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심산 등록일: 2007-09-03 20:3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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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친구 조병준하고 인사하실래요?
2007년 10월부터 심산스쿨에 출강

제 친구 조병준하고 인사하실래요? 인사를 시킬려면, 소개부터 해야 되는데, 그는 참 소개하기가 어려운 친구입니다. 직업이 너무 많거나 전혀 없고,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알수가 없으니까요(ㅋㅋㅋ). 언제부터 제 친구였냐고요? 처음 서로 얼굴을 맞댄 날짜는 아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심산스쿨에서 [히말라야 어깨동무 야크치즈-LP파티]를 열었던 2007년 8월 8일 밤이었죠. 만난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무슨 놈의 친구냐고요? 만나지 않았을 때도 그와 나는 친구였습니다. 적어도 한 10년쯤 전부터 그와 나는 서로가 쓴 글을 읽으며 언젠가는 이 친구를 만나겠구나 하고 여겨왔으니까요. 덕분에 그날 처음 만났는데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처음 만난 그 자리에서 서로 야자(!)하며 친구 먹기로 해버렸습니다. 덕분에 이익(?)을 본 것은 접니다. 조병준은 저보다 한 살이 많고, 학번으로는 두 학번이나 위거든요...^^

조병준에 대해서 더 알고 싶으신 분은 그의 블로그(http://blog.naver.com/joon6078)[내 마음의 지도]를 방문해 보십시오. 만든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네이버에서도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블로그들 중의 하나입니다. 그곳을 방문해보시면 제가 왜 그를 “어떻게 소개해야 좋을지 모를 친구”라고 했는지 이해하실 겁니다. 어찌 되었건 바로 이 조병준이 2007년 10월부터 심산스쿨에서 강의를 합니다. 현재 워크숍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는 [최석환반 1기]가 종강하면, 바로 그 자리, 그러니까 매주 금요일 밤 7시 30분부터 9시 30분까지 [조병준반]이 열립니다.

그런데 [조병준반]에서는 무엇을 가르치느냐? 설명하기 힘듭니다. 애당초 제가 부탁한 것은 [조병준여행반]이었습니다. 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여행작가반]이고, 여행과 글쓰기에 관련된 모든 것을 가르치는 반이었죠. 하지만 조병준은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가 제게 물었습니다. “내 맘대로 가르쳐도 되지?” 저의 답변은 물론 “예스!”입니다. “반 이름도 내 맘대로 정한다?” 저의 답변은 물론 “예스!”입니다. 저는 그가 무어라고 질문해도 “예스!”라고 대답할 겁니다. 그는 제 친구이고, 저는 그를 100% 믿으니까요.

하지만 이 친구는 제 말을 엥간히도 안 듣습니다. 반 이름을 정하고, 기간을 정하고, 언제부터 할 것인지도 정하고, 무엇을 가르칠 것인지를 정해서 제게 알려달라고 부탁한지가 벌써 까마득한데, 아직도 답변을 안해주고 있습니다. 이유는 물론 알고 있습니다. 조만간 그의 시집 두 권이 동시에 출간되고(하나는 보통의 시집이고, 다른 하나는 그가 찍은 사진들과 함께 펴내는 사진시집입니다), 그 시집들의 출간기념회를 겸한 사진전이 열리게 되어 있어서, 그 준비 때문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니까요. 그래서 이번에는 제가 반칙(!)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의 블로그를 방문해 최근에 올린 그의 글을 무대뽀로 긁어 와서 이곳 [심산스쿨] 홈페이지에 올리기로 한 것입니다.

아래에 올리는 글은 조병준의 블로그 [내 마음의 지도]에서 긁어온 것(!)입니다. 곧 출간될 그의 시집에 대한 서면 인터뷰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멋지게 찍혀진 그의 사진은 모두 [임종진사진반]의 임종진 선생님의 작품들입니다. [조병준OO반]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조만간 제대로 된 배너를 만들어 알려드리기로 하고, 그의 출판기념회 겸 사진전에는 다들 모여서 우루루 몰려가기(!)로 하고, 일단 심산스쿨의 여러분들께 제 ‘게으른’ 친구 조병준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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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준 시집 [나는 세상을 떠도는 집]과 [따뜻한 슬픔]
출판사 샨티의 이홍용 주간과의 서면 인터뷰

1. 첫 시집인데 감회가 어떠신가요?

