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잊지못할 12번째 샷
론 셸튼 [틴컵](1996)
론 셸튼의 영화가 늘 그래왔듯 [틴컵] 역시 어른들의 유머와 시적인 대사들로 그득하다. 로이가 병맥주를 홀짝이며 주정하듯 늘어놓는 골프예찬론은 그대로 한편의 서정시다. 골프와 섹스의 공통점으로 “능숙하지 못해도 즐길 수 있다”는 것을 내세울 때면 그의 전작인 [19번째 남자]가 연상되기도 한다. 이 영화가 전작을 뛰어넘는 면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로이라는 캐릭터다. 언제나 일을 망치곤 하는 ‘못된 성격’의 핵심인 될대로 되라 식의 허무주의와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파워가 묘한 여운을 남기는 것이다.
안전하게 치면 된다. 버디면 우승이고 파면 비겨서 연장전에 들어간다. 그런데 굳이 이글을 노릴 필요가 있을까? 로이는 그러나 이글을 노린다. 첫 번째 공이 그린에 안착하는가 싶더니 그대로 뒤로 굴러 연못 속으로 빠진다. 그리고 두 번째 공, 세 번째 공, 네 번째 공도. 이제 우승은커녕 연장전도 물 건너갔다. 그래도 로이는 계속 같은 시도를 한다. 시골뜨기의 스타 탄생을 기대하던 갤러리들은 물론이거니와 방송진행자들마저 진저리를 쳐대며 욕설을 퍼붓는다. “저 친구 완전히 미쳐버린 거 아니야”
광기와 집요함에 사로잡힌 로이는 결국 12번째 샷에서 성공한다. 엄청난 비거리를 날아 연못을 완전히 건너뛰었을 뿐 아니라 홀인원까지 이룩해낸 것이다. 갑자기 목이 메이며 혼란에 빠진다. 이것은 성공인가 실패인가? 선뜻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몰리는 그에게 달려와 와락 안기며 사랑에 빠진 여인만이 들려줄 수 있는 대답을 선사한다. “5년만 지나면 올해 US오픈 우승자가 누구였는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거에요. 하지만 당신이 오늘 친 12번째 샷은 영원히 기억될 거에요!”
[한겨레] 2004년 1월 14일자
능숙하지 못해도 즐길 수 있다.. 멋진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