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반에서 하나도 올라오지 않아... 블로그질할 때 적어뒀던 감상문을 살짝 손봐 올려봅니다.
<내가 뽑은 올해의 드라마-선덕여왕>
부제-선덕여왕, 알고 보니 스릴러...!
흥미진진하게 선덕여왕을 보다가 깨달았다.
선덕여왕은 스릴러였다. 살짜쿵 미스테리를 가미했지만. 극을 풀어가는 방법은 스릴러.
피가 튀기지 않을 뿐이지. 일주일에 이틀. 덕만이 곤경에 빠지고 헤쳐나오고의 과정은
단지 입지전적 인물의 역경 극복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뭔가 이상하고, 그런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지난한 역경이나 우리한 서사미... 그런 게
없었던 거다.
대신에 선덕여왕은 무진장한 흥미와 재미를 선사한다.
고래로!... 한국 영화나 드라마에서 미스테리는 재미를 못봤다. 재미를 본 쪽이라면 스릴러다.
여고괴담이나 전설의 고향, M 등.
비꼬자는 게 아니고. 선덕여왕은 정말로 스릴러다.
13일의 금요일이나 여대생 기숙사... 주인공은 살인마 때문에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사투를 벌이고 놈을 해치우고 (적어도 조용히 시키고) 위험에서 벗어난다.
덕만도 수없이 목숨을 위협하는 상황에 빠진다. 모양만 달리해 찾아오고 도끼 든 살인마가
아닐 뿐. 위협의 정도는 맞먹는다. 그리고 빠져나간다. 그때 안도와 통쾌감을 느낀다.
그게 여타 사극과 다른 점이었다.
흉측한 괴인, 피가 뚝뚝 흐르는 흉기를 휘두르는 혐오스러운 살인귀는 공포스럽긴 하지만
질이 떨어지고 여름 한 철 봐주는 것 뿐이지 그닥 매력적인 괴물은 아니다.
선덕여왕에서는 아주 아름다운 괴물을 등장시켰다. 미실.
미실이 스스로를 자평하며 "나는 정말 못됐어요 호호호"라는 대사를 칠 때
미실의 진면모가 드러난다. 왕비가 되고 싶은 여자의 욕망이라든가, 나름 왕의 기질을 내비치며
그런 풍모마저 드러내는 순간순간이 있어서 어쩌면 불운하며 일그러진 지도자의 상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게 만드는 면모를 배치해놔서 잠시 헷갈렸지만. 어제의 미실은 심술궂고 조금은 귀여운
구석도 있는 악당이었다. 그러니까 미실은 전천후 덕만 괴롭히기 대마왕이었던 것이다.
덕만의 탄생의 순간부터 목숨을 위협하고, 칠숙이란 자객을 보내 소화와 함께 모래 구덩이에
처박고... 직접 간접적으로 덕만의 곤경을 만들어내고, 덕만이 헤쳐나오도록 미션을 제시한다.
처음 드라마가 시작되고 받은 인상은 선덕여왕이 게임의 룰에 충실한 드라마다, 였는데.
더 깊이 들어가보면. 그 게임의 룰이라는 것이 바로 스릴러의 공식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덕만의 미스테리가 상대적으로 약화될 수밖에 없었던 듯 하다.
시청자는 알고 덕만은 모르는 덕만의 미스테리는 극의 재미를 만들어내며
극이 앞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을 때 끌어다 쓰여지는 장치로 작용한다. 하지만 미약하다.
아무도 선덕여왕을 보면서 궁금하진 않다. 시청자는 이미 다 안다. 때가 되면 덕만이 공주라는 게
밝혀질 거고 여왕이 될 거다. 좋은 조력자들의 추대를 받는 훌륭한 여왕이...! 궁금한 게 있다면
그 과정을 어떻게 겪어나갈 거냐. 위기 상황들을 어떻게 돌파할 거냐. 그거다. 그리고 그 공식은
이미 어린 덕만을 보여줄 때 다 펼쳐 보여줬다. 그런 식이다. 앞으로도 다 그런 식일 거다.
그러니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는 "어떻게"만이 중요해진다. 그 "어떻게"는 선덕여왕이란 드라마에서
스릴러의 구조가 중요해지게 만든다.
"어떻게"는 최대한 흥미진진해야한다. 왜냐면 궁금한 건 그것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어떻게"에 드라마의 모든 공력이 모아진다. 심플해지고 강력해지고 흥미진진해진다.
위험에 빠지고 죽을 뻔하고 "어떻게든" 해결이 나야한다...... 라는 공식이 뻔한 공식이 되지 않게
만들려면, 다채로운 공격이 필요하다.
뛰어난 상상력이 동원된다.
일테면... 쌍생아로 태어나 국운을 기울게 만든다는 출생의 예언. 덕만은 출생부터가 비범하고
독특하다. 흡사 무협영웅의 불운하지만 특별한 출생과도 흡사하다.
덕만은 제 부모에 손에 죽을 뻔하고
그 위기를 벗어나도 미실이란 더 큰 위험이 아가리를 벌리고 어린 생명을 위협한다.
어린 시절... 모래구덩이에 빠지기 전에도 성주의 시험에 들기도 하고, 칠숙이 죽이러 오기도 한다.
산적의 손에 죽을 뻔하고. 물에 빠져 죽을 뻔하고. 전쟁에도 참가하고....
사다함의 매화를 둘러싼 에피소드들도 극의 재미를 더하면서 덕만의 위기상황을 여러차례 제공한다.
선덕여왕은 퓨전역사극이 아니라 사랑스러운 역사 스릴러였다.
김영현과 박상연은 황금 콤비의 현란한 플레이로 그 재미의 극점까지 가보려는 듯 이야기를
자아내고 있다. 비꼬는 게 아니라, 두 사람은 진짜 뛰어난 엔터테이너들이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의도대로 매회 흥미진진하게 덕만의 어드밴쳐를 지켜본다. 정말 재미있다.
그 재미만발의 진행의 과정에 얼마만큼의 인간과 역사를 집어넣느냐. 그럴 의도는 있는지. 있다면
그것이 얼마만큼 가능한지. 그것마저 흥미롭게 지켜보는 것은 나의 몫이겠지.
선덕여왕은 감동 보다는 재미에 크게 부등호가 열려있다.
착한 드라마라고 칭송받는 <찬란한 유산>도 가슴으로 아파하며 쓰는 감동의 드라마를 역설하시던
작가 선배님들의 눈으로 봤을 땐 감동이 섞인 재미있는 판타지 드라마일 거라 추측한다.
이 두 드라마는 그래도 요즘 드라마판에서는 양질의 고급한 드라마다.
아내의 유혹이니 밥줘, 하얀 거짓말, 두 아내..... 소위 막장이라고 불리고, 막장으로 불려야 작가가
먹고 살 수 있는 드라마판의 현실에서 볼 때 선덕여왕과 찬란한 유산은 그나마 작가들에게
숨통이 되어주는 드라마이기도 하다.
그러니 역사의식이니 인간을 보는 시선이니.. 그런 걸로 절대 깔 수는 없다.
그것보다 더 고급하고 의식있게 드라마를 쓰면 자칫 막장 작가가 아니라 매장 작가가 될 수도 있다.
(나로 말한다면, 매장 작가가 될래 막장 작가가 될래 라고 물으면 막장 작가라도 되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하는 놈 엉덩이를 한 대 때려주고 싶기도 하다.
기왕지사 벌어놓은 땅이 있으니 조금은 더 나를 감동시켜주면 안될까? 라고...................
근데...시나리오반과 와인반 친구들은 다 뭐하고 있는 걸까...?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