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조현옥 등록일: 2007-10-15 01:31:51 IP ADRESS: *.62.8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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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동안을 ‘하루 날새고 다음날 5시간쯤 자고’를 반복했습니다. 산행전날 마지막 과외가 인란 언니의 맏딸인 고3 함상이었습니다. 함상이가 굉장히 웃긴 에피소드가 있다고 하더군요. 산행날이 인란언니 생신인데, 제가 인란언니에게 산쌤 미역국을 끓여오라고 했다는 겁니다. 순간 가뜩찮이 뿌옇던 머릿속이 하얗게 바랬습니다. ‘실례도 이런 실례가 있나!’

그 순간 제가 뭘 할 수 있었겠습니까? 원래 준비하려 했던 샐러드를 무쌈으로 변경하고 허겁지겁 장을 봐가지고 집에 가니, 이미 11시 반. 너무나 피곤해서 30분여를 커피마시며 정신을 차리곤 무쌈을 준비하니 이미 2시가 넘었습니다. 그런데도 계속 마음은 즐겁기 그지 없습니다.

산행동무들이 얼마나 정겹게 느껴지는가 이미 서술한 바 있습니다. 산이 선생님과 인란 언니는 우리에게 또 얼마나 고마운 사람들 입니까!^0^ 그래서 무쌈을 준비하는 시간들이 피곤하면서도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요리도 못하고 돈도 없고, 기운도 없어서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하는 형편이었다면 얼마나 비참했겠습니까? 게다가 함상이가 제 시간에 가르쳐 줬으니 망정이지, 수퍼가 문 닫을 시간에 가르쳐 줬다면 정말 암담했을 껍니다.

아침엔 알람을 맞춰놓은 대로 제 시간에 이를 악물고 일어났는데도 계속 뻘 짓의 연속이었습니다. 가뜩이나 뻘짓 인생인데, 잠을 못 자면 두뇌가 그나마 10%도 활성화되지 않는 ‘아메바’가 됩니다. 때문에 월요일 아침시간에 버스를 타고 종로에 가려는 미련한 짓을 했고 결과적으로 20분을 늦어버렸습니다. ㅡㅡ; 중간에 택시로 바꿔 탔더니 오히려 그 때부턴 버스가 더 빠른 겁니다. ‘참을 인, 세 번이면 살인도 면한다!’ 를 마음속으로 계속 반복하며 버텼습니다.

당연히 선생님께 목 한 번 졸린후, 경오 오빠의 궁시렁 세례를 원동력 삼아 산에 올랐습니다. 길을 잘못 든 숙이 언니가 계속 마음에 걸렸지만, 눈 앞에 펼쳐진 장관에 둔한 머리는 곧 기억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지송...TT)

가다가 민둥 눈썹 성근 형님을 뵈었지만, 얼굴이 커서 좀 신기했을 뿐 너무나 멋있는 산의 굽이굽이에 넋이 팔려 별로 한 눈 팔 형편이 못 되었습니다.^^ 바위에 신나게 오르는 사람들을 보며 5.10 전도사로서의 보람으로 마음이 뿌듯했습니다.

그리고... 아! 인수봉!

인수봉과 숨은벽이 나타난 초입의 경관은 숨이 턱 막히는 아름다움과 장엄함을 품고 있었습니다. 바위와 나무, 하늘의 황금 비율. 비온 뒤 남아있는 물기에 반사되는 찬란한 빛들. 하늘과 땅, 그 경계의 관장자인듯 신비롭고 도도하게 버티고 선 인수봉, 인디언 전사의 흉터처럼 바위에 아로새겨진 부감들. 간간히 보이는 시절을 좆는 단풍들... 갑자기 몸이 마비된 듯 그 자리에서 움직이기가 싫을 지경이었습니다.

인수봉 북벽이 지닌 극한의 아름다움을 보고 산이 선생님께서는 예의하시는 감탄사를 연발하셨습니다.

“차~암! 좆같다!”

