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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시 배반동 217번지, 낭산자락 신문왕릉과 효공왕릉의 사이에 대나무와 솔밭으로 둘러싸인 한옥고택이 한 채 있다. 신라 천년의 고도 경주를 사랑하고 그래서 15년 전부터 경주에 터를 잡고 사는 이재호선생의 집이다. 당호는 수오재(守吾齋)이다.
‘수오재’라는 당호는 이재호선생이 정약용이 장기에 귀양 와서 뼈저리게 이 뜻을 기록해 놓은 것을 읽고 가슴 뭉클한 감동을 받아 ‘자신의 몸과 마음을 지키고 삼가자’는 의미로 빌려왔다고 한다.
[img2] 정약용의 「여유당전서」시문집 권13 기(記)에서(원제는 수오재기)
"대체적으로 천하의 물건은 모두 지킬 만한 것이 없고, 오직 마음만은 지켜야 한다. 나의 밭을 지고 도망갈 자가 있겠는가? 밭은 지킬 만한 것이 못된다. 내 집을 이고 달아날 자가 있겠는가? 집은 지킬 만한 것이 못된다. 나의 원림(園林)에 있는 꽃나무, 과일 나무 등 여러 나무들을 뽑아갈 수 있겠는가? (중략)
유독 나의 큰 형님(정약현)만은 당신의 마음을 잃지 않고, ‘수오재’에 편안히 단정하게 앉아계시니, 어찌 본디부터 지킴이 있어 마음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이것이 큰 형님께서 당신의 집 이름을 그렇게 붙인 까닭인 것이다.”라고 하면서 결국 자신과 둘째형님(정약전)은 나(吾)를 잃어 귀양 왔다고 적고 있다.
[img3] 수오재는 경북 칠곡의 낡은 고택 한 채를 해체하여 경주로 옮겨와 다시 복원한 뒤로 개발위기로 사라질 마산의 황부자집을 해체 복원하고 다시 별채를 지어 지금은 독립된 세 채의 가옥에 9개의 방과 4개의 수세식 화장실을 갖춘 흙과 황토, 나무로 된 집이다.
너른 집 앞마당에는 앵두나무, 복숭아, 배나무, 엄나무가 심어져 있고 뒤로는 대나무와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img4] 이 집 뒤편 솔밭사이와 100m쯤 떨어진 효공왕릉 서쪽 솔밭 사이로 넘어가는 낭만적인 저녁노을은 경주에서도 손꼽히는 정취이다.
저녁에는 넓은 온돌방에 같이 모여 한잔 술에 전통문화이야기를 나누거나 대금연주도 들을 수 있고 근처 왕릉 주변의 솔밭이나 야외에서 달빛기행도 할 수 있다.
식사를 별도로 제공하지는 않지만 숙박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무공해 쑥국, 된장국, 부추전, 호박전, 나물, 김치 등 도시에서는 맛 볼 수 없는 고향의 맛을 지닌 음식을 대청마루에 차려놓고 뷔페식으로 제공한다. 저녁에 날이 좋으면 마당에서 불을 피워 바비큐파티도 가능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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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람과 술한잔 기울이면 그것..참 좋은데~ㅋㅋ 아쉽습니다 ㅋ 요번에 못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