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심산 등록일: 2013-11-11 15:17:10 IP ADRESS: *.139.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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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다던 그 명성 세월 속에 파묻혔네

노규엽 기자   사진 양계탁 기자

 

옛사람들은 골이 깊고 경치가 아름다운 곳에 구곡(九曲)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는 주역에서 말하는 양(陽)의 숫자로부터 유래한 것으로, ‘구(九)’라는 숫자를 많다는 뜻이나 좋다는 뜻으로 지명에 써온 것이다. ‘구’자는 중국에서 즐겨 써온 것인데, 대표적으로 송대의 주자가 무이산에 있는 36개 봉우리와 37개 암석의 사이사이로 흐르는 아홉굽이 계곡의 절경을 ‘무이구곡’이라 칭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퇴계 이황, 율곡 이이, 우암 송시열 등의 여러 성리학자들이 주자의 무이구곡을 본받은 바 있다. 그리고 그들이 머물던, 자연경관이 뛰어난 곳을 구곡으로 설정하고, 산수를 즐기면서 학문을 탐구하고 문인들을 양성했다. 우리나라에 있는 대표적인 구곡경관을 꼽아보면, 벽계구곡(양평)과 화양구곡, 선유구곡, 쌍곡구곡, 고산구곡(이상 괴산), 운암구곡(단양), 용하구곡, 능강구곡(이상 제천), 지천구곡(청양), 갑사구곡(공주), 옥계구곡(영덕), 무흘구곡(성주ㆍ김천), 죽계구곡(영주), 봉래구곡(부안), 용호구곡(남원), 주자구곡(진안), 무이구곡(무주), 곡운구곡(화천) 등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서울의 진산인 북한산에도 우이구곡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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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이구곡 중 제1곡인 만경폭포의 하단.

 

우이구곡에 관한 기록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이계(耳溪) 홍량호(洪良浩ㆍ1724~1802)가 쓴 <우이동구곡기(牛耳洞九曲記)>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는 우이동계곡의 구곡경관에 관한 산수기문으로, 지금은 흔적을 찾기 어려운 우이구곡의 본모습을 엿볼 수 있는 자료다. 이 <우이동구곡기>에 의존하여 그곳의 실체를 찾아보기 위해 우이구곡을 찾았다. 본 취재에는 1986년 우이구곡을 탐사한 경험이 있는 코오롱등산학교의 이용대 교장이 함께 했다.

 

잊혀진 길을 더듬어 제1곡을 찾아가다


우이구곡의 시작은 도선사 뒤편에 숨어있는 만경폭포다. <우이동구곡기>에 적힌 만경폭포에 관한 묘사는 다음과 같다.
삼각산 동쪽에 만경대가 있다. 높이는 백운대ㆍ인수봉과 비슷하다. 병풍처럼 늘어선 산봉우리들이 가로로 하늘 복판을 자르고 있다. 난간이 펼쳐진 듯 둘러싸고 있는 봉우리들 사이로 여러 물줄기가 앞을 다투어 흐른다. 그 앞에 거대한 석벽이 목구멍이 되는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높이는 열 길 쯤 되고 넓이는 높이의 절반 남짓 된다. 석벽 전체가 깎아지른 듯 하여 날다람쥐나 원숭이도 오를 수 없을 지경이다. 물이 그 꼭대기에서부터 날아 떨어지는 것이 흰 비단 같고, 그 물소리가 수리를 진동한다. 이름 하여 만경폭포(萬景瀑)라 하니, 이곳이 제1곡이다.


만경폭포를 찾아가기 위해 도선사로 들어선다. 사대천왕문을 지나자마자 왼쪽의 숲길로 잠입한다. 정리되지 않은 흙길은 쉽게 발걸음을 옮길 수 없게 한다. 그래도 아주 희미하게 사람이 다닌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옛 시절부터 많은 이들이 찾은 흔적이 각인된 것인지, 아니면 가끔 이곳을 찾는 사람이 있는 것인지. 그 길을 더듬어 계곡을 만난다. 제1곡인 만경폭포로 가려면 이곳에서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야한다. 계곡의 끝자락에 닿으면 물이끼 가득한 바위벽을 흐르는 한줄기 폭포를 발견한다. 3단으로 이루어진 만경폭포의 최하단이다. 바위폭포의 오른쪽 숲을 헤집어 바위 위로 오르면 폭포의 상단으로 갈 수 있다. 하지만 만경폭의 상단부는 폭포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 물이 바위 벽면을 적시며 흘러내리는 수준이다.