선생님께서는 왜 멋진 바위만 보면 이렇게 욕을 해 대시는지... 너무 아름다워서 욕밖에 안 나오시나 봅니다. 하지만 불초 제자, 글 쓰시는 스승에게 욕 말고 다른 형용을 생각해 내시길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그날 보았던 인수봉, 숨은벽, 노적봉에서의 장관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지금도 눈 앞에 아른거립니다. 아니, 갔다온 뒤 계속 순간순간 무턱대고 떠 오릅니다. 그 때문에 그 충만했던 행복함이 아직도 가시질 않습니다.^^

그 때 또 사람들은 왜 그리 예뻐 보이던지... 그저 바라만 봐도 다 제가 키운 자식인냥(!) 자랑스럽고 사랑스럽습니다.^^  사람과 산을 바라보며 벅찬 맘으로 미소 짓고 있다 어느 찰나 느낀 겁니다. 그 날 산에는 숨 막히는 장관과 이 사람들만 존재했습니다. 제가 없었습니다. 마치 우주속을 유영하는 듯, 제 몸뚱아리의 존재감도 사라졌고, 신기한 건 제 자아도 사라져 버렸습니다. 제 자신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떠오르지도 느껴지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산이 마냥 좋고, 눈 앞의 사람들이 마냥 좋았습니다. 그 상태 그대로 에코가 되어 날아다니는 기분이었습니다.

어느 노래 가사처럼 ‘내속엔 내가 너무도 많았구나.’ 반성이 됩니다. '버린다고 버렸는데도, 아직도 너무나 많았구나...'   뒷목을 빳빳하게 하는 놈도, 울컥 화가 치밀게 하는 놈도, 마음을 우울하게 하는 놈도, 참을 인 세 번을 그리게 한 놈도, 살이 뒤룩뒤룩 찌고 뻥튀기처럼 부풀어 버린 ‘나’란 놈입니다. 하지만 산에서는 이 과대자아가 제 모습을 찾아 사그라들고 드디어 남과 자연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로운 공간이 생깁니다. 그래서 산에서 만난 인연들이 그토록 정겹고, 발은 땅에 대고 있어도 마음은 산의 능선들을 가볍게 날아다니며 그토록 자유로운가 봅니다. 마음에는 온전하고 충만한 행복감외엔 ‘나’라는 망상이 들어설 자리가 없습니다. 오히려 자유로와지니 그동안 얼마나 자아에 종속되어 있었는가가 느껴집니다.

다시 가고 싶습니다...

산에서 도시로 첫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산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슴이 먹먹해 집니다.

툭하면 산행사진을 보고, 또 보며 그리움을 달랩니다.

다음 산행공지가 떴을 땐 잘 때조차 미소가 떠오릅니다.

산행동무를 보면 다시 산속에 있는 듯 기쁨이 일어납니다.

우리 빨리 다시 갑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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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산

2007.10.15 01:36
*.237.80.27
재밌긴 하지만...이건 쫌 오바야....^^

조현옥

2007.10.15 01:42
*.62.89.4
선생님! 지금 우선 올려놓고 수정중인디! ㅋㅋ
너무 빠르세요...하하.

임희대

2007.10.15 01:43
*.243.37.235
그 기품이란게 도대체 뭔겨?
츄리닝 차림에 백수 그 자체였는데...
넌 희한한 걸 보는 눈이 있는가 보다^^

조현옥

2007.10.15 01:56
*.62.89.4
오빠 수염과 호리호리한 몸매가 산에가니 갑자기 기품있게 보였걸랑...ㅋㅋㅋ
(원랜 수염 기르는거 싫어해...^^)

글고, 인란언니. 함상이 뭐라하지 마세요. 자기가 못 챙겨주는게 너무나 죄송해서 저한테라도 말 했대요.
비밀 지키려 했는데, 언니가 그냥 알아내 버리시네. ㅡ_ㅡ

조인란

2007.10.15 10:40
*.173.137.173
음...산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애가 좀 조증인 것 같긴 해요.ㅋ
애가 옥이한테 호올딱 빠져있던데 대체 애한테 뭔 짓을 한 거야?!! (줘팼을 거야 분명!)
어째 딸 하나 날로 뺏긴 것 같은 느낌이...ㅎ
그냥 갑자기 궁금해져서 지피지기 뒤졌다는 건 좀 엉성하자나.

산은 정말...우리 모두한테 치유의 공간이야. (산샘이 진정 오해는 마셔야 할 텐데^;)

조현옥

2007.10.15 07:44
*.62.89.4
허걱! 줘 팬 거 들켰당! ㅡ_ㅡ

산에 다니면서 조증인거 마자요! ^0^
올려놓고 이것저것 수정해서 위의 댓글들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지만 (희대오빠 '기품' 빼서 미안~~),
쓸 때와 올려놓고 평가할 때는 다른 시각으로 변하고 말아요. ^^

한숙

2007.10.15 09:09
*.170.161.203
자식 넷 줄줄이 낳아 키울 적에 산은 쳐다보기도 힘든 때 ,유홍준씨 문화유산 답사기 보면서 계곡에 발만 담그고도 이리 맛깔나게 풀어놓으니 이 양반 산을 좀 오르거나 히말라야 가면 그야말로 난리나겠다 생각했던 적이 있었어.

