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가장 웃기는 책
[럼두들 등반기], 윌리엄 보우먼 지음/김훈 옮김, 마운틴북스, 2008
제가 '마운틴북스'라는 산악문학 전문출판사를 만들고 거기에서 편집인으로 일한다는 사실은 알고 계시죠? 마운틴북스의 첫번째 책은 이용대 선생의 [알피니즘, 도전의 역사]였습니다. 이제 마운틴북스의 두번째 책을 세상에 내놓습니다. 단언컨대, 제가 세상에 태어나서 읽은 모든 책들 중에서, 제일 웃기는 책입니다. 15년 전쯤 네팔을 방랑하다가 우연히 손에 넣게 된 중고책이었는데 이제야 한국에 소개하게 되었습니다. 자세하고 긴 서평은 조만간 따로 써서 올리기로 하고...[럼두들 등반기] 맨 앞에 실려 있는 '편집인의 말'을 옮겨옵니다(앞으로 마운틴북스에서 출간되는 모든 책에는 이런 식으로 맨 앞에 '편집인의 말'이라는 것을 실을 예정입니다).
편집인의 말
럼두들(Rum Doodle, 해발 12,000.15미터)은 요기스탄이라는 가상의 나라에 우뚝 솟아 있는 거대한 농담의 산(!)이다. 이 요절복통 원정등반기를 '나'라는 1인칭 시점으로 서술하고 있는 사람은 눈치가 젬병이어서 모든 것을 선의로만 해석하려 드는 아둔한 원정대장 바인더이다. 그가 이끄는 6명의 원정대원들은 영국육군병참단 소령, 과학자, 촬영담당, 통신담당, 외교관 겸 언어학자, 주치의 등 이른바 분야별 전문가들로 짜여져 있는데 이들의 기량과 팀워크는 상상을 초월(?)한다. 세계 산악문학 사상 가장 웃기는 풍자해학소설로서 전문 산악인과 극지 탐험가들 사이에서 일종의 '컬트'로 추앙 받으며 반 세기 동안 '전설'처럼 회자되던 [럼두들 등반기]가 이제 한국의 독자들과 만나게 되었다. 편집인으로서 드리는 충정 어린 조언 하나. 인수봉이나 울산바위 리지 같은 곳에서 비바크를 하는 도중에는 절대로 이 책을 펼쳐들지 말 것. 주체할 수 없이 터져나오는 웃음 때문에 결국에는 추락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마운틴북스 편집인 심산
[img1]아래는 오늘자 [중앙일보]에 실린 이경희 기자의 서평입니다.
[이 책과 주말을] 유머 쌓고 올라가는 '세계 최고봉'
해발 1만2000 미터짜리 세계 최고봉‘럼두들’ 등반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초자연 앞에서 무력해지는 인간의 도전, 자신과의 싸움 따위와는 거리가 멀다. 동네 뒷산깨나 탔다는 허술한 산악인들이 모여 럼두들이란 가상의 최고봉을 오르는 과정을 그린 코믹 소설이니까.
가령 이런 식이다. 짐을 옮기는 데 포터 다섯 명, 그 다섯 포터가 먹을 식량을 나를 포터 한 명, 그 한 명이 먹을 식량을 질 소년 하나가 필요하단다. 단, 소년은 자신의 식량을 스스로 지고가야 한단다. 게다가 그들이 쓸 2주치 물자를 나르는 데 다시 포터 여덟 명과 소년 하나가 필요해 이래저래 총 3000명의 포터와 375명의 소년을 동원해야 한다나. 아무리 등반 지식이 없어도 3000 궁녀를 연상시키는 어마어마한 숫자 앞에선 웃음을 터뜨리게 된다(참고로 1977년 에베레스트에 도전한 한국원정대는 포터 600명을 고용했다).
영어의 이해도가 높은 사람이라면 원문으로 읽는 게 낫겠다 싶은 언어 유희들도 가득하다. 우리식으로 응용하자면 ‘희생양떼는 초원에서 한가로이 쌍방울꽃과 뷰티풀을 뜯어먹고, 개울에는 아이디어떼가 노닐고 있었다’와 같은 유머가 수시로 나온다. 모든 걸 선의로 해석하는 어리숙한 등반대장, 늘 길을 잃어버리는 길잡이, 온갖 병을 달고 사느라 자기 병 치료에만 급급한 의사, 통역을 잘못해 매번 곤경에 처하는 언어 전문가 등 모자란 캐릭터들도 재미있다. 걸핏하면 포터들의 짐짝에 얹혀 산을 오르는 주인공들이지만 결국 럼두들을 얼렁뚱땅 정복하긴 한다. 믿거나 말거나.
[럼두들 등반기]는 1956년 발간됐지만 언론의 별다른 주목을 못 받고 30년 가까이 절판됐던 책이다. 그런데도 산악인들 사이에선 전설처럼 전해 내려왔단다. 이 책을 사랑한 남극원정대 대원들 때문에 남극 지도에 ‘럼두들’이란 지명이 들어갔고, 에베레스트가 있는 네팔의 카트만두 시에는 ‘럼두들’이란 식당이 성업중이란다. 유머로 쌓은 산 ‘럼두들’이 반세기가 넘도록 살아있는 셈이다. 산을 사랑하거나, 근엄한 에베레스트 등정기에 넌더리난 적 있다면 재미 삼아 읽어볼 만하다.
[중앙일보] 2008년 1월 5일 이경희 기자
거의 죽을 뻔 했다는~~~~
강추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