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VORITE BOOK
손재식_<한국바위열전>
작가 심산이 주저 없이 집어든 책은 산악사진가 손재식의 다큐멘터리 <한국바위열전>이다. 심산과 손재식이 호탕한 웃음으로 나눈 가슴 벅찬 바위이야기.
손재식은 나의 선배다. 그는 내게 있어 산과 사진과 삶의 선배다. 한때 그와 함께 거의 매주 산에 오른 적이 있다. 그와 함께하는 산행에 나는 언제나 구닥다리 FM2를 들고 나섰다. 그리고 그와 동일한 앵글을 잡고 동일한 셔터 스피드와 동일한 노출로 사진을 찍어댔다. 그것이 헛된 욕망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데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결국 나는 카메라를 내려놓았다.
심산(이하 심) 나는 카메라를 내려놓았는데 형은 자판에 달라 붙었네? 형 글 너무 좋아. 읽으면서 언제나 감탄하고 있어. 이번 책 <한국바위열전>에서도 사진 못지 않게 좋은 게 글이야.
손재식(이하 손) (조용한 웃음)글을 써서 먹고 사는 사람이 사진 찍는 사람한테 글 좋다고 하니까 뭔가 앞뒤가 뒤바뀐 거 같은데? 나는 글을 쓸 때마다 내겐 왜 심산 같은 글솜씨가 없는 걸까 한탄하는데?
심 어떤 글이냐가 중요한 거지. 미사여구를 뽐내는 글이냐, 드라마틱한 픽션이냐, 체험에 근거한 산문이냐, 그 어떤 척도를 들이대느냐에 따라 좋은 글과 나쁜 글이 갈린다고 봐. <한국바위열전>은 다큐멘터리지. 내 생각에 이런 책을 써낼 수 있는 사람은 형이 유일하다고 봐. 일단 최고 수준의 암벽등반 능력을 갖춰야 하고, 바위에 매달린 채 근사한 사진을 찍을 줄 알아야 하고, 그 바위의 초등자들과 인간적인 교류가 가능해야 되고, 그 모든 것을 담담한 문체로 기록할 줄 알아야 되고. 이 네 가지 역할을 제대로 해낼 수 있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또 누가 있을지 의문이야.
손 아쉬운 점도 많아. 애초 산악전문지에 연재할 때부터 지면이 너무 작아서 초등자들의 내밀한 뒷이야기를 제대로 전할 수 없었던 것이 마음에 걸렸는데, 어찌되었건 일단 이렇게 책으로 엮어내고 나니 이제 여기에 남기지 못한 이야기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겠구나 싶어서 아쉬운 느낌이 들어.
심 그건 모든 다큐멘터리 작가들이 필연적으로 감수할 수 밖에 없는 일종의 숙명이지. 내가 <한국바위열전>을 뒤적이면서 느끼는 최고의 기쁨은 이걸 역사로 기록했다는 거야. 누가 어떤 바위를 처음으로 올랐느냐에 대해서 아무도 기억하려 들지 않을 수도 있어. 그래서 이런 책이 필요한 거지. 나는 우리 산악계 선배들의 초등기록을 읽으면서 여러 번 콧잔등이 시큰해졌어. 사실 인수봉과 선인봉의 초등 기록과 그 과정에 얽힌 뒷이야기 같은 것에 관심을 가질 사람들이 도대체 몇 명이나 될까? 역설적으로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의 오롯한 가치가 더욱 돋보여. 형은 정말 큰 일을 해낸 거야. 비록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떼돈을 벌지는 못하겠지만(웃음).
손 처음부터 많이 팔릴 책을 써야겠다는 생각 따위는 없었어. 그저 산에 오르고 사진 찍는 것을 천직으로 아는 내가 그래도 밥값은 했구나 하는 위안감 같은 것을 얻었다고나 할까? 이제 내 작업의 한 획을 그었으니 다시 산으로 가야겠다.
심 이번에는 낭가파르밧이지? 몸 성히 잘 다녀와. 나는 지난 번에 형과 함께 칸첸중가 다녀온 이후로는 계속 평지를 여행하다가 이번 여름에는 캐나디언 록키로 떠날 것 같아. 우리 둘 다 긴 여행에서 돌아오고 나면 초가을 바람이 선선할 테니까 그때 이 책 <한국바위열전>에 나와 있는 고전적인 바윗길에 함께 붙어보자구!^^
WRITER 심산(작가, 심산스쿨 대표)
[DAZED AND CONFUSED] 2008년 8월호
위의 글이 실린 곳은 물론 한국판 [DAZED] 입니다
그곳에서 일하는 사진작가가 글쎄...[한국바위열전]을 머리에 쓰고
저런 포즈를 취하라고 하더군요...
저야 뭐 어떤 포즈를 취하라고 해도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취해주는 인간이어서 그대로 했습니다만
막상 사진을 보니 조금 웃기네요...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