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리오작가가 소설도 써야되는 이유
한수련 영상소설 [미인도] 출간과 관련하여
영화 [미인도]의 전국 개봉과 때를 같이 하여 한수련 작가의 영상소설 [미인도]가 출간되었습니다. 심산스쿨 홈페이지 메인화면의 [여는글]에 같은 작가의 이야기를 두번 연속해서 올리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지만, 단순한 '소식'이 아니라 어떤 '교훈' 같은 것을 내포하고 있는 이야기여서 기꺼이 이 글을 씁니다. 한작가의 오리지널 시나리오 [미인도]의 계약서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매우 획기적인 것이었습니다. 시나리오의 영화화권에 대한 '임대'의 개념, 작가의 성명권에 대한 명시, 흥행 보너스에 대한 명시, 그리고 '출판권'의 획득 등이 그러합니다(자세한 내용은 [여는글]의 72번째글 [한수련 작가, 심산스쿨 사상 최고의 계약 완료!]를 참조해주시기 바랍니다).
한작가의 영상소설 출간을 축하하며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출판권의 획득'과 관련된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썼다면 그것을 '소설의 형태로 출판'하는 것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시나리오가 특정 영화사와 계약이 된다면, 계약서에 반드시 "출판권은 작가에게 있다"는 조항을 삽입해달라고 요구하셔야 합니다. 만약 시나리오가 계약되지 않았다면? 문제는 더 쉬워집니다. 그냥 그 시나리오를 기초로 하여 장편소설을 써서 출판하십시오. 소설 출간이 그렇게 쉬운 일이냐고요? 어렵습니다. 하지만 시나리오를 영화로 만드는 것보다는 약 오백만배(!)쯤 쉬운 일입니다.
시나리오작가가 소설을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요? 무엇보다도 중요한 의미는 "저작권을 확실하게 해둔다"는 겁니다. 일단 소설이 출간되면, 그 소설이 많이 팔리고 적게 팔리고와는 전혀 무관하게, 그 소설의 저작권은 작가에게 있습니다. 이 점이 이른바 영화판에서 시나리오작가가 받게 되는 부당한 대우와는 사뭇 다른 점이지요. 누군가 그 소설을 영화화하고 싶어한다면? 아주 좋은 진행입니다. 일단 소설의 저작권자로서 '원작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이때에도 중요한 것은 "원작 소설의 영화화권을 한시적으로 임대해준다"는 개념이지요. 간단히 말해서 특정한 기간 동안 영화로 만들지 못하면 계약은 무효가 되며 그 이전에 받은 원작료를 반환할 의무가 없다는 겁니다.
시나리오작가가 자신의 원작소설의 영화화권을 판다면, 보다 확실한 요구를 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각색한다는 조건으로 팔겠다"는 겁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여러분은 원작 소설가이자 각색 시나리오작가로서 분명한 저작권을 가지게 됩니다.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 수 있을까요? 또 다른 좋은 점도 있습니다. 제 아무리 오리지널 시나리오라고 해도 영화화되는 과정에서 본의 아닌 수정을 거치게 됩니다. 제작비 문제일 수도 있고 연출의 문제일 수도 있지요.
하지만 장편소설은 누가 뭐라고 해도 온전히 작가의 몫일 뿐입니다. 다시 말해서 작가만의 진정한 오리지낼러티(!)를 가감 없이 드러낼 수 있다는 거지요. 어떤 면에서 이것은 일종의 자존심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심산스쿨의 모든 시나리오작가와 작가 지망생들에게 권합니다. "네 시나리오를 장편소설로 쓰는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해봐라." [심산서재>영화>충무로통신]의 51번째 글 [시나리오 전에 소설부터 쓴다]의 요지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이번에 출간된 한작가의 영상소설 [미인도]는 매우 복잡한 과정을 겪었습니다. 오리지널 시나리오 [미인도]의 작가 계약서에는 "출판권은 작가에게 있다"는 조항이 명시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작가는 장편소설을 쓸 생각이 없었습니다. 좀 더 공부를 한 다음 훗날 보다 멋진 소설로 출간하고 싶은 꿈(!)만 가지고 있었지요. 그런데 영화 [미인도]의 개봉이 코 앞으로 닥치자 제작사에서 소설 출간을 서둘렀습니다. 일종의 홍보 전략으로 소설 [미인도]의 출간을 기획했던 거지요. 그 과정에서 한작가가 제게 자문을 구했습니다. "영화사에서 다른 작가에게 의뢰하여 소설로 출간하겠다는데 어떻게 해야 하지요?" 참 어려운 질문입니다. 계약서에 따르면 출판권은 한작가에게 있으니까 다른 작가가 [미인도]를 소설로 써서는 안됩니다. 하지만 한작가가 계약서 조항을 들이밀며 소설 출간을 반대한다면? 물론 소송까지 간다면 한작가가 이깁니다. 하지만 모양새가 좋지 않습니다. 마치 시나리오작가가 영화의 홍보 전략을 반대하는 꼴이 될 테니까요.
