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심산 등록일: 2006-06-28 15:29:32 IP ADRESS: *.241.45.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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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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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 귀의한 폭력영화 작가
스털링 실리펀트(Stirling Silliphant, 1918-1996)

시나리오작가로서 프로듀서나 감독한테 들볶이다보면 이따금씩 목젖까지 치밀어오르는 욕설성 항변이 있다. 야, 네가 쓰지 그러냐? 스털링 실리펀트는 그 반대의 경우다. 집어치워, 차라리 내가 직접 쓰고 말지! 실리펀트는 프로듀서로서의 데뷔작이 형편없는 성적을 거두자 아예 작가로 전업해버린 다음 보란 듯이 무려 200편이 넘는 시나리오와 그 이상의 TV 드라마 대본을 써낸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이다.

디트로이트 출생의 실리펀트는 캘리포니아대학을 졸업한 다음 디즈니의 홍보부서에 입사함으로써 영화인생을 시작했다. 사무처리 능력이 뛰어났던지 곧 20세기 폭스 사장 비서실 요원으로 발탁되었다가 2차대전에 참전한 다음 첫 번째 장편소설이자 베스트셀러가 된 [마라카이보]를 발표할 때까지 줄곧 뉴욕의 폭스지사에서 사무직으로 일했다. 영화현장의 스탭으로서 쌓은 첫 번째 경력은 [조 루이스 스토리](1953)의 프로듀서. 그러나 촬영 내내 시나리오에 불만을 피력하다가 결국 그 작품이 흥행과 비평 양쪽에서 모두 쓴 잔을 마시게 되자 스스로 시나리오를 써내기로 결심하고는 밤낮 없이 집필에 매달린다.

초기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작품은 60년대를 대표하는 SF스릴러 [저주받은 도시]. 동일한 시나리오로 1995년에 리메이크된 존 카펜터의 작품이 국내에 출시되어 있는데 오리지널의 신비한 분위기와 오싹한 공포감에는 못 미친다는 것이 중평이다. 시드니 폴락의 감독 데뷔작 [가느다란 전화선]에서 종합병원 응급실의 자원봉사자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던 흑인배우 시드니 포이티어를 스타덤에 올려놓은 작품이 [밤의 열기 속으로].

필라델피아의 흑인형사가 미시시피의 백인경찰과 한팀을 이루어 시종일관 티격태격 싸우면서도 결국 살인범을 잡아낸다는 스토리라인의 영화인데, 당시 미국의 핫이슈였던 흑.백간의 화해를 멋진 드라마 속에 녹여내어 흥행과 비평 모두에서 대성공을 거두었다. 실리펀트의 각색상 이외에도 작품상.남우주연상(로드 스타이거).편집상(할 애슈비) 등을 수상한 걸작인데, 공교롭게도 아카데미 시상식 직전 암살된 마틴 루터 킹의 장례식에 수상자 모두가 몰려가는 바람에 시상식 자체가 며칠 뒤로 연기되는 진기록을 남겼다. 미국 남부지방에서의 인종차별 문제를 다룬 또다른 작품으로는 [진정한 해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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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실리펀트의 각본료를 천정부지로 치솟게 한 것은 이런 유의 진지한 사회물이 아니라 재난영화였다. 그는 이 장르에서 최고의 제작자 겸 감독으로 손꼽혔던 어윈 앨런과 손잡고 1970년대를 뒤흔들었던 재난영화들의 대부분을 썼다. 별항의 필모그래피에 나오는 [포세이돈 어드벤쳐]나 [타워링]이 외에도 살인 벌 떼의 습격을 다룬 [벌떼](1978)나 화산폭발의 참상을 다룬 [시간이 다 됐을 때](1980)가 모두 그의 작품이다.

광기어린 사내들의 폭력판타지 역시 그의 주종목이다. 피터 오툴이 [아라비아의 로렌스](1962)에 이어 또다시 세상 전체와 맞서는 고독한 남자의 투쟁을 보여준 것이 [머피의 전쟁]이고, 범죄자보다 더욱 터프하고 잔혹한 형사 이야기 [더티 하리] 시리즈의 제3탄인 [집행자]도 그의 작품이다.

이렇게 폭력과 재난으로 스크린을 가득 채웠던 그가 실은 독실한 불교신자였다는 사실은 일종의 아이러니이다. 실리펀트는 동양철학 내지 동양무예에 남다른 애착을 가졌던 사람이다. 레이먼드 챈들러의 탐정소설을 각색한 [말로이]에서 이소룡을 기용해 그를 스타덤으로 끌어올린 사람도 그였다. 이소룡과 실리펀트의 우정이 흠뻑 배어 있는 작품이 [써클 오브 아이언]. 본래 이소룡이 시나리오를 썼으나, 그가 불의의 사고로 급서하자, 실리펀트가 마무리해 영화로 완성했다. 무예와 선(禪)을 연결시킨 대단히 명상적인 작품인데 본래 이소룡에게 내정되었던 배역은 데이비드 캐러딘이 맡았다.

실리펀트는 생애의 말년을 한때 베트남의 여배우이자 감독이었던 아내 티아라와 함께 타이의 방콕에서 마무리했다. 오렌지빛 가사를 두르고 불경에 심취했던 말년의 실리펀트가 혹시 자신이 평생 만들어온 영화들을 한낱 허섭스레기요 미망의 업보라고 파악하지나 않았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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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필모그래피

1955년 필 칼슨의 [파이브 어게인스트 더 하우스](Five against the House)
1960년 울프 릴라의 [저주받은 도시](The Village of the Damned)
1965년 시드니 폴락의 [가느다란 전화선](The Slender Thread)
1967년 노먼 주이슨의 [밤의 열기 속으로](In the Heat of the Night) ⓥ★★
1969년 폴 보가트의 [말로이](Malowe)
1970년 윌리엄 와일러의 [진정한 해방](The Liberation of L. B. Jones) ⓥ
1971년 피터 예이츠의 [머피의 전쟁](Murphy's War)  ⓥ
1972년 로널드 님의 [포세이돈 어드벤처](The Poseidon Adventure)ⓥ
1974년 어윈 앨런의 [타워링](The Towering Inferno)  ⓥ
1975년 샘 페킨파의 [킬러](The Killer Elite)  ⓥ
1976년 제임스 파고의 [집행자](The Enforcer)  ⓥ
1978년 리처드 무어의 [써클 오브 아이언](Circle of Iron)
1986년 메나헴 골란의 [오버 더 톱](Over the Top) ⓥ
1995년 찰스 매튜의 [그라스 하프](The Grass Harp)

ⓥ는 비디오 출시작
★★는 아카데미 각본(색)상 수상작

[씨네21] 2000년 8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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