허걱, 감회 같은 고풍스러운 단어를! ㅡ,.ㅡ ; 뭐라 한 마디로 정리할 수 없는, 그야말로 감정의 만다라라고나 할까. 오래 기다려온, 그러니까 동시를 쓰던 초등학생 시절부터 계산하면 40년의 기다림 끝에 찾아온 사랑이라고나 할까, 왜 그런 거 있죠? 너무 오래 기다리던 사람이 막상 찾아오면 서러워지고 데면데면해지고, 심지어 미워지기까지 하는.... 그래요.... 교정 보면서 내내 죽고 싶었어요. 이런 허섭쓰레기를 끌어안고 살았구나, 버리지도 못하고, 자꾸 덧쌓기만 하면서.... 책 나오면 아마 딸자식 결혼식장에서 신랑 손에 넘겨주고 돌아나가며 뚝뚝 눈물 흘리는 아버지 심정 비슷하게 느낄 것 같아서, 벌써부터 속이 까맣게 썩어들어가요..ㅠ.ㅠ 시집 시집 보내기...썰렁하네요...ㅡ.ㅡ;

청탁 원고 보낼 때, 타이틀을 써야 하잖아요. 등단만 해놓고 15년이 지나도록 발표는 거의 없었죠. 사실은 밥벌이 글 쓰느라고 시에 매달리지도 못했어요. 다들 아시겠지만, 산문 쓰는 호흡과 시 쓰는 호흡이 다를 수밖에 없잖아요. 그렇게 시와는 격리되어 살면서도 악착같이 '시인'이라는 타이틀을 갖다붙였어요. 어거지 부린 거죠. 그럴 수밖에 없었어요. 시는 내 글이 시작된 근원이었으니까요.

2. 본인에게 시는 어떤 것입니까? 예컨대 세상을 벼리는 ‘칼’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삶을 지탱시키는 ‘밥’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 것처럼. 한마디로 시는 나에게 무엇이다, 라고 말할 수 있나요?

그러니까 1992년에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했을 때, 어떤 선배님이 제게 물으셨어요. "병준씨는 왜 시를 써?" 시와는 별로 관계하는 일 없이 사시는 분의 질문이었어요. 진땀 삐질삐질 흘리다가, 했던 대답이 '사는 게 억울해서요.'라는 참 웃기는 대답을 했어요. 억울한데, 억울하니까, 뭔가 세상에 대해 궁시렁궁시렁이라도 해야 살 수 있는데, 생각해 보니, 그 궁시렁궁시렁이 시가 되었나봐요. 칼처럼 후벼파는 세상에 대해 치켜든 방패였기도 하고, 그래도 후벼진 상처에 대고 내 혀로 핥아댄 위로이기도 하고.... 암튼 시가 없었다면 인생, 아마 지금보다 열 배쯤은 지겨웠을 거에요, 억울했을 거에요. 그나마 다행이죠. 얼마나 감사한지... 한마디로 내게 시는 무엇이냐? 라고 물으셨으니, '시는 내 마음이, 또는 영혼이 배고팠을 때 서리해 먹은 날콩이었다'라고 하겠습니다. 음, 역시 썰렁하군요.ㅠ.ㅠ

