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함 뒤에 숨은 비정한 세계
테드 코체프 [달라스의 투혼](1979)
프로선수는 그 자체로 하나의 독립된 주식이다. 주가가 오르면 주식의 소유자가 돈을 번다. 하지만 주가가 떨어지면 재빨리 팔아버리는 게 상책이다. 아무리 값을 낮춰도 사갈 사람이 없다면 그것은 이미 휴지조각이다. 휴지조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기껏해야 코를 푸는 데 쓰거나 찢어버릴 따름이다. 자본주의는 화려하면서도 비정하다. 테드 코체프 감독의 미식축구영화 [달라스의 투혼](1979)은 프로스포츠라 이름 붙여진 자본주의의 비정한 시장논리를 고통스럽게 응시한다.
필(닉 놀테)은 매일 아침 고통 속에서 깨어난다. 일종의 직업병이다. 그의 직업인 미식축구 자체가 격렬한 몸싸움을 요구하는 경기이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의 ‘강철같은 몸뚱아리’란 이미 추억 속의 전설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체력이 딸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고 플레이 역시 마음 먹은대로 되지 않는다. 한 마디로 이제 은퇴할 일밖에 남아 있지 않은 퇴물선수가 된 것이다. 하지만 필은 은퇴를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미식축구를 사랑한다는 것은 어쩌면 입에 발린 소리일 뿐이다. 필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오직 미식축구밖에 없는 것이다.
[달라스의 투혼]을 보면서 자본주의를 생각한다. 그 화려한 외양 밑에 숨겨진 쓰라린 절규를 직시하는 일이 고통스럽다.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프로선수란 화려한 스타가 아니라 고용상태마저 불안정한 비정규직 노동자일 뿐이다. 필의 효용가치가 다 되었음을 직감한 구단주는 등을 돌린다. 본래 자본주의가 등을 돌릴 때는 칼바람이 이는 법이다. 구단주가 사립탐정까지 고용하여 필의 뒷조사를 한 끝에 그의 약물복용 사실을 밝혀내어 일방적인 무보수 해고를 통고하는 장면에 이르러서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염병할, 정말 먹고살기 힘든 세상이로군!
[한겨레] 2004년 4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