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고 쓰는 열정의 현장
[필름2.0] 기획기사(2) 시나리오학교
시나리오 작가를 꿈꾸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찾는 곳은 시나리오 학교다. 신진 작가들이 거쳐 가는 첫 번째 관문인 시나리오 학교에서 지금 변화가 일고 있다.
이야기를 다루는 매체 중 영화 시나리오는 특히 기술이 어느 정도 요구된다. 그래서 처음 시나리오를 쓰려고 하거나, 혼자 시나리오를 쓰다 막히는 부분이 있는 사람들은 학교를 찾는다. 영화과를 제외하고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고 있는 사설 학교 중 가장 많은 학생들이 강의를 듣고 있는 ‘심산스쿨’과 ‘한겨레문화센터 시나리오 과정’을 찾아가 봤다.
먼저 심산스쿨은 현재 가장 활발하게 수업이 진행되고 있고, 그만큼 많은 성과를 내고 있는 시나리오 학교다. 시나리오 강의에 있어 하나의 브랜드가 된 심산을 비롯, <101번째 프로포즈><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노효정, <화산고><싱글즈>의 박헌수, <왕의 남자><라디오스타>의 최석환 작가까지 다양한 스타일의 작가들이 강의 중이다. 각 강사마다 특화된 스타일과 장점이 있긴 하지만 심산스쿨의 방향은 하나다. 상업영화를 목표로 팔릴만한 시나리오를 쓰는 것이다.
심산스쿨은 지금 두 가지에 중점을 두고 있다. 첫 번째는 당연히 워크숍, 즉 수업이다. 심산 씨는 “시나리오의 작품성이 어떻다거나 그런 이야기는 안한다. 제작비가 많이 들어서 찍기 힘들겠다거나, 너무 어두운 이야기라 투자가 잘 안되겠다거나 그런 식”이라고 말한다.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이야기를 하는데 필요한 기본적인 작법이다. 학생들의 관심 또한 ‘재미있는 이야기’와 ‘영화화 가능성’에 집중된다. 그래서 심산스쿨에서는 쓰는 것만큼이나 다듬는 것도 중요한다. 꼼꼼한 분석과 질책은 가끔씩 지나치다 싶을 때가지 계속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는 심산스쿨의 두 번째 역할을 가능케 한다. 바로 에이전시의 역할이다. 대부분의 시나리오 작가들은 사회생활 경험이 적다. 그래서 공모전에 당선돼 제작사와 계약을 하더라도 여러 가지 예상치 못했던 일들로 인해 영화화가 좌절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수많은 졸업생 중 40여명으로 이뤄진 ‘크레딧클럽’은 그래서 만들어졌다. 작가들에게는 현실적인 부분에 대한 조언과 함께 보호의 기능을 하고 영화사들에게는 좋은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직거래하는 통로가 된다. 이는 시나리오 작가의 처우에 대한 문제점들도 어느 정도 보완해 준다. 이미 유영아씨가 <웨딩드레스>로, 한수련씨가 <미인도>로 좋은 조건의 계약을 하는 등,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고 있는 중이다.
한겨레문화센터 시나리오 과정은 12년의 역사를 가진 전통의 인기강좌다. 지난해까지 3개월 과정이던 것을 올해부터 6개월 과정으로 기간을 늘리고 이론과 함께 실전 트레이닝을 강화했다. 심산에 이어 3년 전부터 담당강사로 활약하고 있는 이는 <공공의 적><이중간첩>등의 각본을 맡았던 백승재 작가. 그는 글쓰기가 익숙지 않은 예비 작가를 대상으로 하는 만큼 기본 작법에 충실한 교육을 모토로 삼고 있다. 또한 수강생들과 수료 후에도 모니터링을 함께한다. 한겨레문화센터 시나리오 과정의 가장 큰 특징은 활발한 토론과 스터디 모임이다. 기수별로 진행되는 스터디를 통해 올해 막둥이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캐주얼 키드>로 당선된 임경진씨와 지난해 시나리오마켓4/4분기 <내 남자들>로 최우수상을 수상한 현은미 씨처럼 하나둘씩 공모전 당선작들이 나오고 있다.