어릴 때부터 걸레질하시며, 밥 하시며 부르는 어머니 노래를 듣고 자랐어요. 어린 시절부터 정말 신기했어요. 국민학교도 못나오시고, 야학에서 겨우 가나다라 깨치셨다는 어머니였는데, 어쩌면 저렇게 매일 다른 가사로 노래를 만들어 부르실까.... 그걸 다 채보해 놓지 않은 건 아마 제 일생에 가장 큰 실수였을 거에요. 언젠가 사람들에게 그 얘길 하면서 이렇게 말했어요. '엄마가 부르셨던 노래 같은 시를 쓰고 싶다'고요. 엄마 역시, 아니, 엄마는 제 삶보다 적어도 천 배쯤은 더 배고픈 생, 몸과 마음, 영혼이 다 배고팠던 생을 사셨을 거에요. 엄마는 그 노래들을 부르시면서 세상이, 삶이 강요했던 상처를 핥았던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요. 살다 보니, 또는 살려고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저절로 입밖으로 튀어나오는 노래, 제게 시는 그런 거에요. 국민학교도 못 나오신 엄마가 읽어도 이해할 수 있는 시를 쓰고 싶었어요. 그러면 노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루지 못할 꿈인지도 모르죠. 그래도 그걸 소망해요.

3. 시집에 묶인 시들을 보면 주로 사랑과 가족, 그리고 유년의 추억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시인에게 가족은 어떤 의미인가요? 떠나온 곳이자 돌아갈 곳인가요?

가족.... 예전에 대학에서 창작법 강의를 했던 적이 있어요. 그때 학생들에게 첫번째 과제로 '내 인생에서 가장 슬펐던 날"을 쓰라고 요구했었죠. 아니나다를까, 글 쓸 싹수가 보이는 학생들은 정말 예외없이(!) 가족 이야기를 써왔어요. 너무 사랑해서건, 아니면 사랑을 주고받지 못해서건, 언제나 가족은 영원한 슬픔의 원천일 수밖에 없다, 고 저는 믿어요. 거기다 덧붙여, 세상은 그 슬픔을 밖으로 이야기해선 안된다고 윽박지르곤 하죠. 가족은 언제나 환한 사랑과 행복의 원천이어야 한다는 억압 말이에요.... 이를테면 가족은 원죄 같은 거에요. 내가 선택하지 않았는데, 내 의지로 선택한 게 아닌데, 끝내 벗어날 수 없는 굴레.... 사실은 벗어나고 싶지도 않죠. 거기서 벗어나면 갈 데가 없는 걸 아니까요. 그러면서도 자꾸 벗어나고 싶다고 칭얼대는 거에요.

가족들의 이야기, 제겐 이 우주와 맞먹는 무게의 이야기들이에요. 세상 누구도 눈여겨 봐주지 않는, 가까운 가족 말고는 누구의 기억에도 남겨지지 않는, 이 우주만큼 귀하고 무거운 이야기들을 써야 한다, 청춘 시절부터 제가 스스로에게 떠넘긴 임무였어요. 내가 아니면 그 누구도 써주지도 않고 쓸 수도 없는 이야기들이었으니까요. 참 적대적이었던 삶을 살아야 했던 내 가족들에게 그 정도의 보상은 누군가 해줘야 했어요. 그게 제 몫이라고 생각했구요.

웃기는 얘기 하나 할까요? 철없던 시절에 누구나 한번쯤 그런다죠? 자기가 고아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 저도 했어요. 사실은 많이 했어요. 가족에 대해 져야 하는 무한책임, 그거 참 무거웠거든요. 도망치고 싶었던 적, 한두 번이 아니었죠. '떠나고 싶은 우리 집'이라고 시에 쓴 적도 있었어요. 물론 어떻게 떠나겠어요. 껴안아야 삶이 온전해지는데요. 껴안아야 시가 정직해지는데요....

4. 시들이 대개 쓸쓸함과 애조를 띠고 있는데, 그러면서도 세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느껴집니다. 세상이나 사람에 대한 분노조차도 동정과 연민 혹은 회한으로 걸러집니다. 또 ‘나’라고 하는 주체가 등장하지 않는 시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연민, 회한, 쓸쓸함, 슬픔 같은 것들이 일종의 나르시시즘처럼 비치기도 합니다. 이것은 달리 보면 세상(타인을 포함해서)과 소통이 원활하지 못하거나 실패를 거듭하는 현실에서 그 세상을 뒤에 두고 자기를 향해 돌아서 자기 자신과 소통을 시도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세상과의 소통 실패로 받은 상처를 가장 안전한 ‘자기’ 안에서 위로받으려는 몸짓 같은 거죠. 어떤 의미에서 세상과의 행복한 소통 같은 것은 환상일지도 모릅니다. 유년의 추억에 관한 시들이 많은 것도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볼 수 있겠지요. 혹 이런 부분에 대해서 하실 말씀이……

