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한국||김성훈||백윤식, 봉태규, 이혜영||110분||||이황림||거두절미하고 <애정결핍이 두 남자에게 미치는 영향>(이하 <애정결핍>)은 재미있는 영화다. 일부 장면이 여성 관객들에게 ‘불쾌감’이라는 감정을 심어줄 수 있지만 이 영화에는 단점보다는 새로운 면이 많다. 또 참신한 연출력이 돋보이고, 관객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힘이 있다. 단순한 코미디 영화라고 치부하기에는 완성도도 높고, 상업영화라고 무시하기에는 주제의식에 충실한 영화다.
데뷔 감독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보았기 때문에 일말의 불안감도 없다는 김성훈 감독. <애정결핍>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가장 많은 힘을 실어준 아내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는다. 이 길로 걷게 된 계기가 남들에 비해 거창하지는 않지만 그에게 영화감독은 운명적인 직업인 듯 보였다.
억지로 웃기는 코미디는 사양한다.
<애정결핍>은 지금까지 한국에서 만들어진 코미디 영화와는 같으면서도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애정결핍>을 자신의 데뷔작으로 삼기까지 김성훈의 코미디 예찬 뒤에는 나름의 ‘역사’가 있다. 밝히기가 쑥스럽다는 단편영화를 포함해서 그가 관여한 작품들에는 ‘코미디’라는 공통분모가 늘 따라다녔다.
대중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라면 드라마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드라마는 신경 쓰지 않고 스타일과 감각만 의존한 채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영화들의 종착지는 안 봐도 뻔하다. 신인 감독에게 흥행을 위한 안전 장치는 필수적이다. 수위의 정도가 지나치면 코미디가 오히려 불쾌해 질 수 있다는 것을 김성훈 감독은 잘 알고 있었다.
백윤식, 봉태규 주연의 <애정결핍>은 한국영화로는 다소 생소한 블랙 코미디라는 장르를 표방하고 있다. 김성훈 감독은 직접적인 웃음 대신, 관객에게 한 템포 생각할 수 있는 웃음을 맛보게 해준다. “현장에서 배우들에게 주문한 것이 있다면 '억지로 웃기지 말자'라는 거였어요. 설정은 과장되어 있을지언정 연기는 배우 분들이 그 동안 쌓아왔던 리얼리티 그대로 갔으면 했어요.”
<애정결핍>의 영화화 제의를 의뢰 받았을 때 김성훈 감독은 원작이 가지고 있는 느낌이 버리고 가고 싶지 않았다. “원작이 가지고 있는 재미를 영화적으로 펼쳐 놓는다는 게 쉽지 않았어요. 두 부자를 제외한 주변 캐릭터까지 애정을 불어넣다 보면 원작의 속도감이 죽을 것 같았거든요.”
관객들과 ‘숨은 그림 찾기’를 하다
<애정결핍>에는 두 가지 종류의 패러디가 나온다. 드러난 패러디와 드러나지 않은 패러디. 전자 쪽의 패러디는 쉽게 찾을 수 있지만, 후자 쪽의 패러디는 예리한 눈썰미를 가졌다고 자부하는 관객들도 찾기 어려울 만큼 꼭꼭 숨어있다. “시나리오를 쓸 때 패러디는 크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현장에서 배우들과 함께 이 장면을 어떻게 하면 더 풍성하게 만들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나온 아이디어들이 더 많아요. 시나리오에서 표현된 유치장 장면은 심심한 편이었어요. 그런데 그 장면의 촬영이 앞두고 <너는 내 운명>이라는 영화를 다시 봤는데 삽입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든 거예요.”
