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은 이 나이 되도록 외국 한 번 안 갔다 온 건 ‘결례’ 라고 했다. 하지만 보소~~! 나라고 안 가고 싶어서 안 갔겠는가?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 심장이 뛰어오르던 나날들을, 술 잔을 앞에 놓고 자신에게마저 보이고 싶지 않은 눈물을 삼키며 달래곤 했다.
여권을 만들 때부터 두근거리던 가슴은 KTX를 타러 서울역으로 갈 때에 극에 달했다. 약속시간을 잘못 알고 30분 일찍 가, 흥분했을 때의 버릇대로 서울역을 뺑뺑 맴을 돌았다. 남들은 자기 몸뚱이 만한 가방에 힐을 신고는 정신없이 맴돌아대는 저 여자에게 신문 한 장 들려주고 지하도로 보내버리고 싶었을 테지만 마음을 진정시키려면 이게 최고다. 머릿속에선 복습이 한창이다. ‘곤니찌와~ 아리가또~ 어? 만나서 반갑습니다가 뭐였지? 여기가 어디입니까가 뭐였지? 에라 모르겠다. 대충 바디 랭귀지로 해결하다가 잘 못 알아들으면 빠가야로! 외치고 사시미칼 들고 쫓아오면 넙죽 허리 굽히며 쓰미마셍~ 해야지!’
때마침 읽을 책도 없고 해서 주영 선배님과 둘러앉아 즐겁게 담소를 나눌 수 있게 됐다. 하여간 심산 선생님이나 주영 선배님이나 아는 것도 많고, 호기심도 많고 유머도 무궁무진한 사람들이라 같이 있으면 무료해 질 줄을 모른다.^^ 나중에 점차 깨닫게 되는 사실이지만 동행 했던 윤호 선생님은 더 하면 더 했지 정말 만만치 않게 time jumper (방금 날조한 단어.. ㅋㅋ )이시다.^^
한 시간 일찍 도착해서 자갈치 시장의 회와 맥주로 배를 채웠다. 은이나 홍은이나 다들 다이어트 중이라 젓가락을 깨작거리더니 매운탕 좀 퍼먹다 말고, 지숙씨나 명수 언니도 ‘일반 여자’의 한계량에 도달해 버려 나만 신났다. 그나마 붕어빵 얼굴을 한 제욱이랑 웅이 형님이 나와 장단을 맞춘다. 양 볼따구니가 귀여운 웅이는 나중에 갑판위에서 ‘마법의 성’을 허스키 보이스로 불러 갈채를 받는다.
배위에 오를 때 여권을 검사하는데, 여권 만들때의 공포가 다시 밀려온다. 헉! 혹시 여기서 자격미달이라고 쫓겨나면 우짜지? 그럼 그냥 짐들고 집에 가야 되나? 그러면 선생님께서 회비는 돌려 주실까? 주차 딱지를 두 개나 처리 안 했는데 그게 걸릴까? 아!! 부산 컴퓨터들이 다 같이 다운 되면 좋겠다!......TT
하지만 이런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정신 차려 보니 배 안이다. 가만히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똑똑한 게다. 독도를 먹겠다고 #랄하는 일본 사람들에게 나를 던져줌으로써 복수하면 된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다.ㅋㅋㅋ
배가 출발하기도 전부터 우린 면세점에서 사온 양주와 와인과 맥주를 까서 갑판을 점령해 버렸다. 멀미날까봐 걱정했더니 술이 약인가 보다. 마실수록 온몸이 마비되고, 정신이 멍~~한게 그렇게 좋은 약이 없다. 심산 교주님의 술 제조법 설교를 밑거름 삼아 다들 이 좋은 약을 들이킨다. 종교적 감흥에 들뜬 나는 평상시에 한 잔도 못 마시는 양주안에서 아예 수영을 해 버렸고, 홍은이는 한 술 더 떠 자신의 미래를 양조업자로 정해 버렸다.ㅡ_ㅡ
그러나 뒤끝이 없을 수 있는가? 다음날 숙소로 가는 내내 기차 화장실을 전날의 양주로 소독해 주어야만 했다.TT 역에서 간단한 식사를 하고 피콜로 여관에서 짐을 푼 후 아트리온이라는 건물로 가서 와인 상점을 방문했다. 심산 선생님외 나머지 분들이 이게 무슨 와인이고 저건 빈티지가 어떻고 하는 옆에서 나랑 양은이파(홍은과 심은)는 이 병이 더 예쁘네, 저 와인 잔이 더 귀엽네 심오한 난상토론을 벌였다.