석사 논문에서조차 본인, 필자, 이런 단어 안 쓰고 '나'라고 썼다가 졸업 못할 뻔한 걸요..ㅜ.ㅜ  시를 쓰건 산문을 쓰건, 아직 깨지 못한, 또는 깨지 않을, 원칙이 하나 있어요. '내가 몸으로 겪은 일'이 아니면 쓰지 않는다, 는 원칙이에요. 저는 객관이라는 말을 믿지 않아요. 통계와 확률의 법칙이야 믿지 않을 수가 없지만, 객관성이니 중립이니 그딴 것들은 별로 안 믿어요. 사실은 언어에 대해서도 그런 의심이 있어요. 세상에 60억의 사람이 있다면, 60억 개의 언어가 있을 것이다, 라는.... 단어 하나를 해석할 때도 자기 '몸'이 겪은 경험에 따라 모두 다르게 해석하는 법이잖아요. 언제나 완벽한 소통을 꿈꾸죠. 그런데 그렇게 꿈꾸면서도 이미 몸으로 알고 있어요. 소통은 언제나 불가능하다는 걸. 예전에도, 지금에도, 앞으로도, 언제나.... 그 소통되지 않음, 또는 60억 개의 언어가 필연적으로 강요하는 바벨의 서러움, 아마 그런 게 조병준표 우울증의 원인 바이러스일 거에요. 그런데 또 동시에 조병준은 선천성 애정결핍증에도 걸려 있거든요. 최악의 결합이에요. ㅠ.ㅠ

지금까지 제 산문만 읽은 독자분들은 어쩌면 조금 놀랄지도 모르겠어요. 사실 제가 봐도 시들이 죄다 청승에다 멜로 일색이잖아요. 알면서도 어쩔 수가 없어요. 굳이 구분해서 말하자면, 산문이 제가 '세상'과 소통하는 통로라면 시는 철저하게 '제 자신'과 소통하는 통로거든요. 제 시는 아주 개인적이에요. 그것 때문에 비난도 많이 들었고, 어쩌면 그 주눅 때문에 이제야 시집이 나오게 된 건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어요. 시는 제가 숨어서 혼자 통곡할 수 있는, 그러다 지쳐서 잠드는, 그런 골방, 적어도 나를 내치지 않는, 배신하지 않는, 그런 숨겨진 방, 성스러운 방이었으니까요. 그렇지만 한편으론 제아무리 개인적인 슬픔이라고 해도, 그 슬픔의 원형은 아주 보편적일 거라는 믿음도 있어요. 그 슬픔이 만약 디테일 가득한 산문으로 표현되었다면 감정이입이 어렵겠지만, 시로 표현될 경우엔 나를 넘어서 복수의 사람들에게 감정이입을 허용할 수 있지 않겠느냐, 그런 믿음이죠.

유년의 추억을 이야기하는 시가 많은 이유를 굳이 설명하자면, 아직 세상과 나의 이분법을 몰랐던 시절에 대한 그리움 같은 것일 수도 있을 거에요. 덧붙이자면, 유년의 경험들이 참 독하게도 아팠기도 했고요.... 더 얘기하면 진짜로 멜로드라마 되니까 여기서 그만!

5. 위에서 지적한 것처럼, 시집에 묶인 시들에서 느껴지는 주된 정조는 ‘사랑’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가 뭐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대는 단어가 ‘사랑’이라고도 하더군요.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추한 단어도 어쩌면 ‘사랑’일지 모릅니다. 시인의 시들을 읽으면서 시인에게 사랑은 어쩌면 구원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위의 4번에서 지적한 ‘자기애’까지 포함해서) 우리가 살아가는 지상의 세계에서, 사랑이란 늘 상대적인 것 같습니다. 자기든 타인이든 대상과의 사랑이지요. 사랑이 구원이라면, 그 의미는 대상과의 완전하고 평등한 합일이 아니겠나 생각이 됩니다. 어떤가요?

