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심산 등록일: 2013-11-18 14:23:49 IP ADRESS: *.139.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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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를 쓴 소설가들

 

글/조민준(SBS TV <접속! 무비월드> 작가)

 

오는 11월에는 리들리 스콧 감독의 신작 [카운슬러]가 개봉합니다. 마이클 패스벤더가 분한 주인공 변호사가 약혼녀 페넬로페 크루즈에게 최고의 다이아몬드를 선물하고자 위험한 마약거래에 발을 들이고, 이를 위해 음지의 사업가 하비에르 바르뎀, 마약중개상 브래드 피트와 손을 잡지요. 하지만 치명적인 사고가 발생하면서 관련 인물들 모두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집니다. 드림팀 급의 캐스팅으로도 화제를 모은 [카운슬러]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 [더 로드]의 원작자로 유명한 소설가 코맥 매카시가 직접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쓴 작품입니다.

 

코맥 매카시는 토머스 핀천, 돈 드릴로, 필립 로스와 함께 현대 미국문학의 4대 작가로 꼽히는 인물이자 서부 장르소설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서부의 셰익스피어'라고도 불리는 문호입니다. 헌데 그가 영화 시나리오를 쓴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닌데요. 1976년에도 [정원사의 아들]이라는 제목의 각본을 쓴 적이 있지요. 1876년 사우스 캐롤라이나 주에서 일어났던 실제 살인사건을 소재로 한 이 작품은 이듬해인 1977년 2시간짜리 텔레비전 드라마로 방영되었습니다.

 

할리우드에서는 이처럼 문단에서 일가를 이룬 이들이 영화 시나리오를 쓰는 게 드물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특히 스튜디오 시스템이 정착되던 시기에는 영화계에서도 좋은 스토리텔러들을 필요로 했고, 소설가들 역시 이 새로운 매체의 가능성에 대한 도전과 생계 문제 등 여러 이유로 영화에 투신하곤 했죠. 그런 고로 알고 보면 입이 떡 벌어질만한 작가가 영화 크레딧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독일 표현주의의 거장 프리츠 랑 감독은 1936년, 나치즘에 염증을 느껴 미국으로 이주합니다. 그리고 할리우드에서 반 나치 성향의 작품 몇 편을 연출하는데요. [행맨 올소 다이!]도 그 중 하나였죠. 주목할 것은 이 영화의 시나리오 작가로, 역시 1941년에 미국으로 이주해 온 독일의 극작가이자 시인인 베르톨트 브레히트였습니다. 당시 할리우드 인근에 거주하며 호구지책으로 시나리오를 썼던 브레히트의 삶은 그의 짧은 시 '할리우드'에도 잘 나타나 있지요. "아침마다 밥벌이를 위하여 / 거짓을 사주는 장터로 간다. / 희망을 품고 / 나는 장사꾼들 사이에 끼어든다."

 

고전 필름 느와르의 대표작 [명탐정 필립]은 대개 연출자인 하워드 혹스, 그리고 원작자인 레이먼드 챈들러의 이름과 함께 언급됩니다. 하지만 이 작품의 시나리오를 쓴 이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대문호라는 점은 빼놓기 일쑤죠. 바로 20세기 미국 남부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 윌리엄 포크너입니다. 그는 1930년대 극심한 생계곤란 때문에 MGM과 시나리오 계약을 맺었는데요. 당시 포크너는 할리우드의 쇼 비즈니스에 대해 대단히 부정적인 입장이었다고 합니다. 다만 돈 때문에 일을 한다는 생각이었는데요. 그런 그의 생각이 전환점을 맞게 된 계기가 대가 하워드 혹스와의 만남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명탐정 필립] 외에도 [소유와 무소유], 그리고 조지 스티븐스의 [건가 딘] 같은 작품에도 참여하게 됩니다.

 

[위대한 개츠비],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의 원작자인 스콧 피츠제럴드 또한 윌리엄 포크너와 비슷한 시기에 MGM과 계약했는데요. 스콧 피츠제럴드가 썼던 시나리오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끝내 채택되지 못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다른 버전입니다. 역시 생계 때문에 영화 일을 시작했지만 별반 소득이 없었던 그는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마지막 장편 소설인 '마지막 거물의 사랑'을 썼고, 그 얼마 후인 1940년 알콜중독에 따른 심장마비로 세상을 뜨게 됩니다.

 

이 시기 할리우드에서 암약했던 문학가들 중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멋진 신세계'의 영국 작가 엘더스 헉슬리입니다. 1932년 발표한 디스토피아 소설 '멋진 신세계'로 일약 주목을 받았지만 1937년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그 또한 생활고에 직면하게 됩니다. 당시 그는 할리우드에서 일하면서 1940년판 [오만과 편견], 오슨 웰즈가 주연한 1944년판 [제인 에어] 등 영문학 각색작들의 대본을 주로 썼는데요. 그는 자신의 출세작인 '멋진 신세계'를 영화화하고 싶다는 꿈을 품고 있었고 스스로 시나리오까지 완성했지만 아쉽게도 그 꿈은 이루지 못했습니다.