“원래 저 위에서부터 폭포가 시작되어 흘러야하는데, 도선사에서 식수로 사용하려고 꼭대기를 시멘트로 막았어. 그러니 수량이 팍 줄어든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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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에서 올려다본 종바위. 이용대 선생은 원래 이름이 있었을 거라 추측한다.

 

이용대 선생의 손가락 끝을 따라 시선을 높이니 물길을 가로로 자르는 반듯한 시멘트 벽이 보인다. 초라한 모습으로 남은 만경폭포 앞에서 우이구곡이라는 이름이 낯설어진 이유를 알 수 있다. 사람의 손에 의해 폭포의 대가 끊겼으니 수량이 줄고 아름다움도 메말라 갔을 것이다. 그 영향은 제2곡에도 곧장 적용된다.


좌우에 푸른 석벽이 이리저리 대치하고 있는 사이로 물이 모여 흐르며 솟구치기도 하며 쏟아져 내린다. 사람들은 바위 벽면을 따라 비스듬히 타고 가는데 두 발을 모아 디딜 수 없을 지경이다. 급류는 가로로 달려가며 바닥과 벽면을 부딪쳐댄다. 이름 하여 적취병(積翠屛)이라 하니, 이곳이 제2곡이다.


푸른(비취)색이 쌓인 병풍이라는 뜻의 적취병. 그러나 물이 줄어버린 계곡은 옛 풍취를 그려내지 못한다. 적취병이라 짐작되어지는 장소는 허연 바위들이 제 몸을 물 밖으로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왼쪽 언덕에 층을 이룬 바위가 봉우리를 이루고 있는데, 가파르게 우뚝 솟아 지나가는 구름을 잡을 듯 하고 먼 들을 조망해볼만 하다’던 제3곡 찬운봉(?雲峯)과 ‘더위잡으며 끌어안고 오르면 여러 골짜기가 다 드러나면서 솔바람과 물소리가 그윽하게 귀에 가득 들어오는’ 거대한 바위라는 제4곡 진의강(振衣崗)도 보기 어려움은 마찬가지다. 찬운봉은 나무를 땔감으로 쓰던 조선시대에는 보였을지 모르나 수목이 빽빽한 지금에는 어느 곳을 일컫는지 찾기 어렵다. 진의강의 경우는 눈에 들어오는 절경이라기보다는 작자의 감상을 표현한 거라 위치를 찾아낼 수 없다. 우리가 스스로 솔바람과 물소리를 느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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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이계곡은 사람들의 왕래가 없은지 오래다. 돌이끼들로 인해 지나기 위험한 구간도 종종 있다.

 

세월과 사람에 의해 자취를 감춘 정경들


제5곡 세묵지(洗墨池)는 유추해볼만한 장소가 있다. ‘기름기가 있는 듯 매끄럽고 숫돌처럼 평평하여 큰 글자를 쓸 만하다. 가운데가 터져서 우묵하게 파인 것이 마치 위를 향해 있는 큰 구유 같다는 세묵지. 우이계곡을 걸어 내려가다 보면 평평한 바위들이 서있는 가운데 웅덩이처럼 물을 담고는 흘려보내는 곳이 있다. 비록 지금은 작은 구유로 남고 말았지만 이곳이 세묵지가 아닐까 한다.
계곡을 따라 계속 내려가면 넓디넓은 암반을 지나 개나리산장의 계곡 쪽 테이블이 나온다.