저보고 누가 맨날 놀려요. 남자 심수봉이라고...ㅠ.ㅠ 사랑밖에 난 몰라~~~ 으하하하하... 어쩌다 그렇게 된 건지는 저도 몰라요. 하여간 그렇게 됐어요. 사랑밖엔 난 몰라~~~ ㅋㅋㅋ 생물학적으로 설명하죠. 환경은 생명에게 적대적이에요. 애초부터 그렇게 시작되었어요. 거기서 살아남기 위해 생명이 선택한 방식이 '사랑'이라고 저는 믿어요. 어차피 혼자서 태어나 혼자서 죽는 생명이지만, 그 과정을 조금이라도 덜 힘들게 하려고, 그리고 그 이후의 과정, 그러니까 다음 생명이 조금이라도 덜 힘들게 살아가게 하려고, 사랑이 비집고 들어서는 거죠. 생물학으로 보든, 종교로 보든, 사랑은 그래서 생명에게 필수에요. 구원 정도가 아니라 그게 없이는 생존 자체가 불가능한, 그게 사랑 아닐까요?

대상과의 완전하고 평등한 합일, 꿈이죠. 날마다 꾸지만, 날마다 깨지는 꿈이에요. 그런 합일, 적어도 이 지상에선 불가능해요. 무성생식으로 영원히 생존하는 단세포 유기체라면 가능하겠지만, 다세포 생물은 절대로 그렇게 절대 합일의 지경에 이를 수 없어요. 세포벽이 존재하는 걸요 뭐...ㅜㅜ 그렇게 서로의 세포벽이 확인되는 순간, 사랑이 징그러워지고, 사랑이 무서워지죠. 언어라는 이름의 세포벽, 살아온 경험이라는 이름의 세포벽, 온갖 이름의 세포벽들... 그래도 어쩔 수 없어요. 그나마 그 사랑에 대한 꿈이라도 있어야, 이 퍽퍽한 마른 빵 같은 세상, 이겨낼 수 있으니까요. 가끔씩, 아주 잠시나마, 꿈이 이뤄졌다는 착각(또는 그 순간에만큼은 진실)을 주는 사랑이 찾아오는 것도 계속 꿈을 꾸었기 때문일 테니까요. 생긴 대로 산다는 말,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사랑밖엔 난 몰라~는 제 유전자에요. ㅋㅋㅋ

6. 사진 시집이 함께 나왔습니다. 그 의미를 좀……

어색한 비유인지 모르겠는데, 영화가 소설 또는 산문이라면 사진은 시라는 생각을 했어요. 연속이 아니라 한 프레임으로 생의 의미를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말이에요. 사실은 오래 전부터 그런 포맷의 책을 구상해 왔어요. 한 프레임의 사진과 한 편의 시를 통해서 생의 한 순간을 보여주자는... 백 페이지의 글로 사진 한 장이 설명 안 될 때가 있지요. 마찬가지로 백 컷의 사진으로 한 줄의 글을 설명할 수 없을 때가 있구요. 글과 이미지는 서로 그렇게 다르니까요. 그 서로 다른 영역들이 합쳐질 수 있을까? 서로 독립을 유지하면서 서로 동맹을 맺는, 무엇에 대한 동맹이냐 하면, 소통불가능이라는 지독한 폭군에 대한 동맹이죠.

'시간의 한 점'이라는 타이틀로 쓰기 시작했어요. 사진이라는 거야 원래 1초도 안되는 순간을 잡아내는 거고, 시도 거의 그렇잖아요. 순간에 떠오른 영감에서 비롯되니까요. 여행에서, 아니면 일상 속에서 그렇게 내 눈 앞에 생의 비밀 한 조각을 드러내는 순간들을 사진으로 찍고, 시로 써보고 싶었죠. 쓰다 보니, 역시 팔자 또는 DNA는 어쩔 수 없는지, 사진 시집도 죄다 슬픔이네요..... 사랑밖엔 난 몰라~도 여전하고...ㅎㅎㅎㅎ

7. 이번 책 출간과 함께 사진전도 연다고 들었습니다. 두 번째 사진전이라고요. 누가 시인에게 사진가라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나요?

