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허름한 책을 한 권 세상에 내놓고 난 뒤 날아갈 듯 상쾌한 기분이다. 산과 산서(山書)의 세계를 다룬 산악문학에세이 <심산의 마운틴 오딧세이>라는 책이다. 책이 많이 팔려서 떼돈을 벌었느냐고? 천만에! 본래 산서라는 분야 자체가 그다지 포지셔닝이 넓은 축에 끼지 못한다. 산에 오르는 사람은 많은데 산서를 읽는 사람은 드문 탓이다. 그래서 애시당초 이 책을 쓰게 된 것도 바로 이 참담한 문화적 빈곤상태를 어떻게 해서든 뛰어넘어 보고 싶다는 과욕에서 비롯됐었고.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의도적으로 기획되거나 집필된 것이 아니다. 그저 내가 졸업한 등산학교의 비매품 동문회보 <코락>의 청탁을 받아 아무 생각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연재를 시작했던 것인데, 뜻밖에도 악계제현(岳界諸賢)의 과분한 격려가 잇달았던 까닭에 울며 겨자먹기로 끌어온 것이 어느 새 단행본 분량이 되어버린 것뿐이다. 아니다. "울며 겨자먹기"란 지나치게 위악적인 표현이다. 나는 이 원고들을 쓰면서 즐거워했었다. 명색이 "글을 써서 먹고 사는" 작가가 된 이후 <심산의 마운틴 오딧세이>를 쓸 때만큼 즐거웠던 적이 없다. 왜? 오직 내가 쓰고 싶어서 쓴 글이니까.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원고료가 전혀 없었다는 사실 역시 즐거움을 배가시켰다. 왜? 돈을 벌기 위해서 쓴 글이 아니니까.
우리 모두는 먹고 살기 위해서 일을 한다. 당연하다. 하지만 단지 "먹고 살기 위해서만" 일을 해야 한다면 그 삶은 너무 쓸쓸하다. 때로는 그 일이 반푼어치의 대가도 되돌려주지 못할지라도 "그저 그러고 싶어서" 하는 일도 하고 살아야 살 맛이 나는 거 아닌가? 산악인들은 등반행위를 논할 때 곧잘 "무상(無償)의 가치"를 이야기한다. 그 어떤 대가를 기대하고서가 아니라 오직 "산에 오르기 위해서 산에 오르는 것"만이 진정한 등반이라는 뜻이다. 내 작가인생에 있어서 <심산의 마운틴 오딧세이>가 꼭 그렇다. 돈을 벌기 위해서 쓴 글이 아니라 오직 "그냥 너무 좋아서" 쓴 글들로만 가득 찬 책!
그렇다. 자본주의적 글쓰기의 최첨단이라고 할 수 있는 상업영화 시나리오를 쓴답시고 골머리를 앓고 있던 내게, 마치 20년 전의 철딱서니 없는 문학청년시절로 되돌아 간듯, 글쓰기 자체의 즐거움("무상의 가치")을 새삼스럽게 일깨워준 책이 <심산의 마운틴 오딧세이>다. 사정이 이러할진대 그 책이 많이 팔리건 적게 팔리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탁한 도시를 벗어나 개울가에서 발을 씻고 산정 높이 올라 맑은 공기를 가슴 터질 듯 들여 마신 느낌이다. 아무리 삶이 고단할지라도 끝끝내 포기해서는 안될 가치가 있다. 바로 무상의 가치다.
[생활 속의 이야기] 2002년 5-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