드디어 일행과 갈라져서 양은이파와 나는 숙원하던 ‘쏘다니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커넬 센터에 가기로 하고 발걸음을 옮기는데 ‘민속의 거리’ 같이 생긴 곳이 있다. 신사용 각종 장식품과 일본 민속용품과 괴상하게도 파티 용품을 파는 재밌는 거리였다. 천천히 돌면서 매화향도 사고 사진도 찍어댄다. 여하튼 가게란 가게는 다 들쑤시고 다니자니 배가 출출하다. 출발 전부터 숙원했던 타코야끼와 오꼬노미야끼를 먹으려고 찾는데 아무리 뒤져도 없다. 차라리 한국에 가서 먹자고 포기해 버렸다. 그러다가 시간도 다가서 너무 멀어 보이는 커넬 센터고 뭐고 다 포기하고 이 거리에서 좀 더 놀기로 했다. 옆에 보이는 가판대에서 찹쌀 국화빵 같은 걸 사먹었는데 이름은 모르지만 무쟈게 맛있었다. 한 입 베어 물며 수다를 떠는데 비가 후두룩 내린다. 옆에 있는 건물로 앞도 제대로 못 보고 피해 비를 긋자니 은이가 외친다. “어? 여기가 커넬 센터 아니에요?” 그렇다. 거기가 커넬 센터였다.ㅡ_ㅡ 이렇게 짧은 거리를 지도에 여의도서 신촌만큼의 거리로 표시해 놓는 너네의 심보는 뭐냐? 뭣도 모르고 택시를 타서 기본요금 5500원을 내길 바라는 거냐? 그리고 민속의 거리도 또 택시타고 가보라는 거냐?
여행책자에서 소개된 대로 커넬센터에는 디자인 상을 휩쓴 無印地帶라는 곳이 있었다. 무려 두시간 가까이를 침을 질질 흘리며 이것저것 구경했다. 여기서 엄마와 동생줄 화장품도 사고 목 마사지기도 샀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한국에도 있는 상점이란다. 쇼핑하느니 산에 가는 걸 즐기는 내가, 그리고 학원과 학교만 오가는 양은이파가 우째 알겠노...ㅡ_ㅡ
약속시간에 맞춰 다시 역에 집합해서 횟집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는 와중에 은이가 자판기에 내가 찾던 ‘럭키 스트라이크’ 가 있다고 해서 어물쩡 대다가 양은이파와 산쌤과 함께 동행을 잃었다. 전화도 안되고 말도 안통하고 그야말로 첩첩산중이다. 나 때문인 것 같아 마음은 좌불안석이다. 사람들이 동행을 잃었으면 나와서 찾아줄 법도 한데 온데간데가 없다. 할 수 없이 모든 가게를 다 뒤지고 다니다가 빙고! 한 가게에서 주영 선배님의 특이한 신발을 발견하고는 합석할 수가 있었다.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다 맛있다고 하는데, 설탕과 간장으로 장난질 쳐 놓은 듯한 일본 음식은 내내 내 입맛에는 맛질 않았다. 대체 음식에 설탕을 넣는다는 자체가 나한테는 거의 범죄 행위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온통 탄수화물과 단백질 덩어리들이고 야채는 생색내듯 손톱만하게 준다. 평상시의 식습관과 완전 반대인 식단이다. 이들이 살이 안 찌는 이유는 지네도 못 먹을 음식을 만들어 놓고 다이어트하기 때문이 아닐까? 조국이 나를 일본에 보내줄 때에는 엄청나게 먹어대서 몸무게를 불린 다음 일본 열도를 비단 1cm라도 더 가라앉히고 오라는 특명을 내렸건만 이 미천한 중생, 그런 작은 임무마저 수행하기엔 모자람이 많았다...TT
그러나 이 날의 횟집 음식은 모든 포원을 해결해주듯 진미였다. 같은 회라도 일본 회는 왜 이렇게 입에서 살살 녹고 비린내는 커녕 신선한 풍미가 뿜어져 나오는지 모르겠다. 튀김옷도 바삭바삭하고 샐러드 소스도 느끼하지 않고 상큼하다. 전 날 무리한 가늠만 아니라면 와인도 실컷 즐겼을 텐데, 알코올 냄새만 맡아도 다시 화장실을 찾을 것 같아 꾹 참았다.
