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심산 등록일: 2006-07-12 20:26:59 IP ADRESS: *.51.162.4

댓글

0

조회 수

1801



[img1]

하이테크 액션의 개척자
스티븐 드 수자(Steven de Souza, 1948- )

오랫동안 몸담았던 회사에서 정리해고되어 크게 상심한 채로 27번째 생일을 맞은 한 백수청년이 TV에서 방영되고 있는 형편 없는 영화를 보다가 분통을 터뜨린다. 젠장, 내가 써도 저것보단 낫겠다! 그는 갑자기 시나리오 작가가 되겠다는 결심을 하고는 단숨에 두 편의 작품을 써서 할리우드로 날아간다. 이때 그가 마음속에 그어놓은 시한은 단 9일. 시나리오를 팔겠답시고 할리우드 주변을 몇년씩 서성거리다가 폐인이 되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귀가 아프도록 들어온 까닭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3일이 더 필요했다.

할리우드로 날아온 지 꼭 12일 만에 유니버설 스튜디오로부터 당시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TV시리즈 [600만불의 사나이] 작가팀으로 들어오라는 제안을 받은 것이다. 이렇게 어이 없을 만큼 간단하게 할리우드로 입성한 작가가 스티븐 드 수자다. 몇년간의 서브작가 시절을 거쳐 그가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쓴 최초의 TV시리즈가 우리나라에서도 크게 히트한 [레니게이드](1982). 같은 해 그는 시나리오 작가로서도 성공적인 데뷔를 하게 되는데 한정된 타임프레임 안에서 최대한의 볼거리와 격돌하는 캐릭터들을 솜씨 좋게 뒤섞어놓은 [48시간]이 그의 첫 작품이다. 이후 그는 연속해서 아놀드 슈워제네거를 기용한 두편의 작품 [코만도]와 [런닝맨]을 통해서 ‘액션영화의 새 장을 열어젖힌 작가’로 평가받게 된다.

주로 최신 병기와 두뇌플레이를 이용하는 그의 작품들은 [람보](1982)류의 무식한(?) 액션영화들을 구시대의 유물로 만들면서 ‘하이테크 액션’이라는 진일보된 장르를 개척해나간다. 특히 스티븐 킹의 원작소설을 각색한 [런닝맨]은 ‘한 세대를 뛰어넘는 새로운 액션’이라는 상찬을 받았다. 자신이 개척한 하이테크 액션에다가 신선한 캐릭터를 결합시켜 신화적인 흥행성공을 기록한 영화가 바로 [다이 하드].

[img2]

개인적으로 [다이 하드]야말로 완벽한 시나리오의 전형이라고 생각한다. 플롯과 캐릭터라는 시나리오의 양대 축이 이 영화에서만큼 완벽하게 융합되어 있는 작품을 찾기란 쉽지 않다. 브루스 윌리스가 맡은 존 매클레인이라는 캐릭터는 미국 액션영화사 속에서 찾아볼 수 있는 가장 매력적인 돌연변이다. 전통적으로 미국영화의 액션영웅들은, 험프리 보가트나 게리 쿠퍼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말수가 적고 근엄하며 탁월한 개인이다. 그런데 이 존 매클레인이라는 캐릭터는 정반대. 수다스러울 뿐 아니라 경박하며, 끊임없이 구시렁대고, 가정불화에다가 알코올중독까지 겹쳐 있는 형편없는 남자인 것이다. 그뿐인가? 단 한번의 총질로 악당들을 싹 쓸어버리기는커녕 보기에도 안쓰러울 만큼 계속 당하면서 ‘죽도록 고생하기’(die hard)가 이 남자의 특기다. 그런데도 관객은 이 남자의 액션에 환호하니 놀라운 일이 아닌가?

[다이 하드]에서 맺은 브루스 윌리스와의 행복한 인연은 이후 [허드슨 호크]까지 이어진다. 유일한 감독 작품인 [스트리트 파이터]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컴퓨터 오락게임을 영화로 옮겨놓은 것인데 킬링타임 이상의 의미를 찾기는 힘들다. 인기TV만화를 각색한 [고인돌 가족 플린스톤]은 국내에서는 썰렁한 반응을 얻었지만 미국을 포함한 세계 전역에서는 엄청난 흥행수익을 올린 작품.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망가진(!) 모습이나 고참 펑크그룹 B-52’s의 콘서트 장면을 즐길 수 있는 일급 오락영화다.

