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파스트의 권투와 사랑
짐 쉐리단 [복서](1997)
짐 쉐리단 감독의 [복서](1997)는 이 벨파스트라는 ‘골치 아픈’ 공간 속에서 권투와 사랑의 의미를 묻는다. 이 영화 속에서는 민족주의와 종교적 갈등 그리고 조직과 개인의 투쟁이 서로 떼어놓을 수 없도록 엇물려 있다. 대니라는 캐릭터의 실제 모델은 한때 페더급 세계챔피언으로서 아일랜드의 국민적 영웅이었던 배리 맥기건이다. 그는 자신이 느꼈던 고통과 환희의 순간들을 영화 속에 그대로 표출시키고자 스크린 뒤의 트레이너 역을 기꺼이 떠맡았다.
대니는 정치적 환멸과 조직의 쓴맛을 두루 맛본 씁쓸한 사내다. 그가 고향으로 돌아온 이유는 단 하나, 과거의 연인이었던 메기(에밀리 왓슨)를 되찾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메기는 이미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되어 있고, 그 남자마저 IRA활동으로 현재 투옥 중이다. 대니는 이 모든 엄혹한 현실에 맞서 권투에만 전념한다. 이 영화 속에서 권투란 상처받은 남자가 자신을 지키고 증명하는 유일한 수단이다. 그리고 이제 자신에게 남겨진 유일한 가치인 사랑이 위협받게 되었을 때 그는 최후의 일전을 치루기 위하여 다시 링에 오르게 된다.
[복서]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영화다. 이 영화는 정치와 혁명과 사랑에 대하여 심각한 실존적 질문을 던진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압도적인 것은 다름 아닌 대니얼 데이 루이스의 연기다. 그가 아카데미 촬영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크리스 멘지스와 함께 완성해낸 치열하고 박진감 넘치는 권투 시퀀스들은 보는 이를 전율하게 만든다. 그를 포함하여 조연과 단역을 맡은 거의 모든 배우들이 영국이 자랑해 마지않는 왕립 셰익스피어극단 출신들이니 모처럼 ‘최고의 연기들로 가득 찬 성찬’을 마음껏 맛볼 수 있는 영화다.
[한겨레] 2004년 3월 17일자
하긴 아일랜드라는 곳 자체가 극적인 곳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