숙소에 다시 돌아와서 무인지대에서 산 소금을 욕조에 쏟아놓고 몸을 담그며 피로를 씻고 있는데 벌써 옆 방에선 다시금 와인잔치가 벌어졌다. 조금씩 깨작거리다가는 말고 카드판에서 딜링을 하다 새벽에서야 잠들어 세 시간 자고 일어나서 다시 ‘쏘다니기’를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은 와인 상점에도 가고 뭐도 하고 했는지 잘 모르겠다. 여하튼 양은이파와 나는 이틀 내내 눈뜨는 순간부터 자는 순간까지 밥먹을 때만 빼놓고 미친듯이 후쿠오카를 들쑤시고 다녔다. 백엔상점에도 갔고 커넬시티도 한 번 더 갔고 구시다 신사도 갔고 무슨 호텔 지하상점에도 갔고 그 밖에도 이름 모를 건물들에 다 발도장을 찍어댔다. 항상 집합 장소에 모였을 때는 마지막 한 방울의 힘마저 소진해 머리에 매미가 울어댈 지경까지 달해 있었다.
일본 여자들은 죄다 못 생겼고 다리는 다 휘었다는 건 정말 생판 거짓부렁이다. 하나같이 삐쩍 말랐고 눈은 좀 작지만 (엄청난 화장의 힘으로 이를 극복한다.) 코도 오똑하니 다리는 길고 늘씬늘씬하다. 이틀내내 뚱뚱하다 싶은 사람은 한 손으로 꼽을 정도로 밖에 못 봤다. 게다가 남자들은 다들 하나같이 텔레비전에서 뛰쳐 나온 사람들처럼 생겼다. 평상시 남자의 외모에 대한 특별한 감식안을 뽐내던 은이와 나는 ‘이 꽃밭에서 장렬히 전사하리라!’ 를 부르짖었고 홍은이는 계속 깔깔 웃어댔다. 상큼하고 깊은 눈, 아그리빠같은 코, 갸름한 얼굴, 다부진 입술, 작은 얼굴, 늘씬한 몸매(근육이 모지라긴 하다ㅡ_ㅡ)...,휴~~ 정말 키 작은 거 빼놓곤 흠 잡을 데라곤 없는 조각상들이 각처에서 쏟아져 나와 행진을 해 댄다. 다만 키가 다들 고만고만하게 작은데, 무엇보다 한국에 와서 며칠 만에 처음으로 시야가 탁 막힐 때 실감이 났다. 그래도 용서가 된다...ㅡ_ㅡ
다니다 보면 이들이 친절하고 깔끔해도 눈도 잘 안마주치고 선을 딱 긋고 행동하는 걸 느낄 수 있는데, 내가 먼저 생글생글 웃으면서 눈을 맞추면 나중엔 자신들도 따라한다. 원숭이의 나라인게다. 올 때 배 안에서 은이 가방을 뒤에서 낑낑거리며 밀고 있자니 아리따운 청년들이 후다닥 내려와서 솔선해서 홍은이 가방까지 죄다 들어준다. 말하자면 ‘사흘전에 봤다.’는 거다. 요컨대 이 사람들에겐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은 정말 천지차인게 아닌가 생각된다.
여행 최고의 헛지꺼리는 회전초밥집에서 였다. 양은이파와 나만 떨어져 초밥을 먹었는데 양은이가 메뉴판을 보더니 앞에 있는 터치 스크린을 누르면서 주문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가 보다 했는데 왠걸 시키지도 않은 메뉴가 두 세개 연달아 나오기도 하고 왠지 와사비 맛은 전혀 안 나서 할 수 없이 따로 갖추어 놓은 와사비를 연신 발라 먹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냥 돌아 가는 초밥을 슬쩍 갖다 먹으면 되고 터치 스크린은 와사비없는 초밥 특별 주문용이란다. 에효~~
이 날은 어제의 병마가 사라져 모처럼 근사한 와인들을 마구 즐길 수 있었다. 동네 수퍼에서 사, 집에서 혼자 홀짝 거리던 와인들과는 비교도 안되는 세계가 있다는 걸 절절히 깨달았다. 마시자마자 자몽 향기가 확 퍼지는 와인에서부터 중후한 향기와 살짝 신 맛이 일품인 어떤 와인, 어떤 와인들!! 뜳어도 얕지 않고, 시어도 독하지 않고, 같은 술이되 양주가 품어대는 역겨운 알코올 냄새가 각종 풍미와 어우러져 하나의 향기처럼 느껴지는 멋진 와인들이었다.
