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고도 무거운 존재들의 합창
심 산(심산스쿨 대표)
내가 기억하는 최고의 연애소설은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눈알을 부라리며 과연 이게 연애소설이냐고 다그쳐 온다면 당당하게 맞받아칠 자신은 없다. 이 소설 속에 다양한 형태의 연애 이야기들이 나오는 것은 사실이다. 그 연애들이 꼭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각각의 연애담들이 이른바 연애라고 불리우는 현상의 어떤 본질을 유머러스하면서도 따뜻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그것들은 때로는 우리를 가슴 설레게 하고 때로는 우리를 가슴 아프게 하는 ‘연애’라는 것의 존재론적 메카니즘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며 내가 해왔던 연애행각들을 되짚어 볼 수 있게 되었고 그 안에 숨겨져 있던 비밀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왜 그녀에게 끌렸던가? 그녀는 왜 내게 상처를 줬을까? 나는 그녀의 어떤 면을 참을 수 없었나? 두 사람이 진정으로 서로를 원하는 데도 결국은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무엇인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이 모든 평이하나 본질적인 질문들에 대하여 나름대로의 답안지를 제출한다. 과장된 감정은 오래 가지 않는다. 상처는 치유될 수 없다. 하지만 과잉되었던 감정과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이해’할 수는 있다. 어떤 것을 ‘이해’하는 일이야말로 예술작품을 감상하거나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필수적인 행동이다.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이 소설에는 네 명의 캐릭터가 등장한다. 존재론적 바람둥이 토마스, 일부일처제의 화신 테레사, 한없이 가벼워지려는 사비나, 일편단심 민들레 프란쯔. 이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 나를 웃음 짓게 만든 것은 토마스였다. 나는 토마스라는 캐릭터 안에서 나 자신의 정체성을 읽어냈고 그를 비로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가면서 나는 깨달았다. 저 네 명의 캐릭터는 결국 한 사람의 서로 다른 표현일 뿐이다. 내 안에는 토마스 이외에도 프란쯔가 있고 심지어 사비나와 테레사도 있다. 연애의 이해란 결국 삶의 이해에 다름 아니다. 이 세상에 한 없이 가벼운 존재는 없다. 동시에 마냥 무겁기만 한 존재도 없는 것이다. 그들의 합창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오는 듯 하다.
월간 [샘터] 2006년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