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윤혜자 등록일: 2008-01-12 23:15:07 IP ADRESS: *.88.163.234

댓글

12

조회 수

1190
나도 영희씨 처럼 멋진 후기를 쓰고 싶지만 그런 능력이 없으니
제가 잘하는 팩트만 쓰겠습니다.

2008년 1월11일 금요일.
2008년 한해 무사 산행과 건강함과 행복함을 위한 SM시산제가 열리는 날이다.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여니 밤새 눈이 내렸고, 그 눈은 쌓여 있었고, 눈은 그치지 않았다.
혹시나 산행일정에 변화가 있나하여 현옥에게 문자를 보냈으나 답이 없다.
서둘러 밥을 챙겨 집을 나선다.
눈내리는 날 등산복 차림의 나,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두 이상한 눈으로 바라본다.

정릉매표소에 만나기로 한 시간은 10시 30분.
10시 20분경 매표소에 도착하니, 대설주의보가 내려 입산 금지란다.
서둘러 입산금지임을 선생님께 알리려 전화를 드렸더니,
"이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라는 안내 메시지가 나온다. ㅎㅎ 번호를 잘못 알고 있던 것이다.
현옥에게 전화 걸어, 입산금지를 알리니 그래도 갈 것이라며 기다리란다.

북한산 정릉 탕방객 안내소에서 추위와 눈을 피하며 일행을 기다린다.
1시간 늦게 출발한다는 권록을 제외한 사람들이 모인 시간은 11시 즈음.
선생님은 정식 코스대신 안내소 왼쪽으로 난 길을 찾아 북한산으로 오르는 길을 탐색,
성불사 뒤로 난 길을 발견, 코스를 결정하셨고, 우린 오르기로 결정했다.
눈 내린 북한산, 누구도 밟지 않은 처녀의 길을 걸었다.

눈이 내렸지만 위험하진 않았다.
언제나 우릴 배려하시는 선생님은 비교적 쉬운 코스로 무리하지 않게 갈 것이라며
천천히 즐기며 산행을 하라고 당부하신다.

첫 휴식에서 우린 3병의 레드와인을 마셨다.
미영언니는 유리병에 든 와인의 무게가 부담스럽기도 하고 디켄팅 후 마시는 것이 좋다며
레드와인을 플라스틱 물통에 넣고, 우리가  빈티지를 궁금해 할까봐 그 플라스틱 통에 곱게 빈티지를 붙여오셨다. 흐흐흐흐 그 정성이라니..

우리보다 1시간 정도 늦게 출발한 권록.
역시 마라토너다. 첫 휴식 장소에서 우리를 따라잡았다.
이제 오늘 산행 멤버들이 다 모인 것이다.

다시 눈길을 걷는다.
사방으로 보이는 눈덮인 북한산은 한폭의 동양화요,흑백사진이다.

오후 1시 대성문에 도착,
이곳에서 시산제를 지내기로 했다.
대성문 누각으로 들어가 자리를 펴고,
리허설을 꼼꼼히 하고 시산제가 시작되었다.
눈내리는 풍경이 액자처럼 펼쳐진다.
선생님은 우리 한사람 한사람을 위한 기원을 해주셨다.
정말 행복한 산신제였다.

산신제 후엔 바람은 피했지만, 눈은 맞으며 식사를 했다.
역시 산에서 먹는 밥은 참으로 맛나다.
현옥이의 맛있는 된장국과
인란 언니의 삼색 나물은 거의 환상이었다.
눈을 먹는것인지 밥을 먹는 것인지 다소 헷갈렸으나
이구동성으로 '비맞으면 먹는것보다 100배는 낫다'며 즐거워했다.

식사 후 선생님의 코스를 정하셨다.
대동문, 위문을 거쳐 용암문으로 가서 도선사로 하산,
원석이네에서 하산주 일잔하기로 결정되었다.
산성을 끼고 걷는 산행은 참 평화롭다.
이 평화로운 길에 눈까지 내리니 모든 사람들의 표정이 천사처럼 투명하다.

이날 처음 산행에 참석한 막내 함상이도 잘 좇아온다.
어른들이 주는 와인도 조금씩 마시며 얼굴에선 웃음을 한번도 떼어놓지 않는다. 참 이쁘다.

오랫만에 산행길에 오른 성훈이는
그 무거운 돼지머리를 지고 다니느라 다리에 쥐가 났다.
시산제 후 친철한 권록씨는 성훈의 어깨를 가볍게  해주기위해 돼지머리를 짊어졌다.
참 넉넉한 마음이다.

걷고 쉬고 구경하고 걷기를 반복
용암문에 도착, 하산길을 맞이하려니 아쉽기 짝이 없다.

오후 5시 , 도선사에 도착했다.
하루 종일 산을 누비고 다녔음에도 도선사 주차장에서 원석이네까지 걷는 것은 참으로 곤욕이다.
정말 웃긴다. 산길이 더 힘들텐데 산에서 내려온 우리는 이 평지가 더 힘들다.

주차장에서 택시를 기다렸으나 눈이 많이 내리는 도선사에 오르는 사람이 없다. 택시도 없다.
택시 기다리기를 포기하고 원석이네까지 걷기로 결정했다.
100여미터 걸어내려왔을까? 중간에 먼저 하산한 성훈이가 봉고를 몰고 올라온다.
무거운 돼지머리를 지고, 다리에 쥐까지 났으면서도
먼저 내려가 우리를 위해 봉고를 몰고 올라온 그 마음씀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손이 크신 성훈이 어머님, 일단 뜨거운 미역국으로 속을 덥히란다.
과메기, 동태찌개, 오겹살 두루치기...늦은 점심에 배가 그리 고프지 않았는데도 잘도 들어간다.

