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의 봄]의 토마스
영화일에 몸 담고 있다보니 이따금씩 이런 질문들을 받는다. 제일 좋았던 영화가 뭐에요? 영화배우로는 누굴 좋아해요? 자신과 가장 닮았다고 생각하는 영화 속 캐릭터는? 첫 번째와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늘 바뀐다. 하지만 세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한번 발설된 다음 전혀 바뀔 기미가 없다. 바로 필립 카우프만의 영화 [프라하의 봄]에 나오는 토마스(대니얼 데이 루이스)다.
토마스에 대한 자아도취적 감정이입은 사실 [프라하의 봄]이 완성되기 훨씬 전부터 이루어졌다. 누구나 넘겨짚을 수 있듯 이 영화의 원작소설인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고 난 다음부터다. 쿤데라는 캐릭터의 외모에 대해서는 거의 묘사하지 않는 작가다. 덕분에 나는 그가 도대체 어떻게 생겼으며 어떤 표정을 지을지 상상할 수 없었다. 하지만 소설 속의 그가 이런 말을 하고 저런 행동을 할 때 나는 그 속마음을 낱낱이 읽어내고는 복잡한 미소를 짓곤 했다. 그의 속마음을 읽어내는 것은 쉬운 일이다.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된다.
그는 삶과 역사의 불공평함과 무의미함을 냉정하게 직시할 줄 아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참을 수 없는' 불공평함과 무의미함에도 불구하고 삶과 역사에 '참여'한다. 대신 그 참여의 대가로 보상을 바라지는 않는다. 그에게 소중한 것은 삶의 '비공식 부문'이다. 그는 이 비공식적인 실존의 차원에서 유니크한 쾌락을 추구한다. 페시미스트가 추구하는 쾌락의 대상은 다양하다. 그것은 우정 같은 섹스일 수도 있고, 카페의 유리창을 닦는 것일 수도 있으며, 호프를 따다가 문득 고개 들었을 때 시야를 가득 메워오는 광활한 평야의 고요함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고개부터 저었다. 그 어떤 배우도 토마스를 연기해낼 수는 없으리라고 지레짐작했던 것이다. 그러나 영화를 보니 찬탄이 절로 나왔다. 대니얼 데이 루이스는 이 복잡미묘한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해냈던 것이다. 삶이 고통과 몰이해 속에서 허우적댈 때, 나는 이따금 대니얼 데이 루이스가 연기해낸 토마스의 미소를 떠올리며 위안을 얻는다. 그것은 정현종의 표현을 빌자면 "生의 기미를 아는 당신"의 미소다. 그가 죽기 직전에 남긴 마지막 대사도 마음에 든다. 테레사가 묻는다. "무슨 생각해요?" 토마스가 빙긋 웃는다. "나는 정말 행복하구나, 하는 생각."
월간 [좋은 생각] 2004년 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