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김정한 등록일: 2009-12-14 14:56:24 IP ADRESS: *.47.19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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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싸~ 아홉번째...^^
하나만 더 쓰면 심쌤께서 말씀하신 리뷰 열개 채운당~ ㅋㅋ

아주 특별한 책들의 이력서 - 릭 게코스키 / 차익종 / 르네상스

작년, 그러니까 2008년에 문화콘텐츠진흥원에서 [문화콘텐츠 아카데미] 과정을 수강했었다. 당시 야간 창작반에서 같이 강의를 듣던 한 분이 어느 날 내게 책 두 권을 선물하셨다. 사실은 빌려준 것인데 너무 오래도록 돌려주지 않자 ‘그냥 선물한 걸로 할게요. 부담갖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그 때 받은 책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책 [아주 특별한 책들의 이력서]이다. 또 하나는 [재미의 경계]라는 제목으로 재미에 대해 수학적으로 정의를 내린, 정말 재미없는 책이다.


그동안 몇 번이고 이 두 책을 읽으려 노력을 했었다. 그런데 정말이지 신기할 정도로 손이 가지 않았다. 처음엔 빌렸으니 빨리 읽고 돌려주려고 책을 집어 들었는데 잠시 후 정신 차리고 보면 책은 얌전히 놓여있고 난 딴 짓을 하고 있기도 했고, 나중엔 아예 책장에 꼽아두고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러면서도 ‘빌려준 사람의 성의를 생각해서라도 읽어야지.’라는 생각만 했었다.
결국 일 년이 훨씬 지나서야 이 두 권의 책을 읽게 되었다. 그런데 더 이상한 건 이 책은 물론이고 객관적으로 정말 재미없는 [재미의 경계]마저도 그럭저럭 읽을 만하다는 것.

어쩌면 책도 궁합이라는 것이 있는 건 아닐까? 전에는 그토록 재미없고 책장이 넘어가지 않아서 읽기를 포기했던 책인데 이번엔 너무도 황홀한 기분으로 책을 읽었다. 특히 이 [아주 특별한 책들의 이력서]라는 긴 제목의 책은 나중엔 책장 넘기는 게 아까울 정도였다.

이 책의 뒷 표지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책 세계의 빌 브라이슨’ 릭 게코스키, 그가 들려주는 희귀한 책, 위대한 작가들에 얽힌 이야기!

릭 게코스키는 영국의 한 대학교의 교수였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 책의 초판본 거래에 재미가 들려, 결국 대학교수를 그만두고 초판본 수집 및 판매를 직업으로 선택하게 된다.
그리고 BBC 방송의 라디오에서 진행한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20년간 경험한 희귀본 거래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20세기 영미문학의 대가들에 얽힌 이야기로 책 한권을 만들었고 그것이 바로 이 [아주 특별한 책들의 이력서]라고 하는 긴 제목의 책이 된 것이다.
이 책을 리뷰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목차를 그대로 가져와야겠다. 어떤 책들을 소개하고 있는지 알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차례
- 감사의 말 / 서문
01. 올랭피아 출판사의 유일한 걸작 - 롤리타 :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02. “원고 값으로 100만 파운드를 가져오시오” - 파리대왕 : 윌리엄 골딩
03. 은둔 작가를 세상에 나오게 한 저작권 소송 - 호밀밭의 파수꾼 : J. D. 셀린저
04. 내용에 대한 형식의 승리 - 지혜의 일곱 기둥 : T. E. 로렌스
05. 스스로 호빗을 자처한 톨킨 - 호빗 : J. R. 톨킨스
06. 저자, 역자, 출판인 모두에게 내려진 사형선고 - 악마의 시 : 살만 루슈디
07. 자살한 작가의 어머니가 살려낸 희비극 - 바보들의 연합 : 존 케네디 툴
08. 서평 한 꼭지의 힘 - 길 위에서 : 잭 케루액
09. 금서 출간을 밀어붙인 용감한 여성들 - 율리시즈 : 제임스 조이스
10. 천재를 파멸로 이끈 위험한 사람 -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 오스카 와일드
11. 영국 출판사들도 출간을 겁먹다 - 동물농장 : 조지 오웰
12. “초판이건 41판이건 무슨 상관인가?” - 아들과 연인 : D. H. 로렌스
13. 아내의 헌정 시집을 시장에 내다 판 남편 - 거상 : 실비아 플라스
14. 열세 번째 출판사에서야 초판 500부를 발행하다 - 해리포터와 현자의 돌 : J. K. 롤링
15. 원화 한 장에 10만 파운드? - 피터 래빗 이야기 : 베아트릭스 포터
16. 누구나 데뷔는 고단하다 - 세 편의 단편과 열 편의 시 : 어니스트 헤밍웨이
17. 버지니아 울프가 손으로 인쇄한 책 - 시들 : T. S. 엘리엇
18. 초판 50부 - 다시 찾은 브라이즈헤드 : 이블린 워
19. 연인을 위한 선물이 희귀본으로 - 2년 후 : 그레이엄 그린
20. 편지에 휘갈긴 시도 수집의 대상? - 높은 창 : 필립 라킨
- 옮기고 나서
목차에서 보듯이 이 책은 모두 스무 편의 작품에 대한 뒷이야기를 담고 있다.
처음 이 책을 펼쳐서 목차를 읽어 내려가면서 내가 읽었거나 들어봤던 책, 이름을 아는 작가가 얼마나 되는지 확인해봤다. 아무래도 내가 아는 이름이거나 제목이면 그만큼 더 흥미를 가질 테니 말이다.
우선 내가 예전에 읽었던 책도 몇 권 있다. 다행이다. 내가 그래도 책을 조금 읽기는 하는가보다 싶다.
그리고 전혀 듣도 보도 못한 작가나 책도 두 권 있다. 흠, 언제고 읽어봐야지.