식사 후 선생님과 영희씨는 신촌으로
인란언니와 마스코트 함상이는 집으로
그리고 남은 사람들은 성훈이의 놀이터 수유리로 향했다.
간만에 데낄라에 수다를 한상벌렸다.
그런데 시연씨는 어디로 갔나?

올한해 30억 대박 부자가 되실 경오씨가 시원하게 쏴 주신다. ^^
흐흐흐흐흐흐흐흐흐 정말정말정말 멋!지!다!
칵테일 바에서 나와 집에가는 택시를 기다리면서 또 한잔.
집에 가는 택시에 오르니 어느새 12일 01시가 지나고 있었다.
내가 진정 유부녀가 맞는지..왜 사람들이 나에게 유령부부라고 하는지 알만하다.

이렇게 SM 첫산행의 하루에 마침표를 찍었다.
내 평생 이 같이 아름다운 산행을 다시 할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인생의 목표를 수정하고
다시 시작한다고 생각하니
뭐든 술~~술~~풀리는 기분이었다.
profile

심산

2008.01.12 23:22
*.201.18.78
정직한 수정:
대동문, 위문을 거쳐 용암문으로 가서 도선사로 하산...이 아니라
보국문, 대동문, 시단봉 동장대, 옛북한산장(무인대피소), 용암문을 거쳐 도선사로 하산!^^

김영희

2008.01.12 23:23
*.109.59.48
데낄라까지 드신 분들이 '택시 기다리면서 한잔'하신 건 또 뭔 술인가 궁금.^^

윤혜자

2008.01.12 23:33
*.88.163.234
ㅋㅋ 맥주^^
쌤님,...전 기록한다고했는데 완전 엉터리예요..그래도 선생님께서 수정해주실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걱정은 안해요^^

최상식

2008.01.12 23:36
*.5.51.100
즐거운 산행 하셧네요,누나

조인란

2008.01.12 23:55
*.173.144.112
혜자야~내 기사도 '정직한 수정'해조.
함상이가 마스코트가 아니구 내가 함상이 마스코트야아.

윤혜자

2008.01.13 00:01
*.88.163.234
언니.....소망이 너무 크십니다.
그런 수정은 불가합니다.
그것을 정직한 수정이라 하시면 언론탄압이라 하겠습니다.^^

조현옥

2008.01.13 00:10
*.237.181.91
푸하하하.^0^
'눈을 먹는 것인지 밥을 먹는 것인지 헷갈렸다.'
'정말 웃긴다. 산이 더 힘들텐데 산에서 내려온 우리는 평지가 더 힘들다.'
profile

박민호

2008.01.13 01:11
*.121.142.226
어쩌면 제가 가지 않은 첫 산행부터 이렇게까지 약을 올리시는지요..ㅋ
얼렁 운동해서 최대한 빠른 시간안에 다시 합류하렵니다..ㅠㅠ
profile

이진구

2008.01.13 08:50
*.121.177.98
단 하루동안 눈의 나라에 초대됐다 온 기분이지요~~

조인란

2008.01.13 10:32
*.173.144.112
혜자야~건 소망이 아니라 사실야.
아, 넌 정말 우리집에 와 내가 어떻게 함상 양의 마스코트로 살고 있는지 봐야 해!!ㅋ

고권록

2008.01.13 11:00
*.117.47.29
군더더기 없는 산행 기사군... ^^

신월명

2008.01.13 15:06
*.255.177.4
난 데낄라 열잔도 넘게 먹고 병까지 났어요..헤헤...
그래도 좋아요..헤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3 칸첸중가트래킹4일차-바람소리~ + 3 최상식 2008-04-18 1484
52 칸첸중가트래킹3일차-버스타고 레츠고2 + 4 최상식 2008-04-16 1121
51 칸첸중가트래킹2일차-버스타고 레츠고1 + 4 최상식 2008-04-15 1174
50 칸첸중가트래킹1일차-서울을 떠나다 + 5 최상식 2008-04-14 1135
49 산에게 배우다 + 6 조현옥 2008-03-31 1100
48 산행은 발이 아니라 입으로 하는 것이다^^ + 22 윤혜자 2008-02-11 1288
47 당신들은 누구시기에 + 18 조현옥 2008-01-25 1301
46 다정도 병인냥하여 + 16 조현옥 2008-01-12 1187
» 정직한 2008년 첫산행 후기 + 12 윤혜자 2008-01-12 1190
44 겨울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가다 + 8 김영희 2008-01-12 1190
43 아주 오랫만에... + 18 심산 2008-01-11 1045
42 Don't think just do it! + 13 조현옥 2007-12-30 1149
41 조난.. 구조.. 그리고 따뜻한 된장국.. + 11 박민호 2007-12-29 1130
40 꽃 피는 동백섬: 미영언니에게 + 8 file 장영님 2007-12-04 1239
39 길을 걷다. + 12 조현옥 2007-11-25 1143
38 인란이 이모! 아이스크림 잘 먹었어요! + 29 file 장영님 2007-11-04 1571
37 아무래도 + 10 file 장영님 2007-10-30 988
36 일상모드로!! + 8 윤석홍 2007-10-29 925
35 으이구, 유쾌한 에스엠 같으니라구... + 11 file 장영님 2007-10-29 1130
34 맘급한 사람들을 위한 2007. 10.25~ 27 경주여행기 + 15 윤혜자 2007-10-27 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