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산스쿨 심산반 50기 개강을 자축하며
1998년 이후 25년 동안 50회의 시나리오 워크숍 운영중
함께 했던 '우리 기쁜 젊은 날'들을 추억하고 기리다
처음 시나리오 워크숍을 열었을 때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비트](1997)를 성공적으로 개봉한 다음 [태양은 없다](1999)를 한참 찍고 있었을 때의 일이니까 1998년 가을이었습니다. 당시 [씨네21]의 편집장이었던 조선희씨가 전화를 걸어오더니 뜬금없이 한겨레문화센터의 시나리오 워크숍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해왔습니다. 몇 번이고 사양하다가 결국 마지못해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떠맡은 일이 그 이후 무려 25년 동안이나 지속될 줄은 정말이지 꿈 속에서조차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저를 잘 아는 제 주변의 지인들은 모두들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저는 원래 루틴의 반복을 지겨워하고, 재미없으면 안하고, 하기 싫은 일은 때려죽여도 못하는 성격이거든요. 그런 제가 무려 25년 동안이나 시나리오 워크숍을 지속하고 있는 까닭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매 기수마다 수강생들이 바뀌니까 루틴이라는 것 자체가 아예 존재할 수 없고, 그들과 함께 영화와 시나리오에 대하여 토론하는 것이 너무나 재미있고, 누가 이제 제발 그만하라고 윽박질러도 하염없이 계속하고만 싶은 '즐거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저는 [나는 심산스쿨에서 배웠다]라는 제목의 단행본을 한번 써낼까 생각해봤던 적도 있습니다. 겸양의 표현이 아니라 사실 그대로입니다. 제가 심산스쿨에서 가르친 것보다 심산스쿨을 통해서 만나게 된 여러분들로부터 배운 것이 훨씬 더 많습니다. 실제로 저 자신이 심산스쿨의 사진반과 예술사반과 전각반의 수강생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심산스쿨의 본령은 역시 어디까지나 '상업영화 시나리오 워크숍'입니다. 지난 25년간 저는 심산스쿨의 시나리오 워크숍인 [심산반]과 [심산상급반]을 통하여 거의 2000명에 육박하는 수강생들을 만났고 그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그분들 모두에게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저와 함께 공부했던 분들 중에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어 현재 시나리오작가, 영화감독, 영화제작자, 영화기획자, 드라마작가, 드라마PD, 방송작가, 웹툰작가, 웹소설작가, 소설가, 에세이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계신 분들이 무려 200여명을 훌쩍 넘어섭니다. 거의 매일 그들이 만든 다양한 분야의 영상컨텐츠를 보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심산스쿨에서 시나리오 워크숍을 함께 했으나 현재 그와는 무관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계신 분들이 당연히 더 많습니다. 하지만 무슨 상관이란 말입니까? 저는 그분들과 함께 했던 ‘우리 기쁜 젊은 날’의 모든 순간들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에, 그러니까 2023년 5월 17일(수)에는 [심산반50기]가, 그리고 다음날인 18일(목)에는 [심산상급반19기]가 개강합니다. 이번에 개강하는 2개의 워크숍에서도 물론 저는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저와 함께 ‘비주얼 스토리텔링’의 신세계를 탐사하게 될 여러분들에게도 ‘즐겁고 유익한’ 시간으로 남게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한 작가가 자신의 이름을 내건 워크숍을 개설하고, 그것을 무려 25년씩이나 지속해왔다는 것은 아마도 한국영화사(어쩌면 한국문화예술사 전체)에서 전무후무(!)한 일로 기록될 것입니다. 저는 이 기록을 매우 영광스럽고 대단히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모두 여러분들 덕분입니다. 50번째 워크숍 클래스를 열게 된 것을 자축하는 마음으로 제 흥에 겨워 횡설수설 몇 자 끄적여봤습니다. 그저 모자란 작가의 넋두리려니 하고 널리 혜량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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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위의 사진은 최근 다녀온 파키스탄 북부여행(2023년 4월 24일-5월 14일) 도중 찍은 것입니다. 파키스탄 최북단 길기트-발티스탄 주에는 후세인아바드라는 지역이 있습니다. 그 지역의 산골마을인 어퍼-후세인아바드 마을의 뒤에는 ‘이름 없는 야산’이 있는데 그 해발고도가 4000m에 육박합니다(히말라야 지역에서 4000m 정도의 산은 아예 명함도 못내밉니다 ㅎㅎ). 제가 올라선 곳은 그 산의 거의 정상 부근에 있는 마수르 바위(Marsur Rock)입니다. 그저 평범한 '동네 뒷산의 한 바위'에 불과했던 저곳이 갑자기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2017년 누군가가 저 위에서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면서 이른바 ‘인생샷’ 선풍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입니다.
저도 사진 속의 풍광이 너무 멋져 저 바위를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고작해야 이런 사진 한 장 건지겠다고 공연히 저곳에 오르는 과오(?)를 저지르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저 마수르 바위가 있는 곳은 해발 3730m이고, 저기까지 올라가려면 땀을 뻘뻘 흘리고 숨을 헥헥거리며 아래쪽에서 불어 올라오는 사막의 모래 먼지를 흠뻑 들이마셔야 하니까요(ㅎㅎ). 사진으로 보면 멋지지만 실제로 저곳에 가려면 그야말로 개고생(!)을 해야합니다. 저야 뭐 어차피 올라갔으니 사진과 동영상을 많이 남겼습니다. 그래도 어떤가요, 뭔가 심산반 50기 개강을 자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까?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