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심을 어루만지는 여심
멜리사 매티슨(Melissa Mathison, 1950- )
폭력과 섹스가 없는 블록버스터가 가능한가? 이전에는 아무도 감히 ‘예스’라는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그러므로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평범한 지구소년 엘리엇 테일러(Eliot Taylor)와 기이한 외계인 ET(Extra-Terrestrial)를 등장시켜 그들간의 따뜻한 교감과 절절한 우정을 차분하게 담아낸 아동용 소품이 전세계의 박스오피스를 뒤흔들었을 때 사람들은 모두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제와 다시 봐도 걸작이다. 이 영화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든 관객을 극장으로 끌어당길 만한 강력한 흡인력을 틀어쥐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어른이 된 우리 모두가 잃어버린 ‘영원한 동심의 꿈’이다. 그런 뜻에서는 [피터팬]과 같은 반열에 올려놓아도 뒤지지 않을 만한 동심의 우화요 현대판 요정담이라 할 수 있다.
ET(Extra-Terrestrial)의 시나리오를 꼼꼼히 들여다보면 이 작가가 얼마나 아이들의 세계를 잘 이해하고 있는지에 대하여 감탄을 금할 수 없게 된다. 아이들과 ET는 그들만의 방식으로 의사소통을 한다. 그들 모두가 공통의 적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은 단 하나, 어른들뿐이다. 그들이 파악하는 어른이란 ‘진실을 믿지 않고 비밀도 지키지 않으며 결국에는 자신들의 내밀한 기쁨을 빼앗아갈 존재’일 뿐이다. 엄마라고 해서 이 범주에서 예외가 되지는 않는다. ET가 전세계의 어린이들을 극장으로 끌어들이고 그들의 부모들까지 감동시킨 것은 바로 이와 같은 동심의 세계를 절묘하게 포착해냈기 때문이다.
이런 수준의 시나리오는 단순히 잔머리를 굴리거나 손끝을 놀려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멜리사 매티슨이 살아온 삶의 궤적을 좇아가다보면 참으로 엉뚱한 곳에서 그 비법의 실마리를 발견하고는 너털웃음을 터뜨리게 된다. 그녀는 작가가 되기 전에 직업적인 보모(babysitter)로 일해왔는데, 당시 그녀의 고객 중 하나가 바로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였던 것이다! 매티슨은 코폴라의 아이들을 사랑으로 돌봤고, 코폴라는 그런 그녀가 고마웠는지 [대부2](1974)의 로케이션 매니저 조수로 채용해줬는데, 그것이 그녀가 영화계와 맺은 첫 번째 인연이었다.
[img2]매티슨은 시나리오 데뷔작인 [흑마]에서부터 동심의 세계를 어루만지는 자신의 작품세계를 분명히 했다. 난파된 배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한 소년과 아라비아산 흑마(黑馬) 사이의 교감과 우정을 그린 이 영화는 지금까지도 최고의 가족영화로 손꼽힌다. 그리고는 두 번째 작품 를 통해 부와 명예는 물론 남편까지 얻는다. 1983년에 그녀와 결혼한 남자는 바로 같은 감독의 전작 [레이더스](1981)를 통해 오랜 무명배우 생활을 접고 이제 막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음한 해리슨포드였다. [이스케이프 아티스트]는 자신의 데뷔작인 [흑마]에서 촬영감독을 맡았던 칼렙 데샤넬의 감독데뷔작. 라이언 오닐의 아들인 그리핀 오닐을 마술사의 아들로 내세운 아동물인데 비평가들의 상찬을 받았다.
[3차원의 세계]의 두 번째 에피소드와 [영혼은 그대 곁에]로 스필버그와 내리 두 작품을 만든 다음 그녀가 택한 [리틀 인디언] 역시 전형적인 아동물인데 전작들에 비해서는 다소 수준이 떨어진다. 최근 우여곡절 끝에 국내 개봉한 마틴 스코시즈의 [쿤둔]이 그녀의 최신작인데 아무래도 너무 힘에 겨운 상대가 아니었나 싶다. 역시 어린이와 소년을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그 아이가 어디 보통 아이인가? 현존(kundun)하는 생불(生佛)로 추앙받는 달라이 라마가 주인공이니 동심 속의 불심(佛心)까지 드러내려 안간힘을 써댄 흔적이 역력하다.
이 아름다운 여심을 갈가리 찢어놓은 최근의 비보 하나. 멜리사 매티슨과 해리슨 포드는 지난 11월8일 이혼성명을 발표하고 17년간이나 지속되었던 결혼생활을 청산했다. 해리슨 포드가 자신보다 28살 연하인 여배우 라라 플린 보일과 새로운 사랑을 시작했기 때문이라나? 남들의 애정생활에 대하여 뭐라고 논평할 생각은 없다. 그저 갑자기 해리슨 포드의 최근작 [왓 라이즈 비니스](2000)가 상기될 뿐이다.
[img3]시나리오 필모그래피
1979년 캐럴 발라드의 [흑마](Black Stallion)
1982년 스티븐 스필버그의 [E.T. The Extra-Terrestrial] ⓥ
칼렙 데샤넬의 [이스케이프 아티스트](The Escape Aritist)
1983년 [3차원의 세계](Twilight Zone: The Movie) 중 스티븐 스필버그의 ‘깡통을 차라’(Kick the Can) ⓥ
1989년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혼은 그대 곁에](Always) ⓥ
1995년 프랭크 오즈의 [리틀 인디언](The Indian in the Cupboard) ⓥ
1997년 마틴 스코시즈의 [쿤둔](Kundun)
ⓥ는 비디오 출시작
[씨네21] 2000년 12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