산술적인 의미에서라면 두번째죠. 2006년 겨울에 광주에서 조그만 사진전을 열었어요. 제가 한 게 아니라 광주의 친구들이 선물처럼 열어준 사진전이었죠. 그때 정한 사진전 제목이 <따뜻한 슬픔>이었어요. 광주에서, 그것도 작은 바에서 열었던 전시라 사실 많은 사람들이 보진 못했어요. 이번에 책 제목을 정하면서 그보다 더 좋은 제목이 떠오르지 않았어요. 그 전시회에서 썼던 사진들 중에서 꽤 여러 사진이 이번 전시회에 다시 올라가죠. 책에도 실리고요. 그런 의미에서 두번째 사진전이라기보다는 1.5전이라고나 할까요.... 광주에서 첫번째 사진전 열어준 친구들에게 지금도 감사해요. 여러 면에서 만약 그 전시가 없었다면 이번의 전시도 없었을 거에요. 책도 그렇구요....

사진가라는 타이틀, 제가 감히 어떻게 붙여요. 전 기본적으로 글쟁이일 뿐이에요. 물론 책을 낼 때마다 늘 사진이 함께 가긴 하지만, 그래도 사진가의 사진은 아니죠. 그저 글쟁이가 글로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해소하는 이온음료수 같은 거라고 보면 될 거에요. 가끔 욕심이 나긴 해요. 좀더 확실히 공부해서 더 좋은 사진을 찍고 싶다, 라는 욕심.... 그런데 제가 사실 많이 게으르거든요. 그냥 조병준 표 사진이 생겨난다면, 그걸로 만족할래요.

8. 책 출간 후 공연 연출가인 김아라 선생과 함께 재미난 출간 기념 공연을 준비한다고 들었습니다. 시인께서는 책 출간 후 늘 크고 작은 퍼포먼스를 벌이곤 하셨는데, 이번 기념 공연은 어떻게 준비하고 계시는지요?

재미날지, 쓸쓸할지, 그건 장담 못할 일이구요... 2007년 9월 15일 제 시들을 가지고 일종의 퍼포먼스가 펼쳐질 거에요. 음악과 춤, 연극이 만나서 한 편의 드라마를 만들게 될 거에요. 2부에선 작은 콘서트가 이루어질 예정이구요. 사진전 오프닝도 함께 축하하는 자리이기도 하고, 이래저래 작지 않은 행사네요. 잘 되어야 할 텐데...

책이라는 게 글쟁이한텐 사실 인생의 전부라고 해도 되잖아요. 책 한 권을 낼 때마다 한 시절이 끝나고 또 한 시절이 시작되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날마다까진 아니어도, 책이 나오는 시점마다 또 한번 환생의 사이클이 순환된다고나 할까... 그러니까 이를테면 장례 의식이기도 하고, 탄생을 기뻐하는 의식이기도 하고, 그렇게 이중적인 의미를 지닌 의식으로 출간 기념 행사를 만들곤 했었죠. 물론 지인들과 함께 기뻐하는 의미가 제일 크죠. 뭐 이번에도 거의 비슷해요. 시집이 나오는 거니까, 조금 차분하게 흘러가겠지만요.

9. 시인의 블로그는 인기 블로그 중 하나로 알고 있습니다. 그만큼 블로그 관리도 잘하신다는 얘기일 텐데요, 힘들거나 지겹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나요?

