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의 슬픈 현주소
-곽지균 감독 자살
'겨울나그네'의 故곽지균(56) 감독이 25일 자살로 생을 마쳤다. 사인은 연탄가스로 인한 자살. 고인은 노트북에 유서를 남겼고 그 안에는 "일이 없어 괴롭고 힘들다"는 글이 남아 있었다. 한국의 대표적인 영화 시상식인 대종상에서 3차례나 수상한 곽 감독이 '일이 없다'는 글을 남겼다.
2010년 현재 1000만 관객을 수차례나 배출한 한국 영화계에서 절정기에 곽 감독이 남긴 이 짧은 글은 한국 영화계의 현 주소를 극명히 보여주고 있다. 90년대 중흥기를 거쳐 2000년대에 양적, 질적으로 크게 성장한 한국 영화계, 동네 곳곳에 많게는 십여개에 가까운 대형 상영관을 갖춘 멀티 플렉스 영화관이 존재하는 우리 영화계는 어느 순간 그 판도가 크게 바뀌었다.
곧바로 되는 영화와 안되는 영화가 극명히 갈리게 된 것. 과거에는 작품성이 있고, 대본이 좋다면 소규모 자본을 들여서 적은 수의 영화관을 잡아서라도 상영이 가능했지만 현재 우리 한국 영화계에는 그마저 힘들다. 한국 영화의 양적 성장은 대형 제작사와 멀티 플렉스가 있기에 가능했지만 그와는 반대로 작품성을 갖춘 소규모 예술영화에는 등을 돌리게 되고, 어느 순간 특정 장르에만 투자자가 몰리게 됐다.
한 영화제작자는 이 같은 한국 영화계에 대해 "많은 것을 잃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 제작자는 "양적으로 한국 영화가 성장했지만 그 근본이 되는 작가주의 작품. 즉, 감독이 도제식으로 만드는 영화가 아닌 투자자의 입김에 의해 대본마저 고쳐지고 있는 현실"이라고 영화계의 현주소를 비판했다. 한국 영화의 중흥기와 전성기를 모두 활동해 온 배우 박중훈 또한 최근 가진 인터뷰에서 "천만 관객이 드는 영화도 좋지만, 어느 순간 작은 작품들이 사라지고 있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실제로 현 한국 영화계를 좌지우지 하는 것은 영화의 흥행성적이다. 될만한 영화에 투자자가 몰리고, 높아진 배우의 몸값은 작은 영화의 감독이 출연 제의조차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수 많은 영화배우들은 글로벌 경제위기로 영화계에 대한 투자가 줄자 브라운관으로 진출하는 등, '적은 돈'을 받는 영화 보다는 '많은 돈'을 받고 다른 길을 걷기도 했다.
자본주의 경제시장에서 상업영화를 좌지우지 하는 것은 분명 '돈'이다. 하지만 한국 영화는 어느 순간부터 흥행 실패를 겪으면서 손해를 안겨준 감독에게는 재기의 기회조차 주지 않고 있다. '겨울 나그네'로 화려한 감독 데뷔를 했던 곽 감독은 결국 90년대 중반 이후 한국 영화의 중흥기에 그렇게 작품 활동을 줄여야만 했고, 결국 2000년대에 잇따라 발표한 2개의 작품이 실패하면서 좌절을 겪게 했다.
대종상을 세 차례나 수상한 감독이 작품이 없어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국 영화계. 곽 감독의 자살은 천만 관객 속에 가려진 한국 영화의 어두운 그늘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마이데일리] 2010년 5월 26일
그때도 술을 많이 마셨고...술 마시면 꼭 눈물을 보이는
가슴 여린 사내였는데...'우리의 현실'을 버티기가 버거웠나 보다
그저 고인의 명복을 빌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