양은이는 이미 이틀동안 형제보다 더 진하게 친해져 있었다. 은이는 홍은이에게 ‘술과 남자 감식법’에 대해 사사했고, 홍은이는 은이를 'PSP'의 세계로 인도했다. 서로 게임을 하며 그 날 나를 대타시켜 산 맥주와 칵테일을 들이 붓는다. 녀석들, 다이어트에 알코올이 얼마나 무서운 적인지를 안다면 그렇게까지 마시진 못했으리라...ㅋㅋ 주영 선배님과 산이 선생님께선 말리기는 커녕 귀엽다고 박장대소하며 좋아하신다. 다만 이 말씀 한 마디뿐. “엄마한테는 말하지 마라~~” ㅡ_ㅡ
결단코 이 귀여운 것들과 함께이지 못했다면, 여행이 그렇데 즐겁진 못했으리라. 평상시 어른들은 커녕 아이들과 놀아도 애들이 먼저 뻗어버려 섭섭했던 체력인데다가 가만히 앉아 찻잔이나 홀짝거리고 쇼핑정도를 운동이라 생각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타입이라 우선 이들의 사춘기 체력이 못 내 고마웠다. 덧붙여 씩씩하되 건방지지 않고, 영리하되 교활하지 않으며, 생각은 있되 내숭은 없는 양은이와 계속 다니니 마음이 편하기 그지 없었다. 정말 좋은 짝꿍들이었다. 그러나 성훈이와 지숙씨가 불철주야 용의주도하게 일정을 챙기지 않았다면 이런 말들이 무슨 소용이었겠는가! 다같이 돈 내고 놀러와서 다시 남을 챙겨야 되는일이 엄청 짜증스러웠을 텐데, 게다가 손윗 사람들이 불편하시지나 않을까 내내 신경쓰이고 힘들었을 텐데 내색 한 번 없이 항상 씩씩하게 웃고 떠드는 그들에게 언제나 감사했음을 밝히고 싶다. 틈만나면 무거운 짐을 지고 은이와 홍은이 가방까지 챙겼던 한웅이 오빠와 전혀 생각지도 못한 구석까지 챙겨 주었던 명수 언니한테도 고맙다. 게다가 재기발랄한 글빨로 인해 항상 궁금했던 희경 언니를 만나니 기분이 좋았다.
다시 배에 오를때까지도 남자들은 와인을 또 땄다지만 삼일 내내 세 시간 이상을 자 본적이 없이 몸만 혹사시켰던 터러 나는 완전 뻗었다. 드디어 한국 땅에 도착하니 부산을 출발할 때 담배 피우며 담소를 나눴던 택시 기사 아저씨가 아는 척을 하신다.
“어이~! 아가씨! 이제 왔나보네~!”
“네~! 나흘전에 한국땅에서 쫓겨 났다가 방금 밀입국 했어요~^^”
역시 우리나라 땅이다. 비록 건물안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일본은 참 덥고 끈적하고 비는 잊을만하면 또 내리곤 했는데 부산은 시원한 바람이 불고 항구도시지만 습도도 낮아 상쾌하기 그지없다. 게다가 삼겹살과 된장국과 김치를 보니 완전 환장을 하겠다. 눈물이 날 지경이다. 맥주 한 방울 들어갈 자리까지 아까워 술은 보지도 않고 정신없이 먹어댔다.
돌아오는 기차안에서 곰곰이 생각했다. 평상시에도 난 우리나라를 사랑한다. 질곡많은 역사에서 잡초처럼 살아온 삶과 삶들에 숙연해지고, 목소리 크고 인심 좋고 술깨곤 후회하더라도 우선 취하면 다 내 친구인 우리네의 냄비근성마저 다정스럽다고 생각한다.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하니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 하는 유머도 감칠맛 난다. 더욱이 된장과 김치를 먹을 때마다 선조들에게 무한히 감사한다.
하지만 한 번 떠났다 오니 더욱 더 우리나라가 사랑스럽다. 김치도 입에 짝짝 붙고, 된장 냄새는 흡사 꽃냄새 같다. 다시 찾은 내방에 몸을 눕히자니 비로소 긴장이 풀리며 잠이 새록새록 든다. 일본에선 세 시간밖에 못 자는 상황에서도 남들이 내는 모든 소리를 다 들으며 잤는데, 옆에서 빵빵대는 찻길소리도 못듣고 단 잠을 잤다. 한 번 떠났다 다시 오니, 식상하게 다정하질 않고, 남다르게 친근하며 다정스럽다. 여행도 좋지만 여행 후 새로 찾은 이 편안함도 참 조~~~~옷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