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에서 날아온 편지
어제는 와인을 과음했습니다. 현재 동국대 박사과정에 재학중인 심산스쿨 동문녀석이 ‘선수과목’ 학점 때문에 제게 뇌물(?)로 바치는 와인이었습니다. 제가 첫 번째 와인으로 ‘에르미따쥬’를 시켜서 바가지를 씌웠습니다. 에르미따쥬는 프랑스 론 북부지역에서 시라(영어로는 쉬라즈라고 하지요)로 만든 와인입니다. 첫 번째 와인집은 삼청동의 ‘안’이었는데 너무 후져서 제가 다른 곳으로 옮겼습니다. 박인식 형이 경영하는 안국동의 와인집 ‘로마네 꽁띠’였죠. 이 집에서 와인을 한 대여섯 병쯤 마셨습니다. 그러다 보니 엄청난 계산서가 올라와서 결국 제가 계산했습니다. 나 원 참 이거...학점도 줘, 와인도 사줘, 엄청 손해보는 장사(!)를 한 셈입니다...^^
3차로는 인사동의 ‘소설’로 갔는데 맙소사, 그곳의 모든 손님들이 아는 사람들이더군요. 전 영상원장이었던 미학자 최민, 시인 김정환, 제작자 이준동과 차승재, 감독 데뷔를 준비중인 시나리오작가 고영범...모두 다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이지만, 제가 원래 사람 많은 술자리는 질색하는지라 기네스 흑맥주에다가 잭 다니엘을 섞은 폭탄주를 몇 잔 마시고는 도망쳐 나왔습니다. 그 좋은 와인들을 마시고 폭탄주로 입가심을 하다니...정말 멍청한 짓이죠...^^
늦잠을 자고 일어나 간단히 아점을 먹고 심산스쿨까지 걸어서 출근했습니다. 그랬더니 뜻밖에도 반가운 소포가 와 있네요. 현재 이집트를 여행 중인 라오넬라가 보내온 소포입니다. 라오넬라는 제 나이 어린 여자친구들 중의 한 사람입니다. 저하고는 두 바퀴 도는 띠동갑니니까...제 나이의 절반도 안되는 녀석이네요? 그녀는 나를 ‘스승’이라고 부르지만, 저는 그녀를 ‘친구’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힘겨운 성장과정을 겪었으면서도 늘 밝은 웃음을 지을 줄 아는 녀석이여서 제가 아주 이뻐합니다. 네이버 유명 블로거들 중의 하나인데 얼마 전에 첫 번째 책을 내기도 했지요([심산스쿨>심산서재>여백>한량일기]의 5번째 글 [꿈꾸는 청춘은 아름답다] 참조).
언젠가 그녀가 물었습니다. “어떤 글을 써야할까요?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을까요?” 저는 대답했습니다. “넌 지금 글 쓸 나이가 아니야. 연애하고 여행할 나이지.” 꼭 그 대답 때문만은 아니겠지요. 어쨌든 그녀는 어느 날 훌쩍 이집트로 떠나버렸습니다. 그리고는 제가 추천사를 써줬다는 이유만으로 제게 작은 선물을 보내온 거지요. 그녀의 선물은 이집트에서 만든 예쁜 접시들과 찻잔이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저를 즐겁게 한 것은 그녀가 여행 도중 찍은 사진들입니다. 이 녀석, 그 동안 사진솜씨도 꽤 늘었네요? 녀석의 사진들을 한참 들여다보고 있자니 어디론가 훌쩍 떠나버리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사진들이 너무 좋아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어서 이곳에 올립니다.
[img1]라오넬라는 유난히도 겁이 많은 녀석인데 낙타만은 예외라고 합니다. 저도 언젠가 낙타를 타본 적이 있는데 참 유순한 동물이지요. 저 녀석을 타고 사막을 훠이 훠이 걸어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습니다.
[img2]이집트의 시와 사막을 달리는 지프 캐러밴의 모습입니다. 아프리카의 사막과 몽고의 초원...삶이 허해지는 공간입니다. 몽고병이라고 아십니까? 지리 감각을 잃어버려 어디로 가야할지 알수 없게 되는 병입니다. 온 세상이 한 일자로 그어져 버리는 곳이지요.
[img3]지프 안에서 찍은 사진이랍니다. 뒤에 앉은 멋진 남자는 우연히 만난 사막의 트레커라네요? 라오넬라 저 녀석, 약간 비만기가 있어서 제가 언제나 “살 좀 빼!”라고 윽박 질렀었는데, 이제는 제법 갸름해진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img4]피라미드! 참 신묘한 느낌을 주는 조형물이지요? 얼마전에 본 [다빈치코드]에 따르면 놀라운 기호학적 의미가 깃들어 있다고 하던데...흙과 하늘과 삼각형이 빚어내는 그림과 색깔이 참 아름답네요.
[img5]시와 사막에서 발견한 오아시스랍니다. 물빛이 정말 곱군요. 쌩떽쥐뻬리가 그랬다죠?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디엔가 오아시스를 숨기고 있기 때문이다.” 저 곳에 풍덩 빠져서 배영 자세로 둥둥 떠있으면 참 멋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img6]가장 저를 많이 웃게 만든 사진입니다. 저기 구멍이 숭숭 뚫린 원추형의 건물이 ‘비둘기를 잡는 기둥’이라네요? 저 구멍 안에 비둘기 먹이를 넣어두면, 그리로 들어간 비둘기가 그것을 먹고 뚱뚱해져서 밖으로 못나오게 된답니다. 그러면 “장모가 사위에게 비둘기 요리를 해준다”네요? 언제나 그렇듯이 새나 사람이나 제 욕심 때문에 망하는 법이지요...^^
[img7]배를 타고 홍해를 건너는 동안 찍은 셀프 사진이랍니다. 라오넬라가 사진 뒤에다가 이렇게 썼네요. “짙푸른 빛의 바다에 한 동안 넋을 놓았더랬습니다.” 왠지 홍해...하면 붉은 빛이 날 것 같다고 상상했던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었는지...^^
[img8]홍해에 있는 깁튼 섬이랍니다. 후루가다라는 곳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는 곳이라네요? 사진 색깔이 정말 좋지요? 붉은 모래, 맑은 바다, 아름다운 여인의 뒷모습...지구에서의 삶을 가장 원초적으로 보여주는 멋진 조합입니다.
[img9]이 사진도 색깔이 정말 끝내주네요. 역시 깁튼 섬인데 온통 사막으로 되어 있답니다. 사진 속의 아가씨는 라오넬라의 친구랍니다. 베두윈처럼 두건을 쓴 모습이 정말 멋지네요.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 사진 속에는 ‘삼원색’만이 강렬합니다. 그저 보기만 해도 가슴이 찌릿해지는군요...아아, 떠나고 싶어라!^^
[img10]라오넬라, 편지와 사진 그리고 선물 잘 받았어. 고마워. 씩씩하게 사는 것 같아 참 보기 좋구나. 그런데...이집트까지 갔으면서 아프리카 여행을 안 하다니 그건 말도 안돼! 네가 이 글을 읽을 수 있다면, 내가 해줄 말은 단 하나, 한국으로 돌아오지 말고 아프리카로 가! 그냥 한국으로 돌아온다면 내가 사줄 술은 소주, 아프리카를 돌아보고 온다면 내가 사줄 술은 멋진 와인...잘 생각해봐, 어떤 술을 마시는 게 더 나을지...^^
아프리카로 가... 저 원색만큼이나 강렬하네요
샘님 제 인생도 아름답겠죠...