“여기 이렇게 시멘트를 발랐잖아. 그러니 계곡의 크기가 팍 줄어버린 거지. 원래는 저쪽까지 물이 흘러서 계곡이 컸을 거라고.”
이곳을 지나 계곡을 쭉 이어야하는데 철조망으로 막혀있어 더 내려갈 수가 없다. 돌아가는 길을 찾아보고자 개나리산장 정문으로 빠져나왔더니 이번에는 개신교 기도원인 ‘통곡의 벽’의 담장이 우이계곡으로 가는 길을 막고 있다. 어쩔 수 없이 우이구곡 탐사를 잠시 접고 도로를 따라 내려간다. 통곡의 벽 입구까지 내려가면 선운교를 만나며 오른쪽에 있던 물길이 왼쪽으로 위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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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묵지를 지난 다음에 만나는 넓은 장소. <우이동구곡기>에 딱히 언급된 바는 없는 곳이다.

 

선운교부터는 굳이 계곡으로 내려가지 않고 도로를 따라 걸어도 우이계곡의 흐름을 볼 수 있다. 선운산장을 지나 조금만 내려가면 계곡의 물이 잠시 모여 담을 이루고 있는 곳을 볼 수 있다. 제6곡인 월영담(月影潭)으로 보이는 장소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달그림자의 운치를 즐길 수 있는 곳인데, 이 또한 밤이 아닌 낮에 찾아와서는 볼 수 없는 경치다.


월영담 아래로 있을 제7곡은 위치를 파악할 수 없다. 계곡 하류로 내려갈수록 시멘트를 바르는 등 사람의 손길을 너무 많이 탄 탓이다. 7곡인 탁영암(濯纓巖)의 설명을 보면 ‘수백 보를 돌아가면 괴상하게 생긴 암석들이 휑뎅그렁하니 험준한 곳에 격류가 작은 폭포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 수량이 줄고 폭이 짧아진 계곡에서 격류를 볼 수 없고, 시멘트로 세운 담이 폭포를 만들고 있는 현재의 우이계곡에서 탁영암은 보이지 않았다.


이어 8곡과 9곡은 더더욱 찾아볼 수 없다. 8곡은 수재정(水哉亭)이라는 정자 아래에서 ‘명옥탄의 물과 연미천의 시냇물이 모여 징담(澄潭)을 이루는 곳’이라는 설명이다. 그리고 제9곡인 재간정(在澗亭)은 수재정 근방에 ‘몇 개의 기둥을 돌에 얽어 흐르는 물에 임하여 세운 별장’을 말한다. 연미천의 물은 도로를 기준으로 계곡 저편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쪽은 대부분이 사유지라서 출입을 할 수 없다. 30년 전쯤 우이구곡을 탐방했던 이용대 선생도 “연미천 물을 따라 가보기는 했으나 정자나 집이 있었던 흔적조차 없었다”고 말한다. 아마도 한국전쟁의 포화 속에 무너지고 전후 정리를 하며 사라진 게 아닐까 싶다.


기대했던 우이구곡 탐사는 생각보다 별 게 없었다. 만경폭포로 시작되는 상류에서는 작으나마 흔적이라도 발견할 수 있었지만, 하류로 내려갈수록 자연적인 맛이 사라져 불만이 생길 뿐이다. 현재의 우이계곡은 구곡이라는 명칭이 붙기에는 너무도 볼품이 없다. 그렇게 만든 것은 바로 우리들이다. 우이동 사람들의 삶터가 넓어지면서, 사람들이 북한산을 많이 찾기 시작하면서라는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국내 다른 곳의 구곡들은 보호받고 있는 반면에 우이구곡은 옛 모습을 거의 잃어버린 점이 안타깝다. 도심과 가까운 곳에 있어 서울 사람들이 즐겨 찾는 북한산의 뒤편에는 우이구곡처럼 사라진 것들이 많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무언가 사라지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우이분소에 이르러 뒤편의 산책로를 따라 계곡의 끝으로 내려가는 중에 지으려다 공사가 중단된 콘도의 모습이 보인다. ‘우이동의 흉물’로 남은 건물을 보며, 우리가 잃어버리는 것들에 대해 아쉬운 마음을 감출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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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이계곡 끄트머리에 공사가 중단된 콘도 건물이 남아 흉물이 되었다.

 

월간 [MOUNTAIN] 2013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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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산

2013.11.11 15:42
*.139.1.130

용암문과 위문 사이의 깎아지른 절벽(릿지)이 만경대다

그 만경대 아래에 우이구곡의 시작점인 만경폭포가 있군?

언제 한번 여기 가보자!

 

화산회 멤버들에게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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