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심산 등록일: 2012-12-21 16:3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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雲去雲來山不爭
심산스쿨이 송구영신의 인사말씀 올립니다

벌써 한 해가 저물고 있습니다. 저 개인에게도, 심산스쿨에게도, 그리고 우리 국민 모두에게도 ‘언제나 그랬듯이’ 다사다난한 한 해였습니다. 작년 이맘 때쯤인가요? 작년은 제가 전각을 시작한 해여서 불현듯 제가 판 전각작품으로 인사말씀을 올렸습니다. 一山行盡一山靑(일산행진일산청), “한 산을 다 걸으니 또 한 산이 푸르네”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래서 올해도 무언가 그럴듯한 한시 한 구절을 올려야지...하고 생각해봤는데 영 좋은 구절이 떠오르질 않았습니다(흠 조계종정이 신년법어를 고를 때 이런 심정일까요?ㅋ). 고심 끝에 고른 시귀는 이런 것입니다.

花開花謝春何管 화개화사춘하관
雲去雲來山不爭 운거운래산부쟁

꽃이 피든 꽃이 지든 봄이 어찌 상관하며
구름이 가든 구름이 오든 산은 다투지 않네

지난 해에 이어 역시 제가 좋아하는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의 작품들 중에서 골랐습니다. 그의 작품 중 [乍晴乍雨(사청사우)]라는 제목의 시가 있는데, 이 제목이 뜻하는 바는 “잠깐 개었다가 잠깐 비왔다가”라는 뜻입니다. 이 시의 첫귀절을 우리말로 풀어 쓰면 이렇습니다. “잠깐 개었다가 잠깐 비오고, 잠깐 비 왔다가 다시 잠깐 개이네. 하늘의 움직임도 이러할진대 인간세상의 일들이야 오죽하랴.” 한 마디로 세태의 부박함에 너무 상처를 입거나 탄식하지 말자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꽃이 핀다고 좋아할 필요도 없고 꽃이 진다고 슬퍼할 필요도 없습니다. 구름이 간다고 안타까워할 이유도 없고 구름이 온다고 기뻐할 이유도 없습니다. 봄은 그저 꽃이 피고 지는 것을 바라볼 뿐이고, 산 역시 그저 구름이 가고 오는 것을 바라볼 뿐이지요. 날씨의 변화 혹은 세태의 변화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말고 의연하게 제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겁니다.

2012년이 가고 2013년이 옵니다. 그들은 왔다 가는 것이고 우리는 여전히 여기에 있습니다. 이명박의 시대가 가니 이제 박근혜의 시대가 온다고 하는군요? 그래도 우리는 여전히 ‘지금 이곳’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너무 슬퍼하지 맙시다. 너무 흔들리지 맙시다. 그저 언제나 듬직하게 그곳에 서 있는 저 산처럼 우리도 의연하게 우리의 삶을 살아가면 그뿐입니다. 올해 진 꽃도 내년 봄이 되면 다시 피어날 것입니다. 지금은 떠나가는 저 구름도 때가 되면 다시 돌아올 것입니다.

심산스쿨을 찾아주시는 모든 분들께 제가 판 전각작품 하나와 이 짧은 글로 송구영신의 인사말씀을 가름하려 합니다. 성탄연휴 즐겁게 보내십시오. 가까운 사람들에게 위로와 사랑의 말씀을 건네십시오. 저물어가는 한 해를 잘 마무리하시고, 다가오는 새해를 차분하고 의연하게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꽃이 피든 꽃이 지든 봄은 상관하지 않아도 됩니다. 구름이 가든 구름이 오든 산은 다툴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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