중요한 것은 이 책에서는 목차에 나오는 책들의 내용을 소개하거나 독후감 따위를 써내려간 책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작가의 직업이 책 거래상, 그것도 초판본이니 희귀본이니 하는 것들만 골라서 잔뜩 프리미엄을 붙여서 파는 사람이다. 따라서 책의 내용도 그런 거래와 관련된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그런 직업을 가지려면 우선 엄청난 인맥이 필요할 것이다. 꽤나 귀해서 감히 돈 받고 내다 파는 짓은 못하겠다는 사람들을 만나서 설득해야 할 테니 장사꾼으로 접근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게다가 끝내주는 입담에 진실성도 잔뜩 담아야 할 것이다.
결코 쉬운 직업은 아닐 것 같다. 하지만 거래금액을 보면 그런 고생을 한 값어치는 충분한 것 같다.

첫 번째, 롤리타에서는 작가가 초판본에 누구에게 바친다는 헌사가 들어있는 경우, 게다가 그 대상이 되는 사람이 누구인가에 따라서 책값이 천차만별이라는 걸 알려준다.
롤리타라는 책을 읽어본 사람은 많지 않을지 모르지만 성인남성, 특히 포르노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 롤리타라는 말은 종종 들어봤을걸!
흔히 아동성애에 집착하는 경우에 붙는 이름이 바로 이 ‘롤리타’아닌가?
이 책에서도 롤리타라는 책이 얼마나 도발적인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릭 게코스케는 이 책을 팔아서 약간의 재미를 보았다고 한다. 적정한 이윤을 붙여 팔았다는 말...
저자는 이 책의 인세수입으로 집필과 나비수집에 몰두할 수 있었다고 하고, 출판권을 갖고 있던 지로디아스라는 사람은 돈벼락(!)을 맞아서 파리식 나이트클럽 두 개, 레스토랑 하나, 술집 세 개, 극장 하나를 열었다고 한다. 뭐, 5년 후에 파산을 했다고 하니 이 사람의 말로는 그다지 부럽지는 않다.

파리대왕윌리엄 골딩은 릭 게코스키에게 친필 원고를 넘겨줄테니 100만 파운드를 내놓으라고 했단다. 현재 환율을 기준으로 하니 1,972,610,000원이다. 자그마치 20억...
이 자필 원고가 과연 작가의 요구금액으로 팔렸을까? 이 책을 읽을 사람을 위해 비밀로 한다.

우리는 요즘 강화된 저작권 법 때문에 온통 시끌시끌하다. 그런데 이런 저작권 시비는 예전에도 꽤 있었나보다.
우리도 귀에 익은 ‘호밀밭의 파수꾼’의 저자인 J. D. 샐린저는 소위 말하는 ‘악명 높은 은둔자’라고 한다. 그런데 이언 해밀턴이라는 전기 전문작가가 1988년 [J. D. 샐린저 : 글쓰기의 삶]이라는 제목으로 전기를 출판하려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걸 놓고 샐린저가 저작권 위반으로 고소했다고 한다. 결국 해밀턴은 문제가 되는 부분을 모두 삭제하고 다시 써서 책을 출판했다고 한다.

