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물다 떠난 자리
2005년에 저는 [한국 초모랑마 휴먼원정대]에 참가하였습니다. 석 달을 훌쩍 넘기는 기나긴 여정이었고, 참가한 대원들 모두 평균 8~10 킬로그램 쯤 체중이 빠지는 험난한 등반이었습니다. 당시에 진행했던 시나리오 워크숍이 [심산반 14기]였는데, 덕분에 14기 수강생들은 무려 석 달이 넘는 휴강을 강제로 체험(?)해야만 됐습니다(ㅋㅋㅋ).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렇게 기나긴 휴강을 겪은 덕분인지, 14기에서 가장 많은 작가들이 배출되었다는 점입니다. “심산이 가르치지 않아야 작가가 된다?”(ㅋㅋㅋ).
원정기간 중의 두 달 이상을 에베레스트의 북측 베이스캠프(티베트에 속하며 해발고도 5,200미터 쯤 됩니다)에서 보냈습니다. 물론 그 위의 인트롬(5,800미터)이나 전진베이스캠프(ABC, 6,300미터)에도 계속 오르락내리락했지만 그래도 베이스캠프는 베이스캠프, 즉 ‘집’입니다. 그 집을 떠나오던 날, 제가 쓰던 개인 텐트를 철거하고 막 돌아서려는데, 무엇인가가 제 발목을 덥썩 움켜잡았습니다. 한 마디로 무어라 정의하기 어려운 감정이었습니다. 이 지긋지긋한 황무지에서 드디어 떠난다는 해방감 혹은 기쁨? 아니었습니다. 오랫동안 정들었던 곳과의 이별에서 오는 슬픔 혹은 허망함?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정말이지 뭐라고 정의하기 힘들었습니다. 여하튼 그 어떤 뜨거운 감정이 북받쳐 올라 저도 모르게 뒤돌아서서 사진을 한 장 찍었습니다. 그것이 위의 사진입니다.
그로부터 10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 2015년 11월 30일, 저는 놀랍게도 그때와 동일한 감정을 또 한 번 느끼는 체험을 했습니다. 바로 심산스쿨의 캠퍼스를 완전히 철거한 직후입니다. 슬픔도 아니고 기쁨도 아닌, 해방감만도 아니고 허망함만도 아닌, 정말이지 뭐라고 형언해야 할지 알 수 없는 감정이 들어 아래의 사진들을 찍었습니다. 머물다 떠난 자리. 그곳에서 영원히 떠나가기 전에 문득 다시 한번 그 자리를 뒤돌아볼 때 느끼게 되는 이 기묘하고 ‘유니크’한 감정. 어쩌면 우리가 죽음 직후에 자신이 살던 곳을 흘낏 본다면 아마도 이런 감정을 느끼게 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