[저지 드레드] 역시 베스트셀러 출판만화가 원작인데 할리우드 일급배우들의 매너리즘 연기경연이 볼 만하다. 최신작은 서극의 할리우드 진출 두 번째 작품인 [넉 오프]. “나는 숱한 액션영화 시나리오들을 써왔지만 액션의 강도(强度)나 속도감이 기본적인 스토리를 압도한 적은 단 한번도 없습니다.” 액션의 심리학자 스티븐 드 수자는 말한다. “액션영화에서는 논리적 개연성이 확고한 플롯이 최우선입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캐릭터에 더욱 신경을 써야지요.” 최근에 개봉된 우리 영화 [싸이렌]과 [단적비연수]를 보니 그가 왜 이런 소리를 하는지가 절절히 느껴진다.

[img3]

시나리오 필모그래피

1982년 월터 힐의 [48시간](48Hrs)ⓥ
1985년 마크 레스터의 [코만도](Commando)ⓥ
1987년 폴 마이클 글레이저의 [런닝맨](The Running Man)ⓥ
1988년 앤드루 플레밍의 [악령의 분신](Bad Dream)ⓥ
1988년 존 맥티어넌의 [다이 하드](Die Hard)ⓥ
1990년 레니 할린의 [다이 하드2](Die Hard 2)ⓥ
1991년 마이클 레먼의 [허드슨 호크](Hudson Hawk)ⓥ
1991년 러셀 멀케이의 [닉크](Ricochet)ⓥ
1994년 존 랜디스의 [베벌리 힐즈 캅3](Beverly Hills Cop 3)ⓥ
1994년 스티븐 드 수자의 [스트리트 파이터](Street Fighter)ⓥ
1994년 브라이언 레번트의 [고인돌 가족 플린스톤](The Flinstones)ⓥ
1995년 대니 캐넌의 [저지 드레드](Judge Dread)ⓥ
1998년 서극의 [넉 오프](Knock Off)ⓥ

ⓥ는 비디오 출시작

[씨네21] 2000년 12월 5일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6 시나리오를 쓰며 함께 늙어가다/Frances Goodrich(1890-1984) & Albert Hackett(1900-1995) file 심산 2006-07-12 1925
» 하이테크 액션의 개척자/Steven de Souza(1948- ) file 심산 2006-07-12 1801
24 미국적 이상주의의 전도사/Robert Riskin(1897-1955) file 심산 2006-07-02 1751
23 할리우드를 이끌어갈 젊은 작가/Andrew Kevin Walker(1964- ) file 심산 2006-07-02 1944
22 동심을 어루만지는 여심/Melissa Mathison(1950- ) file 심산 2006-07-02 1736
21 뉴욕의 수다장이 아줌마/Nora Ephron(1941- ) file 심산 2006-06-28 2035
20 멋지게 늙어가는 할머니/Elaine May(1932- ) file 심산 2006-06-28 1833
19 불교에 귀의한 폭력영화 작가/Sterling Silliphant(1918-1996) file 심산 2006-06-28 1985
18 유명한 미지의 작가/David Koepp(1964- ) file 심산 2006-06-25 2187
17 "더 이상은 못 참아!"/Paddy Chayefski(1923-1981) file 심산 2006-06-25 1915
16 차이나타운에서 미션 임파서블까지/Robert Towne(1934- ) + 1 file 심산 2006-06-25 2307
15 조숙한 신동, 진중한 노인/Waldo Salt(1914-1987) file 심산 2006-06-25 2024
14 기품 있는 사계절의 사나이/Robert Bolt(1924-1995) + 1 file 심산 2006-06-25 2107
13 사랑을 일깨우는 코미디의 황제/Neil Simon(1927- ) file 심산 2006-06-24 2123
12 승산 없는 싸움에 나선 사내들/Carl Foreman(1914-1984) file 심산 2006-06-24 1918
11 하드보일드 필름누아르의 아버지/Raymond Chandler(1888-1959) file 심산 2006-06-24 2182
10 히피세대의 르네상스맨/Sam Sheppard(1943- ) file 심산 2006-06-24 2008
9 셰익스피어와의 농담 따먹기/Tom Stoppard(1937- ) file 심산 2006-06-24 2177
8 장르영화의 수정주의자/David Webb Peoples(1940- ) + 2 file 심산 2006-06-05 2046
7 정체성을 찾아 떠나는 위험한 여행/Christopher Hampton(1946- ) + 4 file 심산 2006-06-05 21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