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푸른 하늘 밝은 달 아래 곰곰히 생각하니
세상 만사가 춘몽 중에 또 다시 꿈 같도다.
산다는 건 녹록치 않다.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죽이고, 빼앗고, 미워하고, 아파해야 하는 것이 인간의 삶이다. 진창속에서 태어나,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더 더러워지고 때가 묻는다.
진창속에서의 미천한 생을 저주하다가도, 결국 더러움은 자신의 내부에서도 움트고 있었다는, 안과 밖을 뒤집은들 다르지 않다는 깨달음 후엔 자조적인 씁쓸함과 태생의 두려움만 남을 뿐이다. 생각해 보면, 천지만물중 인간의 삶보다 공허한 것이 없고, 모든 검댕이중 내 자신보다 더러운 것이 없다.
사람들이여, 너는 말하기는 커녕 짐작도 못하리라
네가 아는 것은 파괴된 우상더미뿐
그곳엔 해가 쪼여대고
죽은 나무에는 쉼터도 없고
귀뚜라미도 위안을 주지 않고
메마른 돌엔 물소리도 없느니라.
‘술을 퍼 마신다. 순간적인 쾌락과 자극에 빠진다. 잊는다. 인간 사회의 습성에 굴복하고 무감각하게 산다. 모든 타자를 원망한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이게 우리네 삶의 방식이다.
이 세상과 어떻게 타협할 것인가? 이 고된 삶을 어떻게 위로할 것인가? 존재의 정처없는 방황을 어떻게 종식시킬 것인가?
어떤 사람은 인간관계에서 情을 주고받으며 만족하고, 어떤 사람은 한량없는 박애로 苦益苦의 도돌이표를 끊고, 어떤 사람은 종교에 귀의하고, 어떤 사람은 길을 떠나고......
또 어떤 사람은 산에 오른다......
인수봉의 장엄한 풍채가 드러났다. 안개에 휩쌓인 그 웅장한 자태는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넘어, 찬사를 불러 일으켰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인수봉을 오르는 길은 60여개, 모두 60년대에 닦아진 것이다. 우리가 위치한 영봉에는 인수봉을 오르며 유명을 달리한 사람들의 비석과 기념물들이 이 구석, 저 구석에 즐비했다.
60년대면, 한국전쟁 이후 한창 산업화의 붐이 불 때이며, 보릿고개에 사람들이 굶주릴 때이며, 독재정권의 탄압에 신음할 때이다. 그런 때에 인수봉 60여개의 루트가 개척되었다.
제대로 된 등산장비가 있었을 리 없다. 없다면 빨랫줄이라도 가지고 올랐을 꺼다. 군용점퍼를 입고 미제 씨레이션을 꾸역꾸역 먹으며 올랐을 꺼다. 집을 나설 때, 가난에 찌든 어머니의 한숨 소리를 뒤로 했을 것이며, 누군가는 운동한다는 선배에게 욕과 발길질을 당했을 지도 모른다. 오르는 순간순간 죽음의 공포를 맛보았을 터이고, 온몸 여기저기엔 그동안의 흉터들이 아로새겨졌을 터이다.
그러나 인수봉은 거대한 울림으로 그를 불렀다. 그는 불나방이 불에 자신을 던지 듯, 가시나무새가 가시속으로 뛰어들 듯 인수봉에 달라 붙었다. 다리에 쥐가 나고, 공포에 몸이 사시나무 떨듯 떨려오고, 손은 곱고, 발의 통증이 심하다 못해 감각이 무뎌졌을 때, 그는 자신의 무력함에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는, ‘존재란 무엇인가?’ 라는 철학적 질문을 자신에게 던진 적이 없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저 산을 오르며 깨달았을 것이다. 모든 허상을 압도하는 거대한 존재자 앞에서 한 없이 작아지고 무력해지는 자신을 바라보며 알게 모르게 느꼈을 것이다.
인간이란 자연의 일부분이며 한갓 미물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인간사 애증과 미련이 얼마나 보잘것 없고 쓸모없는 집착인가를 쓴웃음 한 번으로 녹여내고, 자신의 작음에 분노하기 보단,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 진다. 영겁의 자연 앞에서 인간의 유한함은 비로소 가치를 지니고, 거대한 존재자 앞에서 미물은 순복을 한다. 태생의 두려움은 가시고 마음엔 평화가 깃든다. 있을 자리를 찾지 못해 갈등하고 방황하던 하나의 존재가 제 자리에 온전히 가 박힌다. 자연이 된다. 그리고, 그는 다시 산에 오른다.
모두들 거친 바위를 어떻게든 아등바등 올라갔고, 가벼운 길에서는 씩씩하게 걸어 나갔다. 뒤쳐진 사람이 있으면 남아서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고, 오르기 힘들어 하는 사람이 있으면 손 잡아 이끌어 주는 사람이 있었다. 가는 곳마다 산수화가 펼쳐쳐 있었다. 산 정상마다 펼쳐진 안개가 영험한 기운을 더했다.
나무들과 오묘한 조화를 이룬 멋들어진 바위들과 숨이 턱 막히도록 절정의 아름다움을 지닌 봉우리들 속에 숨어있는 너럭바위 여기저기 털퍼덕 주저앉아, 사과도 먹고, 오렌지도 먹고 와인도 마시며 담소를 나누었다.
처음가는 길, 처음보는 풍경 속에서 땀이 나도록 걸었고 자주 쉬었고, 영봉 준턱에서 밥을 먹었다. 물기를 가득 머금은 시원한 바람이 땀을 식혀 주었다. 맑은 공기와 모여드는 꿀벌들 속에서 와인을 마셨다. 고대하던 노적봉에 오르지 못한다는 아쉬움에 와인을 줄기차게 들이켰다.
어스름 해질녘에 앞서거니 뒷서거니 한적한적 하산을 했다. 술기운에 흙내음이 강렬하게 코를 자극했고, 나무, 돌, 하나하나가 정겨웠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담소화락에 엄벙덤벙 주색잡기에 침몰하여
세상 만사를 잊었으면 희망이 족할까
이 풍진 세상을 만나, 우린 산에 올랐다. 그리고 즐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