한편 오늘날 시나리오 작가를 꿈꾸는 이들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을까? 백승재 작가는 “요즘 수강생들은 장르적 재미와 매력이 있는 범죄물과 스릴러 등에 관심이 많아 보인다”고 한다. 심산 씨 역시 “수강생들은 대부분 누아르와 스릴러를 좋아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웬만큼 잘 쓰지 않으면 잘 썼다는 생각이 안 드는 장르”라고 충고했다. 실제로 심산스쿨 설문조사결과 많은 학생들이 로맨틱 코미디와 멜로드라마를 써보고 싶다는 견해를 밝혔다. 예산이 적게 들면서도 신인 작가가 구성하기에 비교적 수월한 장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생들의 경우 대부분 시나리오 작가로서의 전망을 어둡게 보고 있는 편이다. 그렇지만 그런 가시밭길 위에서도 목표만은 분명했다. 자신의 꿈을 스크린으로 옮기거나, 관객들이 원하는 꿈을 영상으로 보여주겠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관객으로 꾸준히 영화를 봐오며, 아쉽다고 생각한 부분들을 스스로의 힘으로 채워나가고자 하는 이들은 미래 한국 영화계를 풍성하게 만들 보석들이다.
문성원, 김교석 기자
심산스쿨의 크레딧 클럽 유영아 작가
주변의 이야기가 최고의 소재
유영아 씨는 심산스쿨 ‘크레딧클럽’의 1번 타자라 할 수 있다. 이미 2006년 경기영상위원회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안성남사당패를 다룬 <바우덕이>(유영수씨와 공동 집필)로 테마상을 받았던 그는 심산스쿨 17기 워크숍동안 쓴 <웨딩드레스>로 제작사 싸이더스FNH와 계약을 맺었다. 현재 내년 개봉을 목표로 각색 작업이 진행 중이다. 제목만 봤을 때는 로맨틱 코미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웨딩드레스>는 로맨틱과도, 코미디와도 거리가 멀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초등학교 2학년 정도의 여자아이와 혼자 아이를 키우는 엄마다. 웨딩드레스를 만들지만 정작 자신은 웨딩드레스를 입어본 적이 없는 엄마는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다.
여기까지만 들어도 ‘뻔한 신파 아니냐’고 말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뻔한 신파가 맞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이 이야기가 유영아씨 자신의 경험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실제로 낮에는 중국어 강사를 하며, 밤에는 시나리오를 쓰며 딸아이를 키우고 있는 유영아씨는 어느 날 딸을 보며 “내가 이러다 죽어버리면 이 애는 어떡하지”라는 생각을 했다. 결국 2주 동안의 구상과 함께 단 3일 만에 시나리오가 완성됐다. 그가 눈물을 삼키며 쓴 이 작품은 결국 제작사 관계자들을 울게 만들었다. 이처럼 유영아씨의 강점은 자신의 경험을 보편적 이야기로 끌어내는 대중적 감성이다. 많은 사람들이 칭찬하는 그녀의 대사는 그곳에서 시작된다. “나는 왜 시나리오를 쓰면 캐릭터가 다 나 같을까. 그게 딜레마다”라고 말하지만, 그녀는 벌써 퀭한 눈으로 출근 전 양치질을 하는 자신의 모습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이야기로 다음 시나리오를 준비 중이다.
문성원 기자
[필름2.0] 2007년 7월 10일
2)백승재 작가는 한국시나리오작가조합 소속 작가이고, 나는 그 조합의 공동대표이다. 그리고 시나리오마켓은 한국영화시나리오마켓 운영위원회에서 운영하는데, 그 운영위원장은 나다. 그렇다면 이건 또 어떻게 되는 이야기인지...? 에휴, 내가 얼른 이런 저런 공직들을 관둬야지! 이제 8월말이면 운영위원장 임기가 끝나는데 그것만 기다리고 있다...^^
3)문성원 기자는 큰 실수를 했다. 우리의 '유영아'를 '이영아'라고 표기한 것이다(위의 글에서는 물론 바로 잡았다). 작가에게 제일 중요한 것이 이름인데 그것을 제멋대로 바꿔쓰다니...문기자, 당신 이제 죽었어! 유작가 눈에 띄면 바로 죽음이야...^^
4)어쨌든 유영아, 네 사진이 영화전문지에 저렇게 크게 나온 건 처음이지? 이번 인터뷰의 내용과 형식이 맘에 안 들었던 모양인데...인터뷰 잘 하는 것도 작가의 능력이야! 앞으로는 제대로 좀 하도록 해...어찌되었건 [필름2.0]에 제대로 데뷔한 거, 축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