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마당이 생긴 기념으로...
도서리뷰가 아닌 영화 한 편의 리뷰를 올립니다.
(당연히 오래전에 인디언스에 올렸던 걸 다시 올립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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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영화인데다가, 우리나라에서는 개봉을 하지 않은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인터넷에서도 관련된 정보가 많지 않아서 어떤 영화인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한 상태에서 보게 되었다.
주인공인 존 올드만은 10년간 대학에서 교수로 근무하다가 그만두고 이사를 가게 된다. 그리고 작별을 아쉬워하며 모여든 사람들에게 아주 황당한 이야기를 한다.
처음엔 마치 소설 줄거리를 소개하듯 시작한 그는 자신이 14,000년 동안 이 지구와 함께 살아왔다고 이야기를 한다.
그러면서 그간 자신이 겪었던 일들을 담담하게 전한다.
원시인 시절을 거쳐 인간의 진화, 발달과 함께 스스로도 꾸준히 적응하며 그렇게 살아왔다고 말이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처음엔 어리둥절해 하던 동료들은 조금씩 그의 이야기에 빠져든다. 누군가는 말도 안된다고 코웃음을 치며 넘기고, 또 다른 동료는 제법 그럴 듯하다며 심각하게 듣고...
자신이 10년 만에 그들의 곁을 떠나야 하는 이유는 자신이 늙지 않기 때문이고, 남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서라고...
초기, 자신은 늙지 않는 것 때문에 제사장 노릇을 하기도 했고, 오히려 '남들의 젊음을 빨아먹어서 젊음을 유지하는, 그래서 다른 사람들을 죽게 만드는 마법을 부린다'는 오해로 쫒겨나기도 했다고 말이다.
빙하기도 온몸으로 겪었고, 그렇게 지구와 함께 살아온 긴 세월...
석가모니의 곁에서 함께 생활했다는 그는 그 후 오랜 세월이 지나서 석가의 가르침과 자신의 경험을 적당히 버무려서 이야기를 전하게 되었다고 한다. 근동지방에서...
그리고 누군가 묻는다.
"그럼 당신 예수를 보았나? 누군가는 백인이라고 하고, 흑인이라고도 하는데... 도대체 예수는 어떻게 생겼나?"
잠시 후 존 올드만은 자신이 예수라고 이야기한다.
"초기의 복음은 모두 합해 100단어도 되지 않았다."
"난 물 위를 걸었던 적도 없고, 베드로는 그리 뛰어난 어부도 아니었다."
산상수훈에 대해 묻자, "그냥 야트막한 언덕 위에서 잠깐 이야기를 한 적은 있지."
그런 그의 대답을 듣던 에디스라는 이름의 중년 여성은 경악을 하며 부정한다.
"당신은 예수가 아니야."
그리고 잠시 후 노년의 교수 닥터 윌 그루버가 화를 내며 말을 막는다.
"농담도 도가 지나치면 남들을 불쾌하게 하는데, 자네는 너무 심했어. 이제 농담이라고, 거짓말이라고 밝혀."
그리고 잠시 고민하던 존 올드만은 순순히 자신의 이야기에 너무 깊이 빠졌다며 꾸며낸 이야기라며 마무리한다.
그리고 그런 그의 이야기에 모두들 안도한다. 자신의 가치관을 바꾸지 않아도 되므로, 또한 자신의 신앙을 부정하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밤이 깊고, 모두들 돌아가고 난 후...
그는 자신을 사랑하는 샌디에게 진실을 이야기한다. 자신의 이야기는 사실이라고...
그리고 60년 전, 하바드 대학에서 교수로 근무했던 당시의 이야기를 꺼낸다.
"그때 나는 T 파티 라는 이름으로 근무했었어. 존 T 파티, 보스턴 T 파티..."
그가 그런 이야기를 할 때, 그의 뒤에서 이야기를 듣던 윌 그루버가 놀란다.
보스턴 T 파티는 자신의 아버지 이름이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어느날 그냥 가족들의 곁을 떠났다고 했다며 운다.
그리고...
그 충격에 쓰러진 윌 그루버는 숨을 거둔다.
숨을 거둔 자식(?)을 수습한 후, 존 올드만은 떠난다.
그를 사랑하는 샌디와 함께...
이 영화는 우리가 흔히 보는 헐리우드 영화와는 다르다.
일단 지루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산 속 오두막, 그것도 거실 안에서 몇 몇 사람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벽난로가 있고, 소파가 있고...
그나마 소파는 영화 중간에 자선단체에서 와서 모조리 가져가 버린다. 딱 하나만 남기고...
이사를 하면 필요가 없게 되니까 모든 가구를 자선단체에 기부해버린 것이다.
그나마 조금 멀리 나가는 게 집 밖의 울타리...
그러다 보니 멋진 활극과 화려한 볼거리에 익숙하다면 답답하기도 할 것 같고, 중간에 포기하게 될 것 같기도 하다.
이 영화의 백미는 결국 남자 주인공의 14,000년간의 삶을 들려주는 독백과 같은 대사일 것이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에 따라 감정의 변화를 보이는 주변의 사람들...
정말 아쉬운 것은 내가 영어를 할 줄 몰라서 자막에 의존해서 영화를 보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원어를 이해할 수준이라면, 자막으로 이해하는 것보다 몇 배는 더한 재미를 느낄 수 있을텐데... 아쉽다.
이래서 영어를 배워야 할까보다.
이 영화는 단 한 번도 주인공이 있는 공간-오두막과 집 주변-을 벗어나지 않는다.
회상 씬 같은 걸 넣어서 적당히 볼거리를 제공해도 될텐데, 그러지 않았다.
화면은 여전히 작은 오두막의 겨실에 옹기종기 모여앉은 사람들을 비추고 있다. 그런데 영화는 지구의 역사를 모두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 시절을 온몸으로 살아온 한 사내의 입을 통해...
영화에도 잠깐 이야기가 나오는데, 보통 나이를 먹으면 먹을 수록 하루의 길이가 짧게 느껴진다고 한다.
나 역시, 내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어린 시절의 하루는 무척 지루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나이를 먹으면서 조금씩 하루가 짧게 느껴지다가 지금은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겠다.
하루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24시간이지만, 나에게 하루는 [ 하루의 길이 / 내가 살아온 전체 길이 ] 정도로 표현될 수 있을 것이고, 따라서 시간이 지날수록 계속 짧아질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아마, 갓 태어난 아기의 하루는 정말 길 것 같다. 엄마 뱃 속에서 나와서 꼬박 24시간이 지난 아기에게는 태어나서의 평생의 시간 아닌가?
그렇다면 14,000년을 살아온 존 올드만에게 하루의 길이는 얼마나 짧게 느껴질까?
어쩌면 그냥 눈 떴다가 도로 감으면 하루가 가는 정도 아닐까?
이 영화를 보고 그런 생각을 했다.
현실적으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이야기이지만, 인간의 상상력을 발휘해서 만들어진 이야기로는 정말 최고라고 말이다.
종교에 예민하게 반응하게 되는 사람들에게는 조금 불편할 수도 있겠다.
영화 속에서 격렬하게 반응하는 에디스처럼...
어쨌든...
간만에 꽤 흥미로운 영화 한 편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