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심산 등록일: 2006-06-28 16:01:46 IP ADRESS: *.241.45.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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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수다장이 아줌마
노라 에프론(Nora Ephron, 1941-    )

멕 라이언이 귀여운 푼수이자 사랑스러운 여자친구의 이미지를 자신의 독점상표처럼 갖게 된 것은 거의 전적으로 노라 에프론의 공적이다. 그녀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유브 갓 메일]이 모두 에프론의 시나리오였고, 이들 중 후자의 두편은 작가가 직접 연출까지 도맡아했으니까. 그렇다면 과연 현실 속의 노라 에프론은 영화 속의 멕 라이언처럼 귀여운 푼수이자 사랑스러운 여자친구로서 살아왔을까? 그렇지 않다. 그녀가 "로맨틱 코미디의 여왕"이라는 나긋나긋한 별칭을 얻게 되기까지는 남다른 변신의 노력과 불굴의 의지 그리고 작가로서의 드높은 자존심이 필요했다.

그녀의 부모가 모두 작가였던 것을 보면 노라 에프론은 어쩌면 처음부터 작가로 성장할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녀가 문명을 떨친 것은 웨슬리대학을 졸업한 다음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뉴욕의 각종 잡지에 개성적인 에세이들을 기고하면서부터. 이때의 작품들은 로맨틱하기는커녕 주로 날카로운 풍자와 위악적인 패러디로 가득 찬 가시돋친 글들이었다. 이러한 성향은 그녀의 첫 번째 장편소설이자 베스트셀러가 된 [가슴앓이]에서 더욱 도드라진다. 요리평론을 주로 하는 여성 프리랜서와 카리스마가 강한 남성 칼럼니스트간의 연애와 결혼 그리고 파경을 시종 담담한 냉소적 시각으로 묘파한 이 작품은 훗날 같은 제목의 영화(비디오출시명은 [제2의 여인])로도 만들어졌다.

에프론은 인터뷰 때마다 애써 부인하지만 이 작품은 상당히 자전적인 요소가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녀가 프리랜서 생활을 하던 중 결혼한 남자가 [워싱턴포스트]의 저명한 기자 칼 번스틴이었기 때문이다. 진위야 어찌됐건 메릴 스트립과 잭 니콜슨이라는 당대 최고의 배우들이 펼쳐보이는 이 음울한 가정극을 보고 있노라면 절로 가슴이 저며오면서, 이 작품을 쓴 여자가 훗날 '로맨틱 코미디의 여왕'으로 등극하게 되리라고는 전혀 상상할 수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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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프론 초기의 대표작이자 그녀의 첫 오스카 후보작이었던 [실크우드]는 더욱 심각한 내용이다. 핵발전소에서 근무하는 행실이 좋지 않은 여공 카렌 실크우드가 [뉴욕타임스]의 기자를 만나 진실을 밝히려다가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된다는 스토리라인을 가지고 있는데 굳이 80년대식으로 표현하자면 운동권영화다. 감독상을 비롯해 5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수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한개의 오스카도 챙기지 못한 것은 아마도 아카데미의 보수적인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에프론이 자신의 기질 속에 내재되어 있던 냉소주의와 회의주의를 떨쳐버리고 일대 변신을 감행한 작품이 바로 세계적인 빅히트작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바야흐로 그녀 인생의 제2장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이후 최고의 시나리오 작가로 대우받게 된 에프론은 주로 뉴욕 중상류층의 수다스럽고 사랑스러운 여인들을 등장시켜 재치있는 대사와 세련된 유머로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개발하고 완성하여 오늘에 이른다.

에프론 인생의 제3장은 [행복찾기]와 더불어 시작된다. 말썽꾸러기 두딸을 키우며 코미디언으로 성공하려 발버둥치는 한 이혼녀의 이야기를 자신의 감독 데뷔작으로 선택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그런 뜻에서 이 영화에는 [이것이 내인생]이라는 영어원제가 훨씬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왜 감독일을 겸하게 됐느냐는 질문에 에프론은 당당히 대답한다. "내 시나리오를 보호하기 위해서지요. 감독들이 내 시나리오를 잘못 고치거나 잘못 연출하는 꼴을 더이상은 못봐주겠더라고요. 나는 작가로 남기 위해서 감독을 하는 겁니다."

[행복찾기] 이후로 그녀의 작가 크레딧에는 또 한명의 에프론이 등장한다. 바로 자신의 여동생 델리아 에프론이다. "감독한테는 시시콜콜 참견하고 이견을 말하는 작가가 필요한 거니까요." 최신작인 [지금은 통화중]은 델리아의 장편소설을 두 자매가 함께 각색하고 노라가 제작한 것이다. 그녀는 현재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여성영화인들의 대모와도 같은 존재다. 이쯤 되면 로맨틱 코미디의 여왕은 씩씩한 여전사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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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필모그래피

1982년 노먼 주이슨의 [베스트 프렌드](Best Friends) ⓥ
1983년 마이크 니콜스의 [실크우드](Silkwood) ⓥ★
1986년 마이크 니콜스의 [제2의 여인](Heartburn)  ⓥ
1989년 로브 라이너의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When Harry Met Sally) ⓥ★
          수잔 세이들먼의 [피터 포크의 마피아](Cookie) ⓥ
1990년 허버트 로스의 [FBI 증인](My Blue Heaven) ⓥ
1991년 로드 대니얼의 [더티 맨](The Super)  ⓥ
1992년 노라 에프론의 [행복찾기](This Is My Life) ⓥ
1993년 노라 에프론의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Sleepless in Seattle) ⓥ★
1994년 노라 에프론의 [라이프 세이버](Mixed Nuts) ⓥ
1996년 노라 에프론의 [마이클](Micheal)  ⓥ
1998년 노라 에프론의 [유브 갓 메일](You"ve Got Mail)  ⓥ
2000년 다이앤 키튼의 [지금은 통화중](Hanging Up) ⓥ

ⓥ는 비디오출시작
★는 아카데미 각본(색)상 후보작

[씨네21] 2000년 9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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