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심산 등록일: 2008-02-02 01: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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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작가조합 파업? 부러워 죽겠다!
한국시나리오작가조합 대표 심산 인터뷰

미국에 WGA(Writers Guild of America, 이하 작가조합)가 있다면, 한국에는 SGK(Screenwriter's Guild of Korea)가 있다. 닮은꼴의 작명에서 유추해볼 수 있듯, WGA를 모델삼아 2005년 11월에 탄생한 한국시나리오작가조합(SGK)은 불합리한 관행이 뿌리깊은 한국영화계에 이의를 제기하고 나선 시나리오작가들의 목소리다. 조합의 초대 공동대표에 이어, 2기 단독대표로 2008년 살림을 시작한 심산씨를 만났다. <비트> <태양은 없다> 의 작가이자 숱한 후학을 길러낸 시나리오 선생님으로 명성을 얻었지만, 시나리오작가조합과 시나리오마켓 탄생의 주역으로 조직을 구성하고 정책의 밑그림을 그려온 그는 언제나 시나리오작가들의 권익을 찾기 위한 움직임의 선두에 서왔다. “미국과 한국의 상황을 비교하자면 100대 0”이라는 말로 인터뷰를 시작한 그에게 먼 나라의 파업을 바라보며 “부러움”을 앞세울 수밖에 없는 한국 시나리오작가들의 현주소에 관해 들었다.

골든글로브 시상식 파행 등 작가조합 파업의 파장이 상상 이상으로 큰데, 어떻게 보고 있나?

작가조합 파업에 대한 한국시나리오작가조합의 입장은. . .  부러워죽겠다, 이거지 뭐.(웃음) 지금 우리 커뮤니티에 들어가면 이와 관련해서 글이 엄청나게 올라와 있다. 다들 우리는 언제 이렇게 해보나 하며 부러워하고 있다.

핵심 쟁점이 2차 저작권에 대한 수익 배분인데, 한국의 상황과도 겹치는 이야기다

작가조합이 주장하는 것은 새로 생긴 뉴미디어 부문에 대해 왜 돈을 안주느냐는 건데, 사실 그들이 20년 전에 쟁취했던 것을 우리는 아직 하나도 못 받고 있다. 보통 일반적인 계약서를 보면 갑이 제작자이고 을이 작가이지 않나. 그걸 두고 모든 권리는 갑에게 있고 모든 의무는 을에게 있다, 이런 농담을 할 정도다. 한국에서 통용되는 계약서를 살펴보면, 시나리오로 만들어지는 2차 저작물들을 괄호치고 쭉 명기해놨다. 극장수익, 지상파TV판권, 케이블 TV판권, 캐릭터 상품권, 출판권, 해외 판권 등 모든 것들이 전부 갑에게 있다고 되어있다. 말도 안 되는 불공정 계약인 거다. 지금 미국 작가들은 괄호 안에 있는 것은 갖고 있고 새로 생긴 것을 왜 안주냐 하는 게 파업의 핵심인데, 우리와 상황을 비교해보자면 사실 100대 0도 안된다. 무한과 최소의 상황이랄까. (웃음) 우리는 왜 그런 걸 부러워해야만 하는지 모르겠다.

당연히 그 부분에 대해 문제제기를 해오지 않았나?

물론 문제제기를 했다. 하지만 모든 것은 시장의 법칙에 따라 이루어진다. 노예 같은 계약서에라도 사인을 하고 쓰고 싶다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고. 거기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작가들이 있으면 제작자쪽에서 아예 선택하지 않으니까. 조합을 만든 이유도 그런 부분을 개선하고자 했던 거다. 지금 한국은 한 번 계약금을 받으면 시나리오를 완전히 넘겨버리는 형식이어서, 차후에 그걸 갖고 무엇을 하든 아무런 발언권을 갖지 못하는 상황이다. 저작권 자체가 없으니까 2차 저작권도 없을 수밖에 없다.

2차 저작권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1차 저작권조차 안 지켜진다는 말인가?

전혀. 저작권에 대한 기본 개념은 이런 거다. 작가가 어떤 시나리오를 썼다. 그러면 공식적으로 저작권은 사후 50년까지 작가에게 있는 거다. 영화사에 넘기는 것은 영화를 만들 수 있는 배타적 권리, 즉 영화화권이라고 저작권의 일부일 뿐이다. 그 영화화권을 일정 기간 임대하는 조건으로 받는 게 계약금이고. 즉 제작사가 3년 안에 영화를 찍겠다는 조건으로 계약했다면 그 기간 동안만 배타적인 영화화권을 소유하는 것이고, 3년을 넘기면 계약이 끝나는 거다. 그게 제대로 된 저작권 계약이다.

하지만 한국은 일단 한 번 계약을 하면 모든 권리를 영구적으로 양도하는 것이 관행 아닌가?

양도의 개념 자체가 얼마나 말이 안 되나. 일본식으로 말하자면 매절이다. 하나 웃긴 사례를 들어보면, 7년 전에 어떤 공모전에서 당선된 작품을 한 영화사가 500만원을 주고 사서 7년 동안 영화를 안 찍었다. 그런데 다른 데 가서 영화를 만들려고 하니, 우리건데 어딜 가져가, 했다는 거다. 시나리오에 대한 한국 제작자들의 마인드는 일제시대만도 못한 것 같다. 이런 식의 계약이 이루어지고 있으니 어디 작가가 작품을 열심히 쓸 의욕이 생기겠나.

