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하고 거대한 농담의 산
W. E. 보우먼 지음, 김훈 옮김, 마운틴북스 펴냄
이다혜/좌충우돌 독서가
유머 소설에도 족보가 있다. 그중 겉으로는 변태적일 정도로 금욕적이나 사실 선정적인 것 좋아하기는 세계 제일인 영국의 유머 소설 계보도는 은근히 힘이 세다. 이후 장르와 국경을 넘어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제롬 K. 제롬의 <보트 위의 세 남자>로 시작해 W. E. 보우먼의 <럼두들 등반기>로, 그리고 미국인이지만 영국에서 20년간 살면서 유머러스한 논픽션 쓰기로 이름을 날린 빌 브라이슨의 <나를 부르는 숲>으로 이어지는 계보도는 유머의 표준을 보여준다. 이 중 <럼두들 등반기>는 저자 보우먼도 모르는 사이에 산악인들 사이에서 산악문학 최고의 코믹소설로 추앙받아, ‘럼두들’이라는 이름이 산악인을 위한 게임과 식당 이름에 사용되기에 이르렀다.
위대하고 거대한 농담의 산 럼두들은 해발 1만2천미터가 넘는데, 요기스탄이라는 가상의 나라에 있다. 어찌나 높고 험준한 산인지 등반에는 총 3천명의 포터가 필요한데, 현지에 도착해보니 의사소통이 잘못되어 포터 3만명이 집결해 있다. 겨우 등반을 시작하나 했더니, 소설의 화자인 등반대장은 눈치가 없어서 대원들이 자기를 따돌리고 코가 비뚤어지도록 술을 마셔도 멋모르고 열심히 샴페인을 공급해준다. 참고로 등반대 주치의가 처방할 줄 아는 유일한 응급약이 샴페인이다.
등반대장은 사오정이고, 길 안내자는 길치에, 주치의는 몸이 골골하다. 오합지졸이라는 말도 이들 앞에서는 너무 거창해 보일 정도다. 그 과정이 시종일관 진지하게 서술되기 때문에 심각한 얼굴로 책장을 넘기다가 자꾸자꾸 키들거리게 된다. 겨우겨우 정상에 도달해 기쁨을 누리려는 찰나 다른 산에 올랐음을 깨닫게 될 때는 정말 나까지 울고 싶을 정도다.
세계 최고의 산에 세계 최고의 무능력자들이 도전했다. 공포영화도 아닌데 같은 자리만 뱅뱅 돌며 시간을 낭비하고, 워키토키 사용법을 겨우 익히나 싶으면 헛소리만 하다가 끝난다. 삽질의 연속인 모험담을 읽으면서(그것도 순전한 가상의 산에 대한) 인생의 아이러니를 깨닫는다는 말은 순전한 헛소리이자 럼두들 등반대에 대한 모욕이다. 웃어라! 그러면 온 세상이 함께 웃을 거라니까.
[한겨레] 2008년 1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