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끊고 뛰어내려라
가이 매노스 [컷 어웨이](2000)
가이 매노스는 익스트림 스포츠계와 액션영화 스턴트계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그는 무엇보다도 스카이다이빙으로 유명한데 여지껏 1만회 이상을 하늘에서 뛰어내렸으며 모두 26개의 세계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1988년 서울올림픽 개막식 당시 하늘을 가르며 날아와 주경기장에 사뿐히 착지했던 놀라운 묘기의 장본인이기도 하다. 극한의 위험 속에서만 희열을 느낀다는 그는 [클리프 행어] [이레이저] [고공침투] 등의 영화 속에서 펼쳐진 고난도의 액션을 맡은 초특급 스턴트맨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어깨 너머로 할리우드 액션영화의 제작 기법들을 모두 익힌 이 희대의 모험가는 전혀 새로운 프로젝트를 창안해낸다. 세계 최강의 스카이다이버들과 스카이다이빙 촬영자들을 모두 모아 '골든 패러수트 엔터테인먼트'라는 영화사를 차린 것이다. 가이 매노스가 이 영화사를 통하여 만든 첫번째 작품이 바로 [컷어웨이](2000)이다. 그가 시나리오와 스턴트 지도 그리고 감독까지 겸한 이 영화는 배우와의 계약서에 "직접 스카이다이빙을 해야 한다"는 기상천외한 요구조건을 내세워 촬영 전부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도대체 시속 200km로 하늘에서 떨어지며 연기를 해야한다는 이 끔찍한(!) 계약서에 기꺼이 사인한 배우들은 누구일까? 최고의 스카이다이버이면서 동시에 마약 운반책인 레드라인 역할은 톰 베린저가 맡았고, 미국 관세요원이면서 마약조직을 일망타진하기 위하여 위장잠입한 빅터는 스티븐 볼드윈이 맡았다. 개인적으로 누구보다 반가웠던 배역은 미국프로농구계의 소문난 악동 데니스 로드맨이다. 그는 자신의 성품 그대로 건방지고 포악하되 최고의 기량을 갖춘 스카이다이버 터보 역할을 맡아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를 보여준다.
그러나 최고의 모험가라고 하여 곧 최고의 영화감독이 되는 것은 아닌 듯하다. 플롯이나 캐릭터 따위를 놓고 따질 때 [컷어웨이]는 그다지 뛰어난 영화라고 할 수 없다. 다만 오금이 저리고 가슴이 후련해지는 스카이다이빙 장면들만은 원없이 만끽할 수 있다. 제목으로 쓰인 '컷어웨이'란 '주낙하산이 펼쳐지지 않을 때 그것을 잘라내고 보조낙하산을 펼치는 행위'를 뜻하는 전문용어인 동시에 '진정으로 네가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현실에 대한 모든 미련을 아낌없이 잘라버려야 한다'는 이 영화의 '난폭한' 주제를 암시한다.
[한겨레] 2004년 3월 3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