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각본, 영진위에서 '빵점' 매겼다
칸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은 이창동 감독의 <시>는 정작 국내에선 시나리오 수준이 낮다며 영화진흥위원회 제작지원 공모에선 두차례나 떨어진 영화였다. 지난해 영진위 지원사업 응모에서 한 심사위원에게 ‘0점’을 맞는 수모까지 겪었다. 상당수 영화 관계자와 누리꾼들은 한국과 외국의 전혀 다른 평가에 대해 의아해하며 당시 영진위의 심사에 비난과 조롱을 퍼부어대고 있다.
<시>는 지난해 7월 영진위의 마스터영화제작 지원사업 첫 공모에서 평점 평균 70점을 넘겨야 하는 항목을 충족시키지 못해 과락으로 떨어졌다. 한 심사위원이 ‘<시> 시나리오가 각본 형식이 아니라 소설 같은 형식’이라는 이유로 0점을 준 것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심사 규정상 당시 심사위원은 밝혀지지 않았다.
이어 <시>는 지난해 말 2차 마스터영화제작 지원사업에서도 다시 떨어졌다. 영진위는 당시 “영진위가 실시하는 다른 시나리오 공모사업에 비해 지원작들의 시나리오 개발 수준이 떨어지는 작품들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영진위의 마스터영화제작 지원사업은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의 국제적 브랜드 이미지를 제고하고 적극적인 해외 진출을 도모하는 한편, 국제 경쟁력을 인정받은 영화감독의 제작 프로젝트 지원을 통해 영화 제작을 활성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선정작을 뽑아 6억원을 지원한다.
그러나 이런 명분과 달리 이창동 감독 등 국제 영화제에서 수상하거나 호평받은 감독들을 탈락시켜 뒷말이 무성했다. 영진위가 참여정부의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낸 이 감독을 의도적으로 배제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영화계 한 관계자는 <한겨레>와 전화통화에서 “영진위가 시나리오가 나쁘다고 지원을 안 해 준 <시>가 시나리오로 최고 영화제 상을 받은 건, 결국 최근 영진위 지원심사가 얼마나 엉터리이고 난맥상인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며 “영화계를 정치적으로 편가르는 영진위의 비문화적 행태가 빚어낸 씁쓸한 장면”이라고 꼬집었다.
한편 부임 이후 ‘우파 영화 몰아주기’ 논란을 빚고 있는 조희문 영진위원장은 이번 칸 영화제를 방문한 동안 <시> 시사회는 참석하지 않고 돌아온 것으로 확인됐다. 조 위원장은 칸 출장 기간에 독립영화 제작지원 심사위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특정 작품을 선정하라는 압력을 넣은 사실이 드러나자 19일 부랴부랴 귀국해 해명 기자회견을 했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한겨레] 2010년 5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