지금은 유명해진 작가들도 한때는 원고를 출판해줄 출판사를 만나지 못해 고생을 많이 했었나 보다. T. E. 로렌스라는, 나는 한번쯤 이름만 들어본 것 같은 이 작가는 결국 초판을 자비로 출판하는 모험을 강행했고, 그다지 잘 팔리지도 않았다고 한다. 어쨌든 현재 그 초판본은 꽤 큰 금액으로 거래된다고 하니 그나마 위안이 될까?

현대 판타지 문학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톨킨, 그에 대한 이야기도 등장한다.
톨킨은 그의 책에 등장하는 호빗족에 대해 이렇게 말을 한다.
“사실 덩치만 빼놓으면 나 스스로가 호빗 족이다.” 그럼 작가는 호빗 족의 역할모델을 스스로 자처한 셈인가?

책은 민족적 자존심을 건드리기도 한다. 그로 인해 사형선고를 언도받은 살만 루슈디(우리나라에서 살만 루시디로 소개되었는데 이 책에서는 살만 루슈디로 표기하고 있다.)에 대한 이야기이다. 더구나 그에게 내려진 이슬람 율법에 따른 파트와(판결)이 책 거래업자도 대상으로 했다고 한다. 릭 게코스키는 책 팔다가 죽을 뻔 했다는 이야기.

앞서 작가가 책을 출간하기 힘들어 한다는 말을 잠깐 언급했는데, 바보들의 연합이라는 작품을 쓴 작가 존 케니디 툴은 1969년 출판사를 잡지 못했다는 데에 낙담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그 이후 그의 어머니가 백방으로 뛴 끝에 책은 빛을 보게 되었고 비록 작가 사후이긴 하지만 제대로 인정받고 엄청난 판매를 기록했다는 슬프지만 한 편으로 위안이 되는 결과를 보게 된다.

스무 개나 되는 책들의 뒷이야기를 모두 소개하는 것은 미련한 짓이자 리뷰만 길게 늘이는 것 같아서 일일이 소개하는 것은 이쯤 하기로 하자.

하지만 꽤 재미있고 어이없는 일들이 참 많다.
신문사의 전문 서평가가 휴가를 간 사이에 땜빵으로 서평을 쓰게 된 사람이 소개한 덕분에 베스트셀러로 등극한 이야기
시대적 흐름에 역행하여 금서로 묶일 책을 용감하게 출판, 대작으로 평가받게 된 작품
천재적 작가의 지독한 불륜
내용이 너무도 위험해서 출판을 망설이는 출판사
정말 읽다보면 책이 만들어지고 인정받게 되는 그 뒤에는 무슨 일들이 벌어졌는지, 그리고 작가가 직접 쓴 원고가 단순히 책 이상의 가치를 지니게 되는 과정에 대한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언론의 왜곡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 하나만 소개하고 글을 줄이겠다.
그 유명한 해리포터 시리즈를 집필한 롤링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책이 얼마나 많이 팔렸는가 하면, ‘해리포터와 현자의 돌’의 표지를 디자인한 책 표지 디자이너도 15만 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2억 가까운 돈을 벌었다고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바로는 롤링은 처음 이 책을 쓸 때, 돈이 없어서 아이에게 분유대신 맹물을 먹이고, 냉기뿐인 셋방을 피해서 따뜻한 곳을 찾아 전전했고 어쩌고 했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사실은 너무도 심하게 과장된 이야기라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작가의 이름을 조앤 롤링이라고 표기하지 않고 J. K. 롤링이라고 표기한 이유이다. 여자아이는 남성작가가 쓴 작품을 읽지만 남자아이는 여성작가가 쓴 작품을 읽지 않기 때문에 작가가 여자라는 사실을 슬쩍 숨기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리고 해리포터와 현자의 돌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7년만에 그의 책은 전 세계 69개 언어로 번역되어 2억 3천만 권이 팔려나갔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수입은 2억 2,500만 달러라고 한다. 물론 지금은 더 많이 벌었겠지?

책은 다 똑같은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은 지금까지 읽었던 다른 책들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다.
남들의 뒷이야기를 즐겨하는 사람들의 습성에 잘 들어맞는 이 책이 참 맘에 든다.
profile

심산

2009.12.14 19:17
*.237.81.7
이 책을 번역한 차익종이라는 친구도 심산스쿨 출신!
사노맹 사건으로 징역 오래 살고 나왔는데...나오자마자 날 찾아와서
인디언스의 임선경과 함께 [심산반 1기] 출신이다...
잘들 살고 있는지 원...^^

김정한

2009.12.14 21:41
*.47.197.18
네, 인디언스 리뷰에 올렸던 댓글에 누가 알려주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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