<애정결핍>에서 패러디 장면이 등장할 때 그는 그 신과 관련된 영화 자료를 삽입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가 그 장면을 패러디 하면서 스크린에 표현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도리이자 의리였다. 그는 <애정결핍>을 패러디 영화로 보는 관객들에게 섭섭함을 감추지 않으면서도, 그렇게 보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애정결핍>은 기존 한국장편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독특한 오프닝으로 관객들에게 새로운 재미를 선사한다. 백윤식과 똑같은 클레이 애니메이션의 캐릭터와 봉태규 목소리를 내는 모기, 파리 캐릭터들이 영화 오프닝을 장식하면서, 앞으로 펼쳐질 두 남자의 이야기에 대한 기대감을 증폭시킨다. “캐릭터에 대한 설명이 더 이상 필요 없을 정도로 강력하게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에 도입부를 애니메이션으로 장식하게 됐어요. 처음부터 클레이 애니메이션으로 하자고 마음 먹은 것은 아니고요. 비용 때문에 고민되는 면이 많았지만 그 업체 쪽에서 비교적 저렴하게 해주어 넣을 수 있게 되었어요.(웃음)”
처음 작품을 만드는 감독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적을 리 없다. 하지만 좀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은 감독의 욕심은 정해진 러닝타임과 어쩔 수 없이 타협을 해야 한다. 시간적인 압박 때문에 넣지 못한 장면들이 김성훈 감독에게 없을 리 없었다. “다 제 잘못이죠. 처음부터 철저하게 계산을 하고 찍었어야 하는데 그런 부분들에 대한 아쉬움은 있죠.”
두 부자에게 연민을 느꼈으면 좋겠다
김성훈 감독은 지금까지 그가 만든 작품들과는 다르게 진지한 사람이었다. 어쩌면 그것이 그가 만든 작품들을 마냥 코미디로 포장하지 않는 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인들이 부여한 ‘코미디에 남다른 재능을 가진 사람’이라는 칭호가 아직까지는 영 부담스럽다며 멋쩍은 미소를 지어 보일 때 그가 가슴 속에 품고 잇는 코미디에 대한 사랑이 읽혀졌다.
이제와서 하는 이야기지만 김성훈 감독이 <애정결핍>이라는 영화를 통해서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거창한 교훈 같은 것이 아니었다. 관객들이 두 부자에게 연민을 느끼고, 그들을 진심으로 이해해 주길 원했다. 그것이 인위적으로 보일지라도 부자의 마음이 고스란히 관객들에게 전달된다면 연출자의 입장에서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전은강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하면서 김성훈 감독이 일차적으로 고민했던 부분은 캐릭터였다. 활자 매체에서는 용서가 되었던 두 부자의 행동들이 영상 매체인 스크린에서도 같은 화학반응을 불러일으킬지 확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글에서는 두 부자가 벌이는 극악무도한 행위들이 다 용서가 됐어요. 그런데 그런 행동들이 영상으로 옮겼을 때 잘못하면 거부감이 생길 수 있고, 더 나아가서 패륜으로 보일 수 있었어요. 그러한 부분들을 최대한 그렇게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이 힘들었어요.”
현장에서 영화를 찍을 때 그가 가장 도드라지게 보는 부분은 배우의 에너지다. 그는 감독이라면 배우가 가지고 있는 에너지를 최대한 이끌어 낼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나리오 리딩 단계에서 감정을 함께 공유했다면, 현장에서는 배우가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싶었어요. <애정결핍>의 경우 백윤식 선생님과 봉태규 씨가 가지고 있는 장점이 충분히 담겨있지 않나 생각이 들어요”
처음 김성훈 감독이 <애정결핍>을 만든다고 했을 때 걱정한 사람이 한 두 명이 아니었다. 그가 가지고 있는 조용한 어투에서 코미디 감각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그런 주변의 우려를 보기 좋게 불식시키며 <애정결핍>을 경쾌한 코미디로 포장해냈다. “한 영화에 대한 평가를 교훈이 있느냐 없느냐로 나누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해요. 영화 속에서 간접적으로 보여지는 사회 비판의식은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 중의 일부이긴 하지만 그것을 관객들에게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싶지 않았어요.”
