시작했다. 우리는 오버행으로 이루어진 바위 밑으로 자리를 옮겼다. 나는 와인을 꺼냈고 그는 우크렐레(작은 기타 모양의 악기)를 꺼냈다. 우리는 추적 추적 내리는 산비를 바라보며 와인을 마시고 우크렐레를 연주하다가 저도 모르는 사이에 스르륵 잠이 들어버렸다. 그 단잠에서 불현듯 깨어났을 때 시야를 가득 메웠던 비에 젖은 도봉산이 얼마나 청신하고 아름다웠는지.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을 만큼 행복한 산행이었다.
그는 산악인인 동시에 예술가다. 그가 찍은 산사진들은 이미 국내 최고 수준의 작품으로 정평을 얻고 있다. 그는 다양한 주제와 앵글의 산사진들을 찍지만 그 중에서도 단연 빛을 발하는 것은 ‘산악인으로서 찍은’ 사진들이다. 사진작가들은 많다. 그러나 산악사진작가들은 드물다. 산을 원경으로 찍은 산악사진작가들은 많다. 하지만 바위와 얼음에 찰싹 달라붙어 실제로 등반을 해내면서 산과 산사람을 찍을 수 있는 산악사진작가는 희귀하다. 그런 뜻에서 손재식은 가히 ‘한국의 갤런 로웰(1940-2002)’이라고 할만하다. 손재식은 그의 저서 ‘하늘 오르는 길’(2003)의 앞날개에 실린 약력에 스스로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사진을 전공하기 전에 산을 배워, 산과 사진이 삶의 중추가 되었다.”
“너는 글을 써, 사진은 내가 찍을게.” 우리가 함께 산행을 시작할 즈음 그가 내게 한 말이다. 하지만 한 동안 나는 그와 산행을 할 때마다 언제나 카메라를 들고 갔다. 그리고 그와 동일한 지점에서 동일한 앵글을 잡고 셔터를 눌러댄다. 그러나 결과는 언제나 뻔하다. 그렇게 황새를 따라가려는 어리석은 뱁새짓 하기를 몇 번, 그 이후로 나는 아예 카메라를 놓았다. 따지고 보면 당연한 노릇이다. 한 사람이 평생에 걸쳐 이룩한 성취를 그저 어깨 너머 흉내 내기로 배워보겠다는 속셈 자체가 애당초 말도 안되는 짓거리가 아닌가. 하지만 그는 카메라를 든 채로 나의 영역으로 넘어왔다. 작가로서가 아니라 ‘산악인으로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1998년 9월 28일 오후 5시. 한국 탈레이사가르(6,904m) 북벽원정대의 신상만(당시 32세), 최승철(당시28세), 김형진(당시 25세) 대원이 세계 최초로 북벽 정면의 블랙타워를 돌파한 뒤 무려 1,800m를 추락하여 사망했다. 6명이 출발했다가 3명만이 귀환한 비극의 원정대였다. 손재식은 그때 ‘살아 돌아온’ 3명의 대원들 중 한 사람이다. 유족들로부터 이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써달라는 부탁을 받은 것은 나였다. 하지만 나는 자료들을 반년 가까이나 품에 안고 있었어도 쓸 수가 없었다. 식은 땀을 흘리며 악몽에서 깨어난 적도 여러 번이다. 이들의 이야기를 결국 책으로 만든 것은 손재식이다. 그가 쓴 글과 그가 찍은 사진들로 이루어진 이 책 ‘하늘 오르는 길’은 한국 산악문학의 한 정점을 보여준다.
손재식이 국내의 한 산악전문지에 수년째 연재하고 있는 ‘한국바위열전’ 역시 우리 산악계의 큰 보물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바윗길과 얼음길들을 당시의 초등자들과 다시 함께 오르는 과정을 담은 연재물인데, 사료적 가치와 통쾌한 사진 그리고 문학적 향기가 두루 어우러진 명품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이 연재물에서 스스로 선등을 하며 자일을 깔고, 바위와 얼음에 매달려 사진을 찍고, 그 모든 과정들을 글로 남기는 1인 3역을 하고 있다. 오직 손재식만이 할 수 있는 독창적 작업이다. 그는 이 힘든 일을 해내면서도 언제나 느긋하게 그 과정을 즐긴다. 그는 내가 알고 있는 한 ‘일과 놀이를 가장 완벽하게 조화시킨’ 사람이다.
[img2]그는 일주일 중 사나흘을 산에서 보내고 일년 중 서너 달 동안 해외원정을 떠난다. 이렇게 ‘치열하게 노는’ 손재식이 또 하나의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바로 히말라야 8,000m급 14좌의 베이스캠프를 모두 돌아보는 사진촬영 트레킹이다. 손재식은 지난 3월 15일 그 첫 번째 대상지인 안나푸르나(8.091m) 베이스캠프를 향해 떠났다. 일정을 보아하니 지금쯤 마차푸차레(6.993m) 아래에서 여유롭게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있을 것 같다.
히말라야 14좌 베이스캠프 트레킹
[img3]히말라야에는 8,000m가 넘는 산이 14개 있다. 그 산들의 정상에 오르는 것은 극소수의 전문산악인들에게나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그 산들의 베이스캠프까지만 오르는 것은 일반 등산애호가들에게도 가능하다. 단, 베이스캠프라 해도 평균 4,000m 이상의 고도에 위치해 있으므로, 고산병에 대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14개의 베이스캠프 중 8개는 네팔에 있고, 4개는 파키스탄에 있으며, 1개는 중국에 있다. 이들 중 가장 대중적인 사랑을 받는 곳은 풍광이 수려하고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4,130m) 트레킹이다.
산악사진 촬영을 겸한 손재식의 14좌 베이스캠프 트레킹 프로젝트는 4년에 걸쳐 이루어진다. 첫해인 올해는 3월에 안나푸르나, 6월에 낭가파르바트, 11월에 초오유와 시샤팡마에 간다. 히말라야 14좌 중 가장 서쪽에 있어 유럽대륙에 가까이 있는 낭가파르바트 베이스캠프는 온갖 기화요초들이 만발하여 가장 아름답다는 평을 듣고 있다. 2007년에는 3월에 마나슬루, 7월에 K2, 가셔브룸1, 가셔브룸2, 브로드피크, 11월에 마칼루에 간다. 이해 7월에 내정되어 있는 4개의 산은 모두 파키스탄에 속해 있는 것들로서 그 베이스캠프들이 서로 지척의 거리에 있어 한꺼번에 둘러볼 수 있다.
2008년에는 3월에 칸첸중가, 11월에 다울라기리에 간다. 칸첸중가는 히말라야 14좌 중 가장 동쪽에 위치해 있으며 인도의 시킴지역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거의 유일하게 불교적 색채가 짙은 지역이다. 마지막으로 2009년 3월에는 에베레스트와 로체에 간다. 이 두 산 역시 지척의 거리에 있다. 빠른 산행을 힘겨워 하고 느긋하게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대단히 즐겁고 유익한 체험이 될 것이다.
[한국일보] 2006년 3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