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박한 공기 속으로
로버트 마르코비치 [인투 씬 에어](1997)
해발 8천미터에 오르면 공기 중의 산소 농도가 평지의 3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이 ‘희박한 공기’ 속에서 인간의 육체와 정신은 극한의 벼랑 끝으로 내몰리기 마련이다. 산악인들은 그래서 이 특수한 시공간을 ‘죽음의 지대’라고 부른다. 이곳은 곧잘 인간의 의지와 이성의 통제를 무력화시키곤 한다. 산악문학으로는 드물게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오른 존 크라카우어의 [희박한 공기 속으로]는 바로 이 죽음의 지대에서 펼쳐지는 비극적인 상황들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책으로 유명하다.
1996년 5월 10일, 에베레스트 죽음의 지대에서는 무려 18명이 조난당하는 대참사가 벌어진다. 사고 당일 정상에 올랐던 산악인 겸 작가 존 크라카우어가 증언하는 그들의 최후는 책을 읽어 내려가기가 버거울 만큼 고통스럽다. 동시에 그 극한의 상황에서도 기적처럼 피어나는 뜨거운 인간애의 편린들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기도 한다. 국내에도 번역 출간되어 있지만 별반 호응을 얻지 못했던 이 책을 나는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추구해야될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역설적으로 증언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 디브이디(DVD)로 출시되어 있는 로버트 마르코비치 감독의 [인투 씬 에어](1997년)는 존 크라카우어의 [희박한 공기 속으로]를 그대로 스크린에 담아낸 영화다. 할리우드식 산악영화들 속에는 결핍되어 있는 ‘고통스럽지만 우직한 진실’이 이 작품 속에는 있다. 박대장의 조난소식을 듣고 한 동안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던 나는 불현듯 이 작품을 기억해냈다. 그리고는 홀린 듯 영화를 다시 보는 내내 소리 죽여 울었다. 희박한 공기 속으로 떠나가 버린 우리의 자랑스러운 세 산악인 박무택 백준호 장민! 부디 편히 눈을 감고 극락왕생하시라!
[한겨레] 2004년 5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