작가가 아닌 타이피스트만 양산하는 시나리오계의 현주소

그렇다면 그런 부당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무엇인가?

표준 계약서를 만드는 것이 가장 좋다. 하지만 우리가 표준계약서를 발표한다고 해서 그것이 지켜질지는 의문이다. 지금 한국영화 제작자들은 콘텐츠가 더 좋다 하더라도 비싼 시나리오는 사지 않겠다는 생각이 너무나 확고하다. 값싸고 쉽게 굴릴 수 있는 신인을 데려다 한 2천만원 주고 1년 굴리면 괜찮은 게 나오지 않을까, 하는 식의 생각이 팽배해 있다. 시나리오작가를 제작자나 프로듀서가 생각하는 아이템을 열심히 타이핑하는 타이피스트 정도로 생각하는 거다. 그러면서도 항상 좋은 시나리오가 없다고 그러는데, 바로 잡자면 헐값으로 말 잘 듣는 애들을 샀는데 왜 후졌는지 모르겠어, 라고 이야기를 해야 한다. 그런 구조 안에서 재능있고 경험있는 작가들도 생활이 힘들기 때문에 오리지널 시나리오에 집중할 여유가 없고,  자연히 한국영화의 퀄리티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지금 촬영에 들어가는 시나리오들을 읽어보면 기도 안 차는, 정말 발가락으로 써도 될 만한 것들이 많다. 작가는 거의 없고, 타이피스트만 있다. 한국 영화계의 굉장히 멍청한 제 살 깎아먹기라고 생각한다.

제작자쪽과 본격적인 협상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가?

우리는 단체협약을 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만약 한다면 한국영화제작가협회와 해야 하는데 제협의 현재 대표인 차승재씨가 우리는 당신네 조합과 단체협약을 할 생각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그 말이 법률적으로 또 문제가 없는 것이, 제협은 우리와 단체협상을 해야 할 의무가 없다. 지난해 제협이 영화산업노조와 단체협약을 했는데, 그건 영화산업노조가 노동조합으로 민주노총 산하의 단체라 노사관계가 성립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나리오작가조합은 노조, 즉 유니온(union)이 아니라 길드(guild)다. 물론 지금이라도 우리를 노동자로 규정하면 영화산업노조 분과로 들어갈 수 있지만, 그렇게 되면 사실상 저작권을 포기해야 한다는 게 문제다. 현대자동차노조의 노동자가 쏘나타가 많이 팔린다고 해서 지분을 더 달라고 할 수 없듯이 노동자에게는 법적으로 저작권이 없다. 표준계약서를 만들고자 해도 제협에서 의지가 없고 시나리오작가조합이 파워게임에서 밀리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시간이 걸리는 문제다.

미국작가조합도 시작부터 지금과 같은 파워를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 않나?

미국작가조합이 그런 파워를 갖게 된 것은 시나리오작가뿐 아니라 방송, 드라마, 라디오작가까지 포괄하는 큰 조직을 만들어서 어느 한 쪽에서 불이익을 당하면 동조 파업을 하는 시스템을 구축했기 때문이다. 이건 일종의 프러포즈인데, 한국시나리오작가조합이 아직 미약한 조합이지만 앞으로 점점 잘될 거라 믿고, 방송작가, 라디오 작가 등이 모두 함께 하는 연합체를 만들고 싶다. 작가조합은 그런 면에서 굉장히 좋은 모델이고, 그렇게 따라갈 생각이다. 그러려면 해야 할 일이 많다.

공청회, 기관지 등을 통해 작가들의 목소리를 공식적으로 낼 계획

향후 어떤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갈 계획인가?

얼마 전 영진위와 조합 사업에 대해 브리핑을 하고 결정된 사항인데, 일단 최초로 취할 단계는 시나리오 작가의 표준계약서와 저작권에 대한 조합의 입장을 밝히는 거다. 한국 시나리오작가들의 계약서 작성 실태 조사, 해외 시나리오작가들의 계약서 연구를 지금 시작했다. 그 결과가 4~5월 즈음 영진위를 통해 책으로 나올 거고, 명확한 수치를 바탕으로 5~6월 즈음 공청회를 열 생각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형식의 공청회인가?

투자자, 제작자, 변호사를 불러서 지금 한국에서 이렇게 계약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해외 사례와 비교해보면 무슨 문제가 있고, 이게 한국 영화산업 발전에 도움이 되는 계약서인지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의견을 수렴할 거다. 또 지금 부당하게 크레딧을 강탈당하거나 분할당한 사례들을 찾고 있는데, 공청회 때 그 모든 것을 실명으로 발표할 생각이다. 그리고 가을 즈음부터 기관지를 발간해서 작가들의 권익과 관련된 객관적 자료들, 또 조합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피해를 당하고 있는 작가 지망생들의 민원 등을 받아서 우리의 목소리를 공식적으로 내는 것이 올해 조합의 가장 큰 사업목표다. 사실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미국에서는 40,50년대에 이루어진 것들이다. 시간은 많이 걸리겠지만, 미국에서 30년 걸린 일을 우리는 훨씬 빨리 해낼 수 있으리라 본다. 다만 시작이 늦었을 뿐이다.

글 최하나 기자

[씨네21] 2008년 1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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