다른 작가가 쓴 소설 [미인도]의 원고를 읽어본 한작가는 마음이 무척 상했다고 합니다. 자신이 쓴 오리지널 시나리오와는 매우 다른, 구체적으로 말하기는 뭣하지만, 한작가의 입장에서는 용납하기 어려운 각색(!)이었으니까요. 결국 어떻게 했을까요? 한작가는 지금이라도 직접 소설을 써서 출간하겠다(!)는 결심을 굳혔습니다. 그래서 기존의 완성되어 있는 소설(다른 작가가 쓴)을 폐기처분하고 자신이 직접 장편소설을 썼습니다. 영화 [미인도]의 홍보와 맞물려 있는 작업이었으니까 시간이 충분했을 리 없습니다. 하지만 한작가는 '진정한 독종(ㅋㅋㅋ!)'입니다. 그녀는 자신에게 허락된 그 짧은 기간 동안 매일 밤을 꼬박 새우며 결국 장편소설을 써내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영화의 개봉일인 2008년 11월 13일, 자신이 쓴 영상소설 [미인도]를 세상에 내놓았고, 이제 막 인쇄소에서 나온 따끈따끈한 신작소설을 제게 갖다 주었습니다. 정말 얼마나 대견했는지 모릅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쓰는 것은 앞으로 여러분도 한수련 작가의 선례에 따라 작품 집필활동을 하셨으면 해서입니다.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쓰세요>계약하게 된다면 적어도 '출판권'은 작가에게 있다는 조항을 넣으세요>만약 크랭크인을 하게 되었다면 재빨리 장편소설로 쓰세요!" 한작가가 잘못 한 것이 있다면 소설 집필의 시기를 너무 늦게 잡았다는 것 하나뿐입니다. 다행히 그녀는 영화의 개봉일에 자신의 소설을 출간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좀 더 일찍 소설 집필을 시작했더라면 아마도 훨씬 더 높은 콸러티의 소설을 선보일 수 있었겠지요? 이제 이 글의 제목을 '시나리오작가가 소설도 써야되는 이유'라고 정한 이유를 아시겠지요? 심산스쿨 홈페이지에 드나드시는 모든 분들께 꼭 드리고 싶은 조언이었기에 이 기회에 이렇게 알려드리는 바입니다.
시나리오작가가 소설도 써야되는 또 다른 이유 하나! 소설의 후기에 '자신만의 쌩큐 크레딧(!)'을 넣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는 곧잘 "이 영화의 제작진은 다음의 분들께 감사를 표합니다"라는 자막이 올라가지요? 그 쌩큐 크레딧은 그야말로 온전히 영화의 제작진들의 것입니다. 하지만 소설가가 되면 책의 말미에 쌩큐 크레딧을 적어넣을 권리를 온전히 혼자 갖게 됩니다. 정말 특별한 즐거움이지요. 한작가의 영상소설 [미인도] 책 말미에 실려 있는 쌩큐 크레딧을 보다가 유쾌한 웃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뭐가 그리 유쾌했냐고요? 심산스쿨 사람들이라면 누구라도 크게 웃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아래는 한수련 작가가 쓴 쌩큐 크레딧입니다.
이야기를 완성해주신 모든 분들의 명단
한수련 영상소설 [미인도] 335-336쪽
저를 작가로 태어나게 해주신 어머니 역할의 김대우 작가(감독)님, 저에게 안정적인 글쓰기를 지원하며 일자리를 마련해주신 아버지 역할의 심산 작가님, 저의 마지막 스승이자 천재인 박헌수 감독님, 진정한 이야기 마법사 최석환 작가님, 글쓰기의 인내심을 가르쳐준 노효정 감독님, 김홍도와 신윤복의 기초 세계관이 되는 고전주의와 낭만주의에 대한 정확한 지식과 개념을 부여해주신 조중걸 교수님, 인간의 내면을 두려움 없이 보게 해주신 그리스 로마 신화의 달인 김원익 교수님, 정조실록학교에서 정조의 이상과 세계관을 자세히 가르쳐주신 박현모 교수님, 이 이야기를 제일 먼저 알아보고 영화화하기 위해 열심히 뛰어주신 김세훈 대표님, 거칠었던 시나리오를 다듬고 숙성시켜주신 전윤수 감독님, 이 이야기가 영화화될 수 있도록 깡으로 밀어붙인 최준영 대표님, 아름다운 영상을 담아주신 금복주 관상의 박희주 촬영감독님, 순식간에 살인적인 촬영스케줄을 완수한 모든 스탭들과 배우들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이성훈 피디님, 이태규 녹음기사님, 최지윤 팀장님, 홍창표 조감독님, 홍성범 제작실장님, 마지막 위기를 비상한 두뇌로 헤쳐나갈 수 있게 하신 윤종호 팀장님, 이 이야기가 소설로 출판될 수 있도록 해주신 동아&발해의 오영철 대표님, 이문혁 작가님, 정연섭 팀장님 그리고 이야기를 뒤집을 때마다 의견을 내주신 중상모략 멤버들(최예선, 최현진, 이유정, 이미경, 허수희, 김정연)과 저의 첫발상에 대해 가능한 이야기라고 힘을 주신 강상균 작가님, 세세한 리뷰를 기꺼이 해주시는 작은고모, 내 이야기는 무조건 재미있어 하는 친언니, 내 이야기 중 상업성 있는 이야기만 재미있어 하는 남동생, 삼남매를 키우며 험한 길을 웃으며 걸어오신 엄마 그리고 인간에 대한 풀리지 않는 딜레마를 남겨주신 아빠, 내 삶의 기쁨인 시라.
그래서 수련이 그 사이에서 낳은 딸이라면
나랑 김감독이...그 짓(?)을 했단 말이냐...[더위][메롱][땀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