 

지금까지 언급한 소설가들도 대체로 그렇습니다만 알려진 작품세계와는 다소 동떨어진 시나리오를 선보인 작가들도 많습니다. [대부]의 원작자로 유명한 마리오 푸조와 [슈퍼맨](1978)을 연결시키기란 아무래도 쉽지 않은 것처럼 말이죠. 시나리오 작가가 부업이 아니라 본업의 하나였던 그는 주로 블록버스터 영화에 참여했습니다. [슈퍼맨2]는 물론 재난영화 [대지진]도 그의 손을 거쳤으니까요.

 

로얼드 달이라고 하면 우리나라에서는 [그렘린],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원작자이자 동화 작가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만, 그의 시나리오 대표작은 의외로 [007 제5탄 - 두번 산다]입니다. 헌데 영 뜬금없지는 않은 것이 사실 로얼드 달은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공군의 파일럿으로 활약했으며 영국정보부에서 일한 경력도 있었으니까요. 이 무렵 [007] 시리즈의 원작자인 이언 플레밍과도 함께 근무한 적이 있다고 하죠. 이런 인연을 계기로 [007 제5탄 – 두번 산다]는 물론 이언 플레밍의 또 다른 작품 [치티 치티 뱅 뱅]의 시나리오도 쓰게 되었습니다.

 

SF문학의 거장 레이 브래드버리는 TV 시리즈 [환상특급]에도 다수의 에피소드를 제공했고, 고전 SF영화 [아웃 스페이스]의 원안자이기도 합니다만 그가 시나리오를 쓴 작품은 놀랍게도 허먼 멜빌 원작, 존 휴스턴 감독의 [백경]입니다. 이 의아한 선택에 대해서는 두 가지 상반된 해석이 존재하는데요. 첫 번째는 생전의 레이 브래드버리가 SF 작가로 불리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두 번째는 그가 '백경'을 거대 바다괴수가 등장하는 SF물로 해석했다는 견해입니다. 어느 쪽이든 그가 시나리오를 쓴 이 영화를 역대 '백경' 각색작 중 최고로 손꼽는 데에는 이견이 없지요.

 

이외에도 조지 로메로 감독의 [크립쇼]를 비롯, [캣츠 아이], [공포의 묘지], [악마의 분신] 등 다수의 시나리오와 텔레비전 드라마 각본을 쓴 스티븐 킹, [엑스맨], [판타스틱 4]의 시나리오를 줄줄이 거절당한 끝에 [스파이더맨 2]의 초고를 쓰게 된 퓰리처상 수상 작가 마이클 샤본, 고딕 호러 [공포의 대저택]의 시나리오를 쓴 [티파니에서의 아침을]의 원작자 트루먼 카포티 등도 스크린에 깊은 관심을 보였던 소설가들로 꼽을 수 있겠습니다. 가장 최근 소식으로는 해리 포터 시리즈의 원작자인 조앤 K.롤링이 [해리 포터] 시리즈의 스핀오프 소설 [신비한 동물사전]의 각본을 직접 쓸 것이라고 발표하기도 했지요.

 

네이버 [무비QnA] 2013년 10월 22일자

김보람보

2013.11.18 15:39
*.193.48.156

코맥 맥카시의 시나리오 집필 소식을 듣고 급 궁금했었는데, 여기 뙇! 하고 올라왔네요!!

코맥 맥카시야 생활이 곤궁해서 시나리오를 쓰진 않았겠지만, 왠지 소설가가 시나리오 쓴다하면, 김승옥 선생처럼, 피츠제럴드처럼, 처자식이 굶는 모습을 보다 못해 경멸하는 상업예술로 들어서는 소설가의 쓰리피스 양복을 갖춰입은 허물어진 뒷모습이 생각난달까요...

 

코맥 맥카시는 뭐.. 잠꼬대를 그대로 옮겨적어도 뭐.. 예술일 테니까...

저도 소설과 시나리오를 둘 다 잘 써보는 게 남들에게 말못한 부끄러운 꿈인데.. 일단, 시나리오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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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산

2013.12.02 15:37
*.139.1.130

가만히 들여다 보니까 독일의 페터 한트케가 빠졌네?

전후 독일 청년문학의 기수 한트케는 매우 '영상적인' 소설을 썼을 뿐 아니라

영화감독 빔 벤더스와 콤비를 이루어

벤더스 영화들 중 상당수의 시나리오를 직접 썼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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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휘주

2013.12.02 16:55
*.176.236.3

제가 기억하는 바로는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렛미인 원작자), 다카노 가즈아키(제노사이드 쓴 작가), 폴 오스터, 윌리엄 요르츠버그(폴링엔젤),더글라스 캐네디, 이언 매큐언, 로버트 블록(싸이코 원작자)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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