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열 신간에세이 [배를 놓치고, 기차에서 내리다], 현대문학, 2013
나의 오래된 여자친구(따져보니 30년이 넘었네!) 이화열이 신간 에세이집을 내놓았다. 출간에 맞춰 파리에서 서울로 돌아온 그녀와 어제밤 저녁 식사와 와인을 함께 했다. 선물로 받은 책을 조금 들추어보니 차분한 시선과 정제된 문장력이 이제 어떤 경지에 올라서고 있는 듯 하다. “형, 나 그냥 파리에서 살래”하며 파리에 주저 앉은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9년이나 되었단다. 몇 년 전 파리에 갔을 때 그녀의 집에서 머문 적이 있다. 그녀의 남편 올리비에, 그녀의 두 아이들 단비 현비도 보고 싶다. 화열은 오늘 해남으로 여행을 떠났다. 나는 내일 여수로 떠난다. 같은 남도에 머물지만 그곳에서 만날 계획은 없다. 여행길에 이 책 [배를 놓치고, 기차에서 내리다]나 들고 갈까 한다.
저자소개 이화열
196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의 꿈은 혼자 새로운 세계를 여행하는 것이었다. 1987년 성균관 대학교 의상디자인학과를 졸업한 후 1991년 홍익대 대학원 산업디자인학과에 입학, 대학원에 다니면서 정치광고회사에서 아트디렉터로 일했다. 경제적으로 독립한 스물아홉 살이 되던 해에 정치광고디자인을 그만두고 파리 유학길에 올랐다. 파리 타이포그래피 국립 아틀리에L’Atelier National de Creation Typographique 국가 연수생으로 뽑혀 수학하던 중, 파리지앵인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파리에 정착했다.
그래픽 디자이너로 활동을 계속하다가 현재 단비와 현비, 두 꼬마 파리지앵을 키우면서 달콤한 일상을 사진과 글로 기록하며 살고 있다. 에스프레소와 라디오 재즈 스테이션 그리고 아이들의 웃음에서 담백한 행복의 알갱이를 음미하는 그의 저서로는 [파리지앵]이 있다.
사진작가 소개 폴 뮤즈
1960년 영국 요크셔 출생. 11세에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결정적 순간’을 만난 것을 계기로 사진에 매료되었다. 영미문학을 전공한 후 수단과 포르투갈에 체류했다가 1990년부터 파리에 정착했다. 현재 번역가, 사진작가로 활동 중이다
김화영 추천사
“소음 때문에 나라를 바꾸고” 파리에 정착한 지 19년. 자신이 사는 앙리지누 거리, 동네 이발사, 앞집 창문 너머의 여자, 버스 정류장에서 만난 노인, 같은 아파트의 치과의사, 거리의 홈리스, 댄스 스타, 지하철 냄새, 지붕 밑 하녀방, 카페테라스에 혼자 나앉은 사람, 튀니지 출신의 카페 주인, 각방을 쓰는 친구 부부, 그리고 남편과 아이들과 시부모……. 이 모든 대상과 그 대상을 바라보는 고즈넉한 시선 사이의 완강한 거리, 혹은 여백을 통해 느껴지는 사유의 파동에서 독자는 “어느 공간에도 속하지 않는 외로움”의 예지를 읽는다.
-김화영(불문학자, 문학평론가)
이재룡 추천사
자세히 보고, 오래 생각한 후, 꼼꼼히 쓸 것. 말은 쉽지만 지키기 어려운 글쓰기 태도이다. 내가 이화열의 글을 부러워하는 첫 번째 이유이다. 얼핏 지나칠 법한 풍경과 사람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과 생각, 그리고 그것을 옮긴 글이 그윽하고 아름답다. 그의 글은 방금 살수차가 지나간 여름 아침이었다가 어느새 부엽토 냄새가 짙은 가을 저녁이 되기도 한다. 소소한 일상에서 죽음과 신과 고독 같은 추상을 건드리는 그의 속내에 소녀와 노인이 동거하는 것 같기도 하다. 특히 두 나라 말이 뒤섞인 그만의 방언이 개성적이고 자발적 유배를 택한 소수자만이 지니는 감수성이 미묘하다. 요즘 외국 체험을 뽐내는 글은 넘쳐나지만 주마간산에 불과한 것을 봉사개안처럼 떠드는 것이 태반인 데 반해 이화열의 책에는 그런 속기가 없다. 그는 원래 화가였던가. 잠깐 붓질을 멈추고 자신의 그림을 바라보는 모습은 어느 글쟁이도 흉내 낼 수 없다. 허리를 약간 젖히고 오른쪽으로 갸우뚱 기운 고개.
-이재룡(불문학자,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