배우들의 에너지가 작품 전체에 미치는 영향
제3자가 봐도 이견을 달 수 없을 만큼 <애정결핍>은 백윤식, 봉태규가 아니면 만들어 질 수 없는 영화였다. “백윤식 선생님, 봉태규 씨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에 시나리오를 쓰기가 편했어요.”
백윤식과 봉태규의 캐스팅에도 어려움이 많았지만 미미 역할을 해야 하는 여배우를 찾는 것도 그에게는 적지 않게 고민스러운 일이었다. “백윤식 선생님과 같이 있을 때도 어울리고, 봉태규 씨와 있을 때도 어울리는 여배우를 찾기가 힘들었어요. 20대 연기자는 힘들 것 같고, 그렇다고 40대 연기자를 캐스팅하려고 하니 태규 씨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어요. 그런데 혜영 씨가 미미 역에 캐스팅되면서 제가 고민했던 부분들이 많이 사라졌어요.”
<애정결핍>의 기획단계에서 나온 시놉시스 중에는 미미를 향한 두 부자의 쟁탈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 외에 마을 사람들의 모습이 지금보다 더 세밀하게 그려진 것도 있었다. 김성훈 감독은 제작사와 함께 이야기를 어떻게 전개시켜나갈 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전자 쪽을 택하게 된다. “마음이 아팠지만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 부분은 포기할 수 밖에 없었어요. 정해진 러닝타임 안에 그것들을 다 담아낸다는 것이 불가능했거든요.”
감독의 말을 빌리지 않아도 <애정결핍>에는 정상적인 사람이 별로 없다.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정상적으로 보이는 캐릭터는 이혜영이 생명력을 불어넣은 ‘미미’라는 인물이다. “이혜영 씨가 맡은 ‘미미’라는 캐릭터를 구축하면서 두 부자처럼 웃기게 가야 할지 고민이 많았어요. 그런데 주변상황에서 코믹적인 요소가 많다 보니, ‘미미’만큼은 최소한 진지하게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두 부자에 비해서 ‘미미’ 캐릭터가 상대적으로나 절대적으로 봤을 때 수동적인 인물임에는 틀림이 없잖아요. 하지만 ‘미미’라는 캐릭터가 지금보다 더 적극적이 됐으면 두 부자의 엽기스러운 행동이 상대적으로 죽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현실에 바탕을 둔 판타지 같으면서도 우화 같은 영화다
김성훈 감독은 관객들이 <애정결핍>을 현실에 바탕을 둔 판타지 같기도 하면서도 우화처럼 봐주길 원한다. 그렇지만 ‘웃기려고 별 짓을 다했구나’라는 평가를 받는다 하더라도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고 말한다.
<애정결핍>에서 원작과 전혀 다른 점을 찾는다면 결말 부분이다. 한 여자를 두고 쟁탈전을 벌이는 두 부자의 이야기를 어떻게 매듭지어야 될까? 김성훈 감독도 <애정결핍>을 만들면서 가장 고민스러웠던 부분이 결말 장면이었다고 말한다. “기존 코미디 영화들이 보여준 결말을 택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런 결말을 택하면 여태까지 보여준 이야기의 흐름을 깰 것 같았거든요. 감동을 주어야 하는 의무감에서 벗어나, 표현이 잘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행복감을 주는 결말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런 인물들은 이렇게 산다고.”
‘드디어 한국에도 패럴리 형제 같은 감독이 나왔다.’ <애정결핍>을 보고 나오면서 자연스럽게 내뱉은 말이었다. 웃음의 향기를 아는 김성훈 감독은 앞으로도 코미디를 찍고 싶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코미디에 대한 그의 애정이 결핍되지 않는 한 한국영화계에 괜찮은 블랙 코미디가 계속해서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맥스무비 www.maxmovie.com
그 뒤는 별로...
내용은 후지지만, 캐릭터를 잘 살린 배우들이 돋보인다.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