현옥이 글 보면서 그 비슷한 생각이 드네.
산에 조금 더 다니면 현옥이 폐인되겠어. 아님 벙어리가 되던지. 그 환장할 속을 어디다 다 풀어놓겠어.
그러니 남들이 보면 실성한 것처럼 보여지지.

지금도 조증인데 , 산에 가지 마랜다고 안 갈 현옥이도 아니고 진짜 큰 일 나부렀네.
profile

윤석홍

2007.10.15 15:45
*.229.145.36
이 단계면 산행급수 치면 어디쯤 되는지 무척 궁금하네. 이제 산에 애인 숨겨 놓았다고 봐야쥐. 그 정신 오래도록 유지하시길, 건강에 좋으니까.ㅋㅋ

이성경

2007.10.16 00:40
*.254.25.82
그날 현옥 씨의 무쌈 정말 맛있게 먹었어요.
내가 워낙 요리를 못하는지라(요리할 생각도 없고 해 본 적도 없어서) 먹으면서 계속 감탄했다는 거 아녜요.
참말로 부러운 솜씨였어요.*^^

조현옥

2007.10.16 01:25
*.62.89.4
숙이언니, 그런 폐인이라면... 버~얼써 실성했으니 실성 선배로서 잘 붙잡아 현실에 부착시켜 주세요...^^
석홍 큰 형님, 이 샘솟는 에너지가 정말 건강에 좋긴 하나봐요. 잠만 못 자면 빌빌대는 체질인데, 산행이 하나도
힘들지 않더라구요.ㅋㅋㅋ
성경언니, 요리는 누구나 맘만 먹으면 해요. 언니에겐 기회가 없었을 뿐이에요! ^^

윤혜자

2007.10.16 02:23
*.5.202.249
청산에 살든가 말든가 그것은 그대 맘대로 하시고
SM총무 열심히 해주고 선행해 주신다면 아무 불만없습니다.^^

조현옥

2007.10.16 02:56
*.62.89.4
혜자언니, 말이 쎄서 순간 심약한 마음에 (??....!!) 찬바람이 들었어요~~! ㅋㅋㅋ
글고, 에공~~ 열심히 하겄슝~~^^

조인란

2007.10.16 03:06
*.90.53.161
그러게...나두 옥이가 청산별곡 부르며 머루 다래 따먹는 재미에 총무직 그만둘까 그것이 걱정이야.

임종원

2007.10.16 10:53
*.232.145.246
청산 별곡 부르며 머루랑 다래랑 먹고...그러다 신선되거나 신들린 사람 많다든디...神仙화 (?)계획은 수 십년 뒤에 하시고 현재는 형님들의 요청에 따르삼...

신월명

2007.10.16 22:59
*.53.184.45
날짜야, 날짜야 빨리 가라..제발^^

조현옥

2007.10.16 23:35
*.62.89.4
"너는 신선 세계에 잘못 들어가 그들의 놀이를 구경하였던 나무꾼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지?
그가 옛날 살던 곳에 돌아왔을 때 도끼자루가 썩은 것을 발견했다는 거야.
이 시간없는 신선의 놀음은 지상의 인간에게는 너무나 오래 계속된 것이지.
신선은 성급하게 놀지를 않는다." [압록강은 흐른다]
--- 이런 마음자리를 산에서 배워야지요...^^ 현실을 떠나다니요...^^

조인란

2007.10.16 23:39
*.115.224.244
그렇게 빌다가 경주 이미 다녀온 날 된다. 월며엉.

조현옥

2007.10.16 23:41
*.62.89.4
우하하하 ^0^

신월명

2007.10.17 00:27
*.53.184.45
나는 산에 갔어도 현옥이가 본 걸 못보고,
나는 압록강은 흐른다는 읽었어도 저 구절이 기억안나고,

에공 눈뜬 장님..
비느라고 정신 없어도 델구 가요. 성님^^
profile

이진구

2007.10.18 00:28
*.121.48.217
음....뭐랄까...좀 느끼한 걸...^_*

조현옥

2007.10.18 02:38
*.62.89.4
오빠, 단풍이 이미 시절을 좆아 알록달록이네...^^
오빠, 사람이 푸르를 수는 없어도, 단풍은 아닌데... ^^

고권록

2007.10.21 10:02
*.63.101.84
초고가 궁금하네...

조현옥

2007.10.21 17:21
*.62.89.4
초고엔 산쌤과 인란언니에 대한 찬사와 함께 다른 사람들에 대한 느끼한 애정이
마구마구 오바스럽게 쏟아져 넘쳐요.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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