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홀트 메스너에 대해서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했는데요.
진짜에요. 체력적인 면에서는 너무나 당연하고요 정신적으로도 강한 사람이고, 집필자로서도 거의 60권이 넘는 책을 썼는데 그 책들이 또 다 대단해요. 전세계적으로 많이 팔리기도 했고요. 그 사람의 삶의 태도는 정말 흠잡기 힘들어요. 너무 완벽해서 얄밉죠(웃음).
앞부분에서는 니체도 등장하더라고요. 니체와 산이 연결되는 부분이 흥미롭던데요.
20세기 초반의 알피니즘을 풍미한 단독등반(가이드를 대동하지 않고 혼자 등반하는 형태)자들 중에는 사고로 사망한 이들이 많았는데, 그들의 배낭 속에서 니체의 책이 많이 발견되었어요. 니체의 초인 사상과 시체로 발견된 단독등반자들 사이에 구체적으로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뚜렷하지 않지만 실제로 니체가 ‘젊은이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악마’ 취급을 받고 욕도 많이 먹었죠. 니체 입장에서는 억울하지만요.
그리고 니체가 요양을 위해 알프스 지역의 작은 마을에서 머물 때 그가 자주 올랐던 산도 만만치가 않아요. 3,400미터급이니까 백두산보다 훨씬 높은 거죠. 니체는 그 산을 여러 번 올랐다고 해요.
알피니즘의 역사를 살펴보면, 처음에는 아무도 오르지 못한 곳을 가장 먼저 오르는 초등 경쟁을 벌이다가 이후에는 점차 다른 방식으로 산을 오르는 것에 대한 상상력을 발휘하게 되던데요.
알피니즘은 19세기 말 제국주의 시대의 산물이기도 해요. 히말라야 초등 정복까지만 해도 대개는 국가적인 지원을 받았어요. 그러던 것이 2차 세계대전을 통과하면서 다른 방식으로 산을 오르는 산악인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국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즐기고 싶어서, 팀을 짜서 함께 오르는 것이 아니라 혼자, 개인주의적으로 오르는 사람들이 생겨난 거죠.
현대등반이라고 하는 것은 극단적인 면들이 있어서 사실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요. 현대미술하고 비슷해요. 너무 추상적이죠. 그렇게 개인화되고 극단적으로 변해가는 것이 현대 등반의 사조인데, 지금 다시 국가주의적 등반을 하는 것도 안 어울리죠. 8,000미터 영역에 누가 또 올라갔다 하는 건 더 이상 화제가 안 되고요. 남들이 다 갔던 루트를 산소마스크 쓰고 가는 것은 이제 등반의 가치가 없다고들 하지요. 이제는 그런 것 말고 좀 다른 형태의 등반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죠.
자타가 공인하는 20세기 최고의 원정대장인 크리스 보닝턴이 한 말이 맞아요. “그런 등반이 정말 즐거울까요?”
산에 목숨을 바침으로써 신화가 된 사람들도 있지만 살아남아 다른 삶을 살면서 또 다른 깊은 인상을 준 사람들도 많던데요. 아웃도어 의류업체로 유명한 ‘파타고니아’의 설립자 이본 취나드가 그런 경우인데요. 전에 독특한 철학을 가진 기업인 ‘파타고니아’에 대한 책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이본 취나드에 대해 알게 되니까 ‘파타고니아’라는 기업의 DNA가 무엇인지 이해가 가더라고요.
이본 취나드, 참 멋지죠. 파타고니아의 본사가 캘리포니아의 해변가에 있어요. 그래서 파도가 밀려오면 직원들 일을 못하게 한데요. 다 나가서 서핑하라고(웃음). 굉장히 감동적인 데가 많은 사람이에요. 파타고니아가 한때 등산용 면 티셔츠 판매로 어마어마한 수익을 올렸는데, 어느 날 면을 생산하는 목화밭에 이본 취나드가 가 본 다음에 굉장히 충격을 받았대요. 목화도 농약 범벅이고 노동자들의 건강도 물론 안 좋고요. 그래서 면 티셔츠 생산을 중지해버려요. 매출이 확 떨어졌죠. 그리고 나중에 유기농 목화를 사용하는 걸로 바꾸고요. 파타고니아가 훌륭한 건 매출도 매출이지만 그런 점들 때문이죠. 그런 회사를 이끌고 왔다는 점에서 이본 취나드도 굉장하고요.
책에서 소개한 여러 산악인 중에서 더 마음이 가는 그런 사람이 있나요?
저는 정말로, 책에서 소개한 모든 사람들을 다 좋아해요. 이본 취나드도 좋고 카트린 데스티벨도, 개리 헤밍도 좋고요. 그런데 현대등반가들이 훨씬 더 개성있기는 해요. 19세기 말, 20세기 초중반에는 너무 의무를 다하기 위한 등반, 불굴의 의지, 이런 것들이 강조되는데 그건 좀 부담스럽거든요(웃음).
벌써 ‘마운틴 오디세이’ 다음 책도 준비하고 계시다고요?
2002년에 출간되었던 『심산의 마운틴 오딧세이』의 개정증보판인데, 산악문학에 대한 걸 다루고 있고요. 원고도 다 썼고 곧 나올 거에요.
그리고 그 다음 책도 준비하고 있는데, 이번엔 한국의 산, 그 중에서도 마애불과 관련된 얘기를 해보려고요. 요즘 한창 답사를 다니고 있는데, ‘마애’를 넓게 보면 그와 관련된 것이 엄청나게 많아요. 그래서 한 권으로는 안 될 것 같고, 서울마애산행, 전국마애산행, 그리고 산이 아니라 국도나 마을에 있는 마애신앙을 찾아가는 전국 미륵기행, 이렇게 나눠서 자료를 찾고 있어요. 그리고 틈틈이 폭포와 산성도 찾고 있고요.
그래서 참고서적을 이렇게 쌓아놓고 읽고 있어요.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 노는 거랑 같지만 노는 것도 얼마나 힘든데요(웃음). 무지하게 공부해야 하고. 엄청 바빠요(웃음).
2015년 1월 14일
| 박수진 (교보문고 북뉴스)
leftfield@kyobobook.co.kr
사진들도 실렸는데 생략...
남세스러워서...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