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라는 존재
제목이 너무 거창하다. 히말라야에 대한 글을 써달라길래 요모 조모 생각해보다가 결국 나에게 히말라야란 어떤 존재인가라는 화두 같은 자문(自問)에 빠져버린 탓이다. 히말라야를 생각하면 가슴이 탁 트인다. 히말라야를 떠올리면 왠지 모를 안정감을 느낀다. 히말라야 앞에 서면 자신의 존재에 대하여 더 이상 가슴앓이를 하지 않게 된다. 내게 있어 여기까지는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질문은 이곳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런데, 왜 그런가?
눈을 감고 히말라야를 명상한다. 그러면 그곳의 거연하고 장쾌한 모습이 떠오른다. 하지만 그 다음엔? 엉뚱하게도 나는 히말라야가 솟아오르는 장면을 떠올린다. 이를테면 ‘판구조론’에 기대고 있는 셈이다. 인간 따위가 생겨나기도 훨씬 이전인 아주 까마득한 옛날이다. 당시 지구라는 행성 위에는 거대한 땅덩어리들이 이리 저리 이동하고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땅덩어리가 차지하는 면적보다는 바다가 차지하고 있는 면적이 훨씬 더 크다. 본질적인 의미에서 ‘대륙’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대륙이란 상대적으로 큰 섬일 뿐이다.
현재 이탈리아 반도라고 불리우는 땅덩어리가 유라시아라고 불리우는 땅덩어리와 부딪힌다. 그 충격으로 땅덩어리들의 일부가 하늘을 향해 솟구친다. 그게 알프스다. 현재의 세계지도를 입체적으로 들여다보면 이 사실은 분명하다. 이탈리아 반도가 유럽에 붙어 있는 그 접점지역에 생겨난 아름다운 주름이 알프스 산맥인 것이다. 그렇다면 히말라야는? 인도라 불리우는 땅덩어리가 아시아라고 불리우는 땅덩어리와 충돌한 결과다. 그 충돌의 강도는 아마도 지구 역사상 가장 강력한 것이었으리라. 알프스가 아름답다면 히말라야는 위대하다. 알프스가 인간의 영역에 속한다면 히말라야는 신의 영역에 속한다.
여기서 나는 다시 화두를 붙잡고 끝까지 파고든다. 나는 왜 히말라야가 처음 생성될 때의 그 장엄한 충돌을 떠올리는 것일까? 오래도록 그 장면을 들여다보니 예기치 못했던 곳에서 답안이 떠오른다. 그 답안은 많은 사람들에게 불편한 것일 수도 있겠다. 이 답안이 모범답안인 것도 아니다. 다만 나만의 답안일 뿐이다. 그 답안은 이렇다. 나는 인간이 태어나지 않은 원시의 지구를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척도로는 감히 가늠조차 할 수 없는 거대한 존재가 ‘단지 그곳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커다란 위안을 얻고 있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인간의 역사란 곧 해충의 역사다. 이 지구라는 행성이 생겨난 이후 우리 인간이라는 동물이 행한 일들은 거의 예외 없이 재앙에 속한다. 인간은 산을 깎아 도로를 내고 석유를 캐내어 대기를 오염시키며 적대적이지 않은 동물들을 잡아 죽인다. 우주의 관점을 가질 필요조차 없다. 지구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인간은 끔찍한 파괴자일 뿐이다. 인간의 관점만을 유지하더라도 사정은 매한가지다. 인간처럼 자신의 동류들을 대량학살한 동물은 그 어디에도 없다. 인간처럼 잔인한 계급사회를 만들고 그것을 제도적으로 확대재생산하며 끊임없이 합리화시키고 있는 끔찍한 동물은 달리 찾아볼 수가 없을 것이다.
나는 성선설을 믿지 않는다. 나는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주장에 헛웃음을 짓는다. 인간이 이룩한 이 모든 문화와 문명들? 나는 그것들이 모두 본질적으로 ‘간빙기(間氷期)의 낙서’에 불과하다고 믿는다. 나 역시 이기적이고 그악스러운 인간 종(種)의 한 개체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미안하다. 불행하게도 인간과 동시대의 간빙기에 생명을 얻어 처참하게 파괴되거나 멸종되어 버린 모든 동물과 식물들에게. 그리고 산과 강과 바다와 하늘에게. 그렇다면 인간이 저질러온 이 끔찍한 죄악들에 대하여 참회하거나 보상할 길은 없는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방법이 없다. 오직 인간이라는 이 끔찍한 종이 멸종되어 버리는 것 이외에는.
인간의 멸종을 상상해본다. 핵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고 남극과 북극이 녹아내릴 수도 있다. 거대한 지진이 발생하여 해일이 덮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 지구라는 행성 역시 끝장인가? 그렇지 않다. 다만 또다른 빙하기가 도래할 뿐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우리가 만들어 놓은 이 모든 간빙기의 낙서들은 마치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듯 깨끗이 사라져버릴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절대로 상상할 수 없었던 또 다른 생명체들이 이 지구 위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지구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이란 존재는 없어져 버리는 것이 훨씬 더 낫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히말라야는, 바로 그 너머에 있다.
나라는 개인이 죽어 없어진 다음에도 히말라야는 늘 그곳에 있으리라는 사실이 나를 위로한다. 인간이라는 종 자체가 멸종되어 버린 다음에도 히말라야는 의연히 그곳에 솟아 있으리라는 상상이 내 마음을 편하게 한다. 히말라야의 입장에서 보자면 잠시 웬 해충들이 그 발치에서 찧고 까불다가 사라져버린 것에 불과하리라. 아무래도 그래서인 것 같다. 히말라야를 떠올리면 가슴이 탁 트이며 자신의 존재를 용서할 수도 있을 것 같아지는 것은. 히말라야 앞에 서면 내가 얼마나 하찮고 우연한 존재인가를 온몸으로 느끼고, 세상살이의 비루함에서 얻은 가슴앓이들조차 별 것 아니었음을 통쾌하게 깨닫게 되는 것은.
월간 [작은숲] 창간호/2007년 1월호
두손 모아 합장할 따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