잘 하긴요,... 제게 블로그는 일종의 작업노트 비슷한 거에요. 그러면서 동시에 친구들이나 독자들과의 피드백 통로가 되기도 하구요. 블로그 덕분에 게으른 천성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메모는 하게 되니까 좋아요. 힘들거나 지겹진 않은데, 문제는 찾아오시는 이웃들에게 맨날 똑같은 이야기 하고 또하는 블로그가 되고 있진 않은가, 하는 걱정이 있죠. 블로그 덕분에 만날 확률 거의 없었던 사람들도 만나 친구가 되기도 하고...

제 블로그를 찾아와 주시는 모든 이웃들에게 찾아가 덧글도 달고 인사도 남겨야 하는데, 그건 사실 이미 불가능해요. 그랬다가는 하루종일 블로깅만 하고 있어야 할 지경이거든요..ㅠ.ㅠ  이 자리를 빌어 사과드릴게요. 항상 감사하고 있다는 말씀도 덧붙여서....

10. 시인의 친구들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음...지금까지 나온 책들 중에 이미 친구들 이야기로 점철된 것들이 몇 권 돼죠...ㅡ,ㅡ 블로그에도 역시 사람들 이야기 천지구요.... 친구들 이야기는 너무 많으니까, 패스~~~ 한 가지만 말씀드리면, 제 친구들 가만히 보면 죄다 따뜻한 인간들인데, 속내 가만히 들여다보면 또 죄다 쓸쓸한 인간들이에요. 뭐 죄다 '따뜻한 슬픔'들인 거죠.....

11. 정처 없이 떠돈다는 말이 가당할 것처럼, 여행도 자주 다니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정처가 없기 때문에 시를 쓰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것도 같습니다. 정처에서 고요히 머문다면 시보다는 산문을 쓰게 될 가능성이 더 커질지도 모르고요. 머묾과 떠돎이랄까, 그런 것에 대해……

사주에 역마살은 안 나온 걸로 아는데, 별자리점에선 타고난 떠돌이라네요. 둘 중 하나는 틀렸다는 얘긴데.... 아님, 둘 다 맞을 수도 있고, 그래서인지, 정착에 대한 욕망과 유목에 대한 욕망이 항상 공존해요..... 아직까진 유목의 욕망이 대개 판정승을 거둔 편인데, 앞으로도 계속 그럴 수 있을지, 내일 일을 누가 알까요.... 사실 여행을 떠나면 시의 호흡이 돌아오곤 했어요. 먹고 사는 일은 사실 산문의 호흡이잖아요. 작년 여름, 이런저런 이유로 6년만에야 다시 긴 여행을 떠날 수 있었어요. 잠깐 서울에 돌아오긴 했지만, 바로 다시 나갔죠. 합치면 여덟 달을 이리저리 떠돌며 지냈어요. 돌아오면서 생각했어요. 이제 더 늦기 전에 한 번쯤은 온전히 시의 호흡으로 살아보자, 시집이 묶이든 말든, 시만 써보자, 시가 안 되면 시 비스무리한 것이라도 써보자.... 하늘이 도와서 몇 달 그렇게 살아봤네요. 그리고 이렇게 시집도 두 권을 묶게 되고...

모르겠어요. 내친 걸음, 더 정처없이 떠돌면서 시의 호흡으로 당분간 살게 될지, 아니면 다시 정처 두고 산문의 호흡으로 살게 될지.... 그냥 흘러가게 내버려 둘래요. LET IT BE, LET IT GO, LET IT FLOW....

이번에 나올 두 권의 새 책, <나는 세상을 떠도는 집>과 <따뜻한 슬픔>의 보도자료를 써야 한다면서 샨티출판사의 이홍용 주간이 서면 인터뷰를 요청(사실은 강요 ㅠ.ㅠ)했다. 편집자로서 시들을 아마 수십 번은 읽었을 것이다. 가엾어라....ㅠ.ㅠ 아무튼 그래서 위와 같은 대화를 나눴다. 우문현답이 절대로 아니고, 현문우답임이 확실하지만, 흐르는 대로 내버려 두라고 내가 스스로 말했으니, 그냥 여기 올린다(조병준).

조병준 블로그 [내 마음의 지도] 바로가